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혜현 기자 기자 2016.04.27 17:31:51
[프라임경제] 사실주의 극작가로 알려진 안톤 체홉. 러시아 출신으로 19세기 색채가 강하다는 편견 때문인지 트렌디한 작품을 즐기는 한국 연극 관객들에게는 아직도 낯설다.
하지만 대학로를 중심으로 역량 있는 여러 극단에서는 아직도 체홉을 연구하고 종종 그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노력을 이어가는 중이다. 인간의 정서를 속속들이 파악하고 그려내는데 그만한 작가도 드물기 때문.
이번에도 체홉의 작품을 해석 및 연출하고 연기하려는 노력이 관객들을 찾아간다. 서울 대학로 아르코극장에서 5월6일 막을 올리는 '플라토노프'다.
이 작품은 1920년 발견된 체홉의 미완성 희곡을 다듬은 것으로, 작품의 주인공 플라토노프와 주변 인물들이 극의 골격을 떠받친다.
플라토노프는 아내 싸샤가 있다. 그리고 미망인 안나가 플라토노프의 주변을 맴돈다. 플라토노프에겐 첫사랑이 있는데 이 소피야까지 총 3명의 여자가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며 인간의 마음을 밑바닥까지 세세히 드러내게 된다.
일상의 지루함에 빠져 자살 유혹까지 느끼는 주인공 플라토노프를 통해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엇갈리는 인간들의 인생을 다룬다. 이런 가운데 이번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데에는 공백 메우기가 쉽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우선 세월의 간격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점, 즉 낡아보이지 않게 체홉 작품의 매력을 드러내야 한다는 점. 두 번째, 작품이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상상력을 발휘해 부분적으로 메우기 노력을 해야 한다는 점도 난제였다. 또한 한국적 정서에 걸맞게끔 손을 보는 것도 필요했다.
그러나 이런 악조건을 오히려 상상력을 발휘하기 좋은 조건으로 역발상, '뒤집기 한판'으로 연출하는데 성공했다는 평이다.
무대에 올리기까지 강태식 연출가의 공이 컸다. 그는 러시아에서 장기간 유학을 해 체홉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체홉의 작품 중 '이바노프'가 국내에서 초연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강 연출가의 솜씨였다. 그는 최대한 원작에 가까운 의미로 번역하고 우리 정서에 맞게 각색해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고, 이번 플라토노프에서도 체홉 작품의 미완성 상황을 잘 메우는 데 충분히 이 실력을 쏟았다.
그에 더해 또 하나 '신의 한 수'로 꼽히는 부분은 배우이자 교수 김동영씨가 이번 작품에 투입됐다는 점이다. 마당놀이와 연극 등 여러 채널을 통해 관객을 오래 만나온 그는 서울예술전문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이 외에도 그를 규정짓는 또 하나의 요소가 있으니 바로 '변검'.
중국 예술, 특히 경극에서 얼굴을 순식간에 여러 차례 바꾸면서 극의 전환과 완성도 제고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법인 변검을, 김 교수는 현지 장인으로부터 직접 배워와 한국에서 이를 끊임없이 연마해 왔다.
이번에 변검기법이 요긴하게 사용된 것은, 체홉이 사실주의 작가로 잘 알려졌지만 플라토노프는 낭만주의적 작품인 데다 미완성 상태라 상상력을 발휘하고 극의 분위기를 고양하는 쪽으로 손을 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강 연출가가 이 부분을 다듬어 완역, 완성한 플라토노프에서는 인물 간 복잡한 속사정과 정서적 갈등과 번민, 교류 상황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그 기법으로 환상적인 변검을 사용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 이에 따라 김 교수를 섭외, 등장시키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의 농밀한 매력을 담은 이번 작품이 중국의 변검기법, 뚝심으로 지숙해온 체홉 연구실력, 무엇보다 한국 연극인들의 연기력 등을 만나면서 새로운 매력을 발휘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