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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엄마 희로애락] 엄마들은 심드렁한 '어린이집 종일반 전쟁'

"처음부터 12시간 보육은 이룰 수 없는 꿈"

이수영 기자 기자  2016.04.27 14:5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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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월요일부터 온라인 뉴스 댓글창은 전쟁터였다. 오는 7월부터 '맞춤형 보육' 시행에 따라 전업주부의 어린이집 종일반(12시간) 이용이 제한된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가 이미 지난해 9월 예고한 것으로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또 전업주부를 '어린이집에 핏덩이 맡기고 브런치나 즐기는 무개념 집단'으로 모는 비난과 반발하는 엄마들의 항변은 7개월 전과 같았다.

어린이집 종일반을 둘러싸고 정부가 '전업주부vs취업부모'의 다툼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비슷한 레퍼토리였다. 심지어 관련 기사를 들여다보는 내 푸념도 같았다.

"12시간 봐주는 어린이집이 있기는 한 모양이로구나."

지난주 남편과 친정엄마의 갈등으로 경력단절 직전까지 몰렸던 이야기를 털어 놓으면서 어린이집에 대한 고민도 공유할 생각이었다. 겪은 사람만 알고 심지어 어린이집마다 다른 '이용(가능한)시간'에 대해서다.

◆어린이집 등·하원 시간은 '답정너'

첫째는 만 25개월이 되던 작년 6월부터 도보 3분 거리 민간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다. 둘째를 낳고 육아휴직 중이었던지라 직접 등·하원을 챙겼는데 오전 9시30~50분 사이에 등원해 오후 4시경 돌아온다. 이용시간으로 따지면 꽉 채운 6시간 정도며 30여명의 원생 상당수가 이 시간에 맞춰 움직인다.

낯가림 심한 첫째가 겨우겨우 아침 눈물바람을 멈추고 제 발로 어린이집 문턱을 넘기 시작한 작년 가을. 복직을 앞두고 남편과 논쟁을 벌이면서 어린이집 이용시간을 늘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출근은 해야 하는데 시댁은 멀고 장모님 도움은 싫다니 유일한 대책이기도 했다.

아침에 아이를 데려다주며 담임교사에게 슬쩍 운을 띄웠다. 소심하게 '아침에 제일 일찍 오는 친구가 몇 시에 오느냐'고 물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냥 대놓고 7시 반에 맡기겠다고 할 걸. 분명히 실수였다. 곤란한 얼굴로 대꾸하는 담임교사의 답은 굉장히 실망스러웠다.

"제일 빠른 아이가 8시20~30분에 오는데, 늦어도 6시20분에는 다 하원해요. 혹시 그렇게 하실 건 아니시죠?"

내 출근시간은 아침 8시로 7시10분에는 급행전철을 타야 겨우 지각을 면할 수 있다. 오후 6시 '용작두급' 칼퇴근을 해도 한 시간 이상 걸리는 통근거리는 그들 기준에서 한참 벗어나있었다. 담임교사뿐 아니라 원장의 반응도 싸늘했다. 정말 일말의 여지도 없다는 듯이.

이상했다. '종일반이라며? 종일반은 아침 7시 반부터 12시간 봐준다며? 워킹맘 일하라고 나라에서 정하고 지원금도 주는 게 아니었던가?' 만약 그 상황이 취재 중이었다면 70페이지짜리 입학요강을 펼쳐놓고 A부터 Z까지 털었을 것이다. 아니, 정말 털었어야 했나?

아이 손을 잡고 돌아 나오는데 스스로 한심했다. 분명 법에 정해져 있고 정부는 누리라며 예산을 짰을 것이다.

◆수혜자가 걷어차는 정책지원 의미 있나

그럼에도 수혜자인 내가 '아이가 혹시 밉보일까봐' '친구도 없는 어린이집에 아이만 쓸쓸히 남는 게 불쌍해서' 권리를 걷어찬 셈이다. 그게 아니라면 정책지원의 수혜자가 양육자 또는 아이가 아니라는 얘기다.

물론 규정대로 보육수요에 맞춰 운영되는 어린이집도 상당수일 것이다. 하지만 비슷한 일을 겪은 워킹맘의 사연은 곳곳에 차고 넘친다. 민간시설들이 서류상 전일제 운영을 내세워 정부 지원을 받으면서도 실제 워킹맘 아이는 꺼려한다는 것도 공공연한 사실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4년 만 0~2세 영아의 하루 평균 어린이집 이용시간은 맞벌이 가정 8시간23분, 전업주부 가정 6시간56분이다. 하루 8시간, 주 40시간 근무가 일반적인 사회에서 맞벌이 가정조차 하루 8시간 정도만 어린이집을 이용한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

맞벌이 가정 중에는 프리랜서나 재택근무자도 있고 조부모가 등·하원을 도울 수도 있다. 하지만 기댈 곳이 없더라도 '아이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사설 도우미를 고용하는 등 이중고를 감수하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일반 12시간'이라는 기준은 처음부터 없어야 했다. 여전히 대도시 어린이집은 대기인원이 줄을 서고 6~8시간만 돌보면 '종일반' 지원을 받을 수 있는데 사서 고생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정부는 무의미한 기준을 다시 둘로 쪼개 지원금을 차등지급할 예정이다.

결국 '맞춤형 보육'으로 손해 보는 것은 전업주부가 아니라 어린이집이다. 맞춤반 보육료는 종일반의 80%로 책정됐는데 이를 올해 0세 기준 보육료로 환산하면 종일반 82만5000원, 맞춤반 66만원(월 15시간 바우처 포함 72만원)이다.

7월부터 맞춤반을 운영하는 어린이집은 매달 원생 한 명당 최소 10만원의 보육료 차이가 생기며 이는 고스란히 정부 지원금에서 깎인다. 상황이 이렇다면 특히 민간 어린이집에서 전업주부 아이를 반길까?

전업주부의 가정양육을 유도한다는 시행 목적도 100% 동의하기 어렵다. 전업주부지만 지인이 운영하는 사업체에 위장 취업하는 식으로 재직증명서를 받아 입소 순위에서 이득을 봤다는 경험담은 놀랍지 않다.

어린이집이 영유아를 허위 등록해 정부 보조금을 빼돌렸다는 뉴스도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맞춤형 보육' 체계에서도 이런 식의 비리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종일반·맞춤반이 나뉜다고 전업주부나 워킹맘은 실상 달라지는 게 없고 어린이집은 오히려 손해가 코앞이다. 아무도 웃지 않는 보육정책의 수혜자는 도대체 누구일까?

한편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전업주부를 달래기 위해 공언한 가정양육수당 10만~20만원 인상은 '추진 중'이라는 말만 남았다. 이와 관련한 올해 국비 예산은 지난해와 비슷한 1조2192억원이 책정됐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