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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집 배달부에서 싹튼 '변검 대배우'의 길, 김동영 교수

다양한 얼굴 뒤에 숨은 인생사 희로애락 100% 표현 꿈

임혜현 기자 기자  2016.04.28 17: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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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변검'이라는 중국 연극 기법이 있다. 공연 중에 수시로 얼굴을 바꿔 극의 긴장감을 높이고 국면을 전환하며 내용을 전달하는 등 찬탄을 불러일으키는 기술이다.

단순히 '술'이라고 표현하기에도 오랜 연습과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여 다듬어야 한다는 점에서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있다. 무엇보다 변검을 단순히 눈요깃거리 재미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혼과 기술을 담아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점에서 '연극'과 같이 봐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런 점에서 '한국 변검'은 아직 전수자 자체가 많지 않지만 가장 정통의 길을 걸으면서 중국 변검의 청출어람을 노리는 고고한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에 가서 변검을 전수받은 이들이 단순히 마술의 일종으로 치부되지 않도록 변검에 혼을 불어넣겠다는 일념으로 연마 노력을 게을지하지 않고 있기 때문.

변검을 논의하는 과정에서는 중국에서 정통 변검을 배워온 '한국 최초' 김우석 변검술사에 못지 않게, 연극배우이자 강단에서 학생들에게 연극 지식을 전수하는 김동영 서울예술실용학교 교수도 함께 자주 회자된다. 

김 교수는 중국 예술가 주홍무 선생에게 사사한 변검 전문가다. 그는 연극배우로 오래 활동해온 노하우와 열정으로 스승에게서 배운 변검을 그대로 복기하기 보다는 한국적 정서 표현이 가능한 변검, 다양한 활용으로 끝없이 뻗어나가는 변검을 추구해 나가는 인물이다. 변검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소재고, 노력의 징표로 관객의 찬사를 받을 만 한데, 다양한 접목 가능성까지 끌어내려는 점과 새로운 시도로 한층 더 좋은 평을 얻고 있는 것.

김 교수는 초등학교를 마치고 어려운 형편 때문에 옛 재건중학교 과정을 다녔다. 재건중학교는 가난한 청소년들이 꿈을 잃지 않고 학업의 끈을 놓지 않게 만들어 운영했던 제도다. 이렇게 공부를 하면서 김 교수는 양복점 미싱 보조(속칭 시다)를 시작으로 행상, 식당서빙, 밤무대 가수를 전전했다.

이후 그는 중국음식점에 취업했다. 이때 배운 중국어는 그의 큰 밑천이 된다. 중국음식점 사장도 김 교수의 집념을 높이 사서 언어를 틈틈 알려주는 데 그치지 않고 그야말로 나중에는 친자식 이상으로 여겼다.

이렇게 주경야독으로 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취득하고 중국어도 꽤 할 수 있는 실력을 얻었다. 중국어 학원 강사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어학 실력이 이때 생겼다.

가난은 여전히 떨쳐내지 못했지만, 고등학교 졸업을 하니까 이제 대학을 가고 싶은 강렬한 충동이 일었고, 차선책으로 방송통신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 입학했다.  

이때 비슷한 처지의 학우들, 열심히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사람들을 만났고, 이들과 중국어 연극반 활동을 하면서 그의 세 번째 배움이 시작돼 결국 직업적인 배우의 길로까지 들어섰다는 게 김 교수의 회고다.

마당놀이 공연으로 유명했던 극단 미추에 입단했고 그리고 이후 20여년간 다양한 캐릭터로 마당놀이 공연에 출연하면서 다른 연극에도 다수 출연했다. 2004년에는 '빵집'이라는 연극으로 호평을 받았다. 그러던 중 변검에 대해 알게 되고, 중국어 실력과 연극인으로서의 노하우와 뚝심을 자산 삼아 중국 정통 변검을 전수받은 몇 안되는 한국인 대열에 동참했다. 실제로 배우로서의 소양이 풍부한 이가 변검까지 융합하게 되면서, 변검을 다른 스타일로 변형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번에 러시아 원작을 바탕으로 개봉하는 연극인 '플라토노프'에서도 김 교수는 변검을 접목한다. 이 연극은 체홉의 작품으로 복잡한 여러 등장인물 내면과 사정을 설명하고, 낭만적인 극분위기를 살려야 하는 등에서 변검을 요긴하게 적용할 수 있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이에 필요한 여러 러시아적인 얼굴을 순간순간 변화시키기 위해 몸소 다양한 페르소나(얼굴 그림)를 준비했다는 설명에서 그의 자부심이 느껴진다. 연극인으로서, 변검 전문가로서 성장해온 그의 바탕에는 아직도 열정 가득하던 '중국집 배달소년'이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