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라임경제] 해묵은 미술계 '관행'에 발목이 잡혀 얼마나 힘드십니까. 평소 조영남 화백님 작품을 관심 깊게 봤던 사람으로서 고언하고 싶은 게 있어 펜을 듭니다.
제 직업은 기자입니다. 2007년 입사해 햇수로 10년차네요. 입사하고 4년 정도는 막내, 어린 연차로 선배들 뵙는 게 편했는데 어느덧 저도 선배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저는 수시로 후배에게 '요즘 이게 핫(hot)하다' '이런 스타일로 기사 만들면 어떨까' 식의 말을 자주 하는 편입니다. 인터넷매체 특성상 이슈도 따라가야 하고 기획 아이템은 매일 짜내야 하는데 신참에게서 '이거다' 싶은 기사를 뽑아내는 것이 쉬운 게 아닙니다.
근데 관련 취재를 시켜보면 군데군데 구멍이 장난 아닙니다. 이를 채우는 건 선배 몫입니다. 정말 급하면 직접 관련 멘트 따서 줄 때도 있고, 보통 취재 방향과 연락처를 주고 내버려 둡니다. 놀랍게도 이 부분에서 상당수 수습기자가 그만둡니다. 그만둔 후배가 한 번만 봐달라며 돌아오는 경우도 종종 봤죠.
취재를 마쳤으니 기사를 쓰고 탈고를 해야 하는데. 오탈자야 요즘 시스템이 고급스러워 제 사수가 그랬듯 빨간펜 휘두를 정도는 아니지만 일은 여전히 많습니다. 논리가 어색하거나 촌스러운 비유, 기타 등등을 고치고 나면 겨우 한 꼭지 나오는 식입니다. 근데 이게 매일 마감 시간이 있으니 속이 썩어 들어가거든요.
'취재 OOO 기자'. 데드라인 겨우 맞춰 송고를 마치면 해당 기사에는 후배의 이름만 박힙니다. 이와 관련해서 제 첫 사수였던 선배는 "빼먹으라고 있는 게 선배"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죠.
물론 특정 행사, 대상에 대한 취재풀을 구성했거나 합동취재, 기획취재, 특별취재 등등 특수한 상황에서는 공동 바이라인을 씁니다.
사실 85% 이상 선배가 떠 먹여준 기사라도 그 꼭지는 후배 몫입니다. 후배를 키우는 게 선배 역할이고 가장 기본인 취재는 그가 했으니까요. 그런 후배 기사에 숟가락을 얹는다? 욕먹는 건 둘째 치고 업계 재취업 욕심은 버려야 할 걸요. 그만큼 기자에게 '바이라인'은 화가의 낙관, 서명과 같습니다.
기자들이 나쁜 짓을 하는 것도 일정 사실입니다. 광고, 협찬을 비롯해 어쩔 수 없는 현실에 순응하고, 정치적 성향, 논조보다 함께 먹고 살 배우자와 애들이 먼저 떠오릅니다. 성격, 건강 나빠지는 건 순식간이고 박봉에 욕은 수시로 먹습니다.
하지만 언론계는 아직 개인기와 노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고, 스스로 무능해질 때까지 일할 수 있는 이른바 '피터의 법칙'이 먹히는 사회입니다. 그런 이유로 바이라인 도둑질은 안 합니다. 남들은 몰라도 우리끼리 빤히 아는데 '내가 다 했다'며 정신승리하는 건 자존심 상하니까요. 적어도 그게 관례, 관행이라고 포장하지 않습니다.
알량한 자존심이라 비꼴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근성을 지키는 이유는 우리가 사회에 필요한 직업이기 때문입니다. 선배가 후배를 키워서 '기자'라는 직업을 존속시키기 위함이죠.
당신이 푼돈으로 부릴 소모직을 조수라는 이름으로 고용했고, 그들의 몫을 온전히 조영남의 것으로 포장해 가졌다면 반칙입니다.
대중이 상식으로도 몰랐던 부분을 '관행'이라 알려주신 점을 빗대 칭호를 드리고 싶습니다. '거지(巨知)' 한자 그대로 담대한 지식이라는 뜻입니다.
갑과 을이 명확한 분업과 협업(?)으로 스타 작가의 작품을 찍어내는 것이 관행이라면. 우리나라 미술계의 생명은 오래가기 힘들어 보입니다.
거대하지만 바짝 시들고 군데군데 썩어가는 폐목처럼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