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1950년 설립돼 일본 최대 유제품업체로 성장한 유키지루시유업은 청결과 건강을 상징하는 하얀 눈꽃송이 상표를 내세워 일본인의 절대적 신뢰를 받아왔다.
그러나 2000년 6월 오사카에서 유키지루시 저지방우유를 먹은 145명이 설사와 구토 등 집단 식중독 증세를 호소하면서 추악한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사건 직후 유키지루시유업은 기자회견을 열고 해명에 나섰다. 그러나 경영진은 "행정대응에도 문제가 있다"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잘못을 인정할 단계는 아니다" 등의 책임회피로 일관했다.
◆10년 전 일본에서의 기시감
이후 확인된 피해자가 147명에서 3572명으로 급증하자 회사는 공식사과 대신 무마를 위해 직원들이 피해자를 방문하도록 지시했다. 결국 회견 도중 공장장이 "가설 밸브 일부에서 동전만한 포도상구균이 발견됐다"는 폭탄발언을 하면서 과실이 드러났지만 경영진은 계속 '모르쇠'로 일관했다.
앞서 1955년에도 비슷한 식중독 사고로 도쿄 초등학생 900여명이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일본인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두 번이나 썩은 우유를 팔 만큼 정신없는 회사 제품은 절대 사지 않겠다"며 대대적인 불매운동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충격은 끝이 아니었다. 식중독 사건 여파가 채 가시기 전인 2002년 유키지루시유업 자회사 유키지루시식품의 수입쇠고기 위장 사건이 불거진 것. 당시 세계적으로 광우병 공포가 확산되던 것을 악용한 악질적인 범죄였다.
회사는 2001년 10~11월 수입쇠고기 30톤을 국산으로 위장해 정부기관에 팔아 치워 900만엔(당시 환율 기준 약 1억2000만원)의 시세차익을 얻었다. 추악한 사실은 거래처인 창고회사 사장의 고발로 드러났고 '경영진은 모르는 일'이라며 꼬리자르기에 급급했던 유키지루시식품은 결국 파산했다.
모회사 유키지루시유업은 회생절차를 밟는 신세가 된 끝에 사명을 '메그밀크'로 바꿨다. 그러나 10년이 흐른 지금도 '부도덕한 기업'의 대명사라는 꼬리표는 떼지 못하고 있다.
◆"빨래 끝!" 익숙해서 더 소름끼친…
주부들의 바이럴마케팅을 응용한 CF로 '살림여왕의 친구'를 자처하던 옥시 레킷벤키저(Reckitt Benckiser)의 민낯이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2011년 5월 이후 정체불명의 폐질환에 시달린 환자 최소 143명이 사망한 대한민국 사상 최악의 화학 참사가 벌어진 상황. 피해자 대부분은 산모와 어린 아이들이었고 상당수는 옥시 레킷벤키저의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을 구입한 소비자였다.
옥시 레킷벤키저는 영국 생활용품 제조업체 레킷벤키저의 한국 법인이다. 2001년 OCI(옛 동양제철화학)가 운영하던 것을 1625억원에 인수해 국내에 진출했다.
히트상품은 △물먹는 하마 △개비스콘 △스트랩실 △듀렉스 △비트(Veet) △데톨 △이지오프 뱅 등 수두룩하지만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후 본사명 '레킷벤키저'는 철저히 숨기고 있다.
사명을 약자인 'RB코리아'로 표기하는가 하면 슬그머니 광고에서도 '옥시'가 사라졌다. 15년에 걸친 국내 영업이 부끄러운 과거라는 뜻일까?
옥시 레킷벤키저는 2011년 말 돌연 법인 청산 후 유한회사로 변신한 과정도 의문이다. 유한회사는 외부감사, 기업정보공개 의무를 지지 않는 폐쇄적인 기업형태다. 이 같은 작태는 중소기업에나 적용되는 제도를 이용했을 뿐 아니라 논란이 한창일 때 유한회사 전환으로 책임 회피를 꾀한 것이라는 의혹에도 불을 지폈다.
◆레킷벤키저 호주서도 '후안무치' 폭리
레킷벤키저의 뻔뻔함은 최근 호주에서도 문제가 됐다. 데일리메일(Daily Mail) 등 해외언론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호주 연방법원은 진통제 '뉴로펜(Nurofen)' 4종에 대해 3개월 내에 소매점서 완전 철수할 것을 명령했다.
마치 특정 부위 통증에 특효를 발휘하는 것처럼 광고했지만 동사 일반 진통제(이부프로펜)와 핵심성분, 함량이 똑같아 소비자를 기만했다는 것이다. 레킷벤키저는 뉴로펜의 가격을 적게는 두 배, 다른 복제약(제네릭)에 비해서는 열 배 이상 비싸게 책정한 것으로 파악됐다.
호주경쟁소비자위원회(ACCC)는 지난해 3월 레킷벤키저가 소비자를 상대로 폭리를 취한다며 소송을 제기, 법원은 9개월 만에 해당 제품을 시장에서 퇴출시켰다. 법원은 또 레킷벤키저에 대한 벌금 부과와 관련해 별도의 심리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런 가운데 옥시 레킷벤키저에 대한 불매운동이 피해자 가족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진행 중이다. 법인에 대한 형사처벌과 징벌적 배상이 불가능한 한국에서 '나쁜기업'을 단죄할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나 많은 선례에서 보듯 대중의 분노는 오래가지 않으며 이는 부도덕한 기업에 대한 관용으로 작용했다.
'우리는 처벌할 힘을 잃었을 때 용서한다.' 지난 15년 동안 한국시장을 경험한 레킷벤키저는 이를 간파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이번 사태에 대한 그들의 오만함은 바로 그 방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