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줄여서 '김영란법' 시행령이 입법예고를 거쳐 오는 9월부터 적용된다.
핵심은 공직자와 언론인, 사립학교 교직원과 그 배우자에 대해 식사는 1인당 3만원, 선물은 5만원, 경조사비는 10만원 이하로 '접대'를 제한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권과 언론은 "가뜩이나 어려운 내수경제를 위축시킬 것"이라며 날선 반응을 보였다. 일례로 국내 최대 경제지인 매일경제는 11일 '김영란법은 이렇게 우리 경제를 망가뜨린다'(A2면)는 제목의 종합판 기사를 내보냈다.
김영란법에 대한 여론은 심하게 엇갈리지만 투명한 사회,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미사여구로 채워졌음에도 구멍이 너무 많고 크다는 게 중론이다.
최근 영화 '캡틴아메리카-시빌워'를 본 사람이라면 공감할지 모르겠다. 지금 '김영란법'은 마치 토니 스타크(아이언맨)를 속물 취급하는 스티브 로저스(캡틴아메리카) 같다.
비브라늄 방패로 무장한 캡틴의 원칙은 숭고하고 단단해 보이지만 현실은 언제든 그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 이 과정은 매우 교묘하며 심지어 합법적이다. 김영란법의 구멍을 파고드는 것처럼.
김영란법은 시행되기도 전에 헌법재판소에 목이 내걸린 반쪽짜리 법안이다. 상당수 법학자들은 연좌제 금지를 비롯해 몇몇 이유로 위헌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사실상 김영란법이 실제 위력을 발휘하기 어려우며 대대적인 엄포에도 사문화(死文化)의 수순을 밟을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이 같은 분위기는 정치권을 포함해 언론과 재계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김영란법'이 내수경제를 죽일 것이라며 유난을 떠는 이유는 뭘까? 정말 이 법을 만들어 공포하고 싶었다면 논란이 시작됐던 2년 전부터 세부내용을 꼼꼼히 다듬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여야는 그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접대, 로비로 위축될 내수라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대중의 의견은 무시하면서 말이다.
비슷한 전례는 12년 전에도 있었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4년 1월5일 시행된 '접대실명제'다. 기업이 건당 50만원 이상의 접대비를 지출할 경우 접대자의 이름과 목적, 상대방 상호 및 사업자 등록번호 등을 기재하도록 한 것으로 이명박 정부 2년차인 2009년 폐지됐다.
당시 소비침체와 탈법을 부추긴다는 여론이 제도의 폐지를 견인했는데 내용은 이렇다. 기업이 접대비를 줄인 탓에 자영업자들이 피해를 봤으며, 50만원 미만으로 접대비를 쪼개 지급하는 편법 결제가 성행했고, 50만원을 초과하는 비용을 현금 결제해 지하경제를 양산했다는 등이다.
수치상 2003년 기업접대비는 5조4372억원이었고 법안 시행 이후 이듬해 5조1626억원으로 2746억원(5%) 줄었다. 같은 기간 주점 등 유흥업소 사용비중은 1조6144억원에서 1조3270억원으로 18%가량 감소했다는 것이 당시 법안을 쓰레기통으로 보낸 근거였다. 대다수 언론이 이를 인용해 보도했고 여론도 수긍했다.
같은 기간 통계청이 "민간소비 지출액 중 접대비의 비중은 1.3%이며 접대실명제 시행 대상인 건당 50만원 이상은 0.6%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발표는 주목받지 못했다. 2004년 2월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접대비 지출액이 10% 줄더라도 전체 민간소비 지출에 미치는 영향은 0.06%에 불과했다.
주목할 것은 2013년 국세청에 신고된 국내 기업의 총 접대비가 9조67억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기업이 접대비로 2004년에 비해 80% 넘는 돈을 민간에 뿌렸음에도 국내 경제는 10년 동안 나아진 게 없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또 룸살롱 등 호화유흥업소 법인카드 사용은 2010년 1조5335억원에서 2011년 1조4137억원, 2013년 1조2338억원으로 접대실명제 때보다 오히려 점점 줄었지만 이를 문제 삼는 목소리는 없었다.
지금 정치권과 언론의 날선 반응은 2004년, 그리고 2009년의 데자뷰다. 사실(fact) 검증조차 되지 않은 주장이 대통령과 유력 언론에 되새김질되는 상황은 김영란법의 사문화를 정당화하기 위한 일종의 여론몰이, 속칭 '밑밥'이라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사회적 분위기가 그때와 사뭇 달라진 것 역시 여론의 반발을 키우고 있다. 7년 전 접대비 실명제를 무력화시킨 수치를 현재에 대입해보자. 김영란법을 통해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접대비 절감의 수고를 제도적으로 덜게 됐으니 반가운 일이다.
우리나라 성인 남성 5명 중 1명은 알코올중독 고위험군이라는 보건복지부 통계(2014년)에 비춰볼 때 국민건강증진이라는 선의와도 맞아 떨어진다. 박근혜 정부는 같은 이유로 2014년 담뱃값 인상을 강행했고 지난해 담배세수로만 3조원을 더 거둬들였다.
결국 정부가 내수침체의 원인으로 김영란법을 지목한 것은 심각한 인과관계의 모순이다. 지금의 내수부진은 가계 상황이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가계대출 증가가 지속되면서 순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대출비율은 지난해 140%에 육박했다. 가계에 쓸 수 있는 돈보다 빚이 40% 가까이 많다는 얘기다.
이는 단순히 금리인하나 재정확대로 돌파할 수 없는 수치가 아니며 최근 정부와 여당이 '한국형 양적완화'를 추진하는 배경이 됐다. 정부는 인정하지 않지만 임금상승률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체감물가는 가계 상당수가 몸으로 느끼는 바다.
그럼에도 내수기업들은 가격인상 꼬투리만 찾는 것 같고 전·월세 부담 역시 날로 무거워졌다.
가계가 소비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합리적인 수준으로 임금이 오르든가, 아니면 소득 대비 지나치게 높은 체감물가와 전·월세 부담을 잡든가 실질적인 대안을 찾기도 막막한데 "김영란 법 때문에 내수가 죽는다"는 주장이 과연 먹힐까?
이쯤해서 우리 좀 더 솔직해지자. 남의 돈으로 '좋은 것' 먹고 '좋은 곳' 가고 싶다고. 그걸 못하면 현기증 난다고. 치킨집에서 1인1닭을 해도 3만원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