[프라임경제] 어둡고 습한 방 안에 누워 절망과 좌절이라는 단어만을 떠올리고 있었던 그 시간들. 돌이켜 보기조차 힘겨운 그 시련의 한 가운데에서 나는 글쓰기를 만났다.
어쩌면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고, 운명처럼 펜을 들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그저 낙서하듯 빈 종이에 끄적였던 것이 전부였다. 앞으로의 삶이 너무나 막막했기 때문에 도무지 정리되지 않는 머릿속을 백지 위에 끄집어 내려고 했던 절박한 시도였다.
감옥에서의 하루 여덟시간 글쓰기는 나에게 있어 새로운 세상이었고, 삶의 희망이 됐다. 커피 잔을 내려놓는 소리에도 가슴이 쿵쾅거렸던 번잡한 마음이 깊고 고요하게 흘러가는 강물처럼 평온해졌고, 백지 위에 채워지는 단어 하나하나가 내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이 됐다.
소설도 썼고, 일기도 썼으며, 편지도 쓰고, 필사도 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 귀에 들리는 모든 소리가 글감이 됐다. 소설을 쓰는 동안 철저하게 나를 버리고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하려 애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 속에는 언제나 '내'가 있었다.
내가 살아온 모든 경험들이 가상의 인물들을 통해 남김없이 뿜어져 나왔다. 쓴 글을 읽으며 내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은 실로 놀라운 경험이었다.
글을 좀 더 잘 써보고 싶은 생각에 일주일에 열 다섯 권씩 책을 읽었다. 종류를 가리지 않고 손에 잡히는 대로 철학, 소설, 문학, 자기계발, 인문학 등 닥치는 대로 읽어나갔다.
그렇게 매일 독서와 글쓰기를 하는 동안 나는 다시 살아야겠다는 희망과 용기를 얻었고, 내가 얻은 소중한 경험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해줘야 한다는 강력한 소명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은 귀담아 들으면서도 막상 실행에 옮기기는 힘들어 한다. 당연한 얘기다.
글을 쓰지 않아도 사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결핍의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인간은 적응하고 만다. 글쓰기는 사람의 타고난 본능이며 특권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오랜 시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쓰지 않는' 삶에 익숙해져 버렸다.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삶 속에서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이용해 툭툭 던지는 메시지에 민감해졌고, 의미없이 흘러가는 단어들과 텍스트 속에서 잠깐 동안의 희열과 공감에 만족해 버린다. 타인의 반응에 내 모든 것을 맡겨놓은 채 삶의 진짜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지 않는다.
글쓰기는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지나간 시간들 속에서 나를 찾고, 지금 이 순간의 나를 경험하면서 조금씩 성장하는 삶을 느낄 수 있는 사색의 시간이다. 타인의 반응에 맡겨두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소중한 삶의 의미를 가꾸어 갈 수 있는 최선의 길이다.
전과자, 파산자, 알코올중독자, 막노동꾼의 삶을 살아가면서도 감히 '행복'을 논할 수 있을 만큼 평온한 마음을 얻은 필자는 살아가는 이유가 있기에 견디고, 극복하며, 이겨낼 수 있었다. 작은 일상의 이야기들을 통해 글쓰는 삶을 전하고 싶다.
이은대 작가(내가 글을 쓰는 이유, 최고다 내 인생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