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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엽제 판례서 배운 '황사방패' 옥시에 맞출 방법은?

형사-민사소송 모두 피할 황금키? 경영진 인지-조작여부 입증 부담 폭증

임혜현 기자 기자  2016.04.26 11:2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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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여론 악화 우려가 높은 '황사보고서'를 낸 옥시의 판단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해 말 가습기 살균제와 인체 폐손상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본 질병관리본부의 2011년 역학조사 결과를 반박하는 총 77페이지의 의견서를 검찰뿐 아니라 민사소송을 맡은 재판부에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이 사실이 알려지자 여론의 질타가 쏟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이 카드를 사용한 배경을 놓고 여러 의견이 뒤따른다. 우선 유력 로펌이 사건을 맡고 나선 가운데 정말 사용할 방법이 없어 '마지막 한수'를 둔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신의 한수'를 택한 게 아니냐는 해석 또한 가능한 대목이다.

옥시가 제조물책임법 공방전과 여론 악화를 모두 뚫고 유유히 그물망을 빠져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결함' 둘러싼 알쏭달쏭한 논쟁 '처음 넘을 허들'

황사보고서 국면으로 우선 피해자 측 분노가 크다. 검찰수사와 별도로 이들의 소송 관련 움직임이 한층 빠르고 격해질 가능성이 높다. 

다만 현재는 제조물책임을 묻고 최종적으로 옥시를 응징하는 여정이 상당히 길 것이라는 예상에 무게가 실린다.

우선 제품 탓에 사고가 발생했다고 해도 무조건 제조업자의 책임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제품에 결함이 있고 그 결함으로 인해 피해가 발생할 경우에만 제조업자의 책임이 인정되는 것.

제조물책임법 제2조는 결함과 관련, 제조상 결함이란 제조업자가 제조물에 대해 제조상, 가공상 주의 의무를 다했는지 관계없이 제조물이 원래 의도한 설계와 달리 제조, 가공됨으로써 안전하지 못하게 된 경우라고 설명한다.

또 설계상의 결함이란 제조업자가 합리적인 대체설계를 택했더라면 피해나 위험을 줄이거나 피할 수 있었음에도 대체설계를 택하지 못해 안전하지 못하게 된 경우에 해당한다.

표시상 결함은 제조업자가 합리적 설명이나 경고 등을 했더라면 피해나 위험을 줄이거나 피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하지 않은 경우다.

이 중에서 설계상 결함을 둘러싼 논쟁이 치열하다. 소송을 건 원고, 즉 피해자가 해당 설계를 대체할 만한 합리적 대체설계의 가능성을 입증하는 게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를 놓고 유럽연합(EU) 입법지침 제6조 제1항 '제조물의 표시, 제조물을 합리적으로 예견할 수 있는 사용, 제조물이 유통된 시기 등을 포함한 모든 사정을 고려, 사람이 정당하게 기대할 수 있는 안전성을 갖추지 아니한 때에는 결함이 있다'는 규정처럼 우리 규정을 손질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고엽제 제조물책임 소송, 원심과 대법원 달라진 부분 "왜?"

이 같은 제조물책임 분쟁에서 옥시 사건에 가장 시사점이 큰 사례는 고엽제 사건이다. 보훈당국에 등록된 고엽제 피해 군인 중 13.4% 해당하는 10만6000여명이 원고로 참여하고 소송가액이 5조원을 웃돈 대규모 소송이었던 만큼 대법원까지 치열한 다툼이 이어졌다.

1심 재판부는고엽제와 원고들의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패소판결을 내렸지만,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에서는 원고들의 손해와 제조물의 결함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피고들(고엽제 제조 미국 기업)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결함으로 인해 발생한 손해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게 서울고법의 입장이다. 특히 서울고법의 설계상 결함 지적을 눈여겨볼 만하다.

서울고법은 이 고엽제의 문제 성분(TCDD)에 대해 고엽제 공급 당시의 기술수준과 경제성 등에 비춰 그 함량 기준을 0.1ppm 이하로 설정하는 대체설계를 함으로써 그 안전성을 확보하는 게 기대 가능했지만 제조사들이 이를 게을리했다고 지적하며 설계상 결함을 인정했다.

이 서울고법 입장은 과학과 기술 수준에 대해 제조물 당시의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지식의 총체, 즉 '최고수준의 지식'까지 포함하는 판시를 했다는 의미가 커 학계에서도 주목한 바 있다.  

대법원 판결도 기본적으로 피고의 제조물책임에 대해 그 책임을 수긍한 서울고법 논리구조를 정당하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고엽제가 유발할 수  있는 질병의 인과관계 부분에서 항소심보다 그 범위를 줄였다. 염소성여드름은 '특이성 질환'으로 고엽제가 유발했다고 볼 수 있는 피해 범위라 인정했지만, 당뇨병 등 10여종의 질병은 '비특이성 질환'이라고 진단했다.

설계상 결함까지는 인정하더라도 마지막 인과관계 고리에서 몇몇 질병은 피해 구제(배상) 범위에서 밀려난 것이다. 고엽제에 노출된 단일 사유만으로 일어나는 게 아니라는 판시다.

옥시의 이번 견해(의견서)은 폐 손상이 특정 화학물질에 의해 특이하게 나타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비특이성 질환'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정말 변론할 거리가 마땅찮아서, 궁색한 변명으로 황사를 들고 나왔다기 보다는, 폐 손상 유발 가능 위험인자로 봄철 황사나 꽃가루나 담배, 가습기 자체의 세균 등이 워낙 많으므로 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는 초강수를 띄운 셈이다.

이렇게 되면 옥시의 책임을 끝내 입증하기 어려워지므로, 현재 민사소송과 별건으로 검찰수사 등 고강도 압박이 가해지는 게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마저 추정할 수 있다.

결론은 역시나 은폐 문제… 고위경영진 개입, 검찰이 밝힐까

마지막 인과관계의 고리를 끊겠다는 옥시 측 방어책에 말려들어 지루한 공방전만 치르다 결국 흐지부지되는 게 아니냐는 최악의 가능성마저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결국은 검찰에 기대를 걸고, 각종 자료인멸 논란 등 은폐 문제점에 대해 논리 구성을 차분히 해야 한다는 대응론이 오히려 설득력을 얻는다. 

실제 지금 서울중앙지검 가습기 특별수사팀은 S 전 대표 등 옥시의 전·현직 핵심 관계자들을 소환 조사하는 등 고삐를 바짝 죌 전망이다. 이른바 업무상 과실치사상 여부를 둘러싼 검토다. 

이미 검찰은 의학·독성학·약학 분야 등의 전문가 20여명으로 구성된 민간위원회에서 가습기 살균제와 폐 손상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기존 질병관리본부의 결론을 재확인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향후로 2~3주간 진행될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형사 처벌 대상자들의 윤곽이 잡힐 것으로 보이는데, 이 과정에서 나온 여러 정황과 지시 책임 등이 민사소송 즉  제조물책임에서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다.

검찰이 밝힐 것으로 기대되는 쟁점은 크게 셋이다. 우선 옥시 경영진이 2001년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하는 과정에 유해물질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이 인체에 해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여부다. 옥시는 PHMG가 들어간 가습기 살균제를 가장 먼저 만들어 시판했고, 가장 많은 피해자를 냈다.

문제가 된 제품이 인체에 유해할 수 있다는 회사 내부의 문제 제기가 있었는데도 이를 묵살하는 등 경영진이 개입했는지가 관건이다. 

둘째, 2011년 임산부와 영·유아 사망이 잇따른 이후 옥시가 자신들에게 불리한 증거를 조작하거나 고의적으로 없앴는지도 검찰이 밝혀내면 민사소송에서 요긴하게 사용될 수 있다.

옥시는 정부가 2011년 가습기 살균제와 폐 손상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역학조사 결과를 내놓자 이를 반박하고자 서울대와 호서대,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KCL) 등에 실험을 의뢰했다. 검찰 안팎에선 이 과정에서 옥시가 자신들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오도록 실험 조건을 조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최종적으로 영국 본사가 이 제품 제조·판매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검찰이 밝힐 숙제다. 

이런 부분에서 옥시 영국 본사-한국 책임자 간부층 등 고위층에서 어느 정도 위험성을 알았고, 문제 발생 후 이를 은폐했는지 밝히는가는 형사상 처벌 외에도 민사소송의 인과관계나 설계상의 결함 입증에서도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황사로 인해 폐 질환이 일어날 수 있다는 비특이성 질환 논쟁이 검찰의 수사를 자칫 헛수고로 돌릴 가능성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 논리를 깰 촘촘한 조사, 특히 강제조사 방법은 민사소송(제조물책임소송) 만으로는 어려운 만큼 검찰이 더 나서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검찰이 면죄부를 주는 통로 역할을 할지, 영국 현지 당국과의 사법공조 등을 통해 사실의 전말을 밝혀낼지 관심이 집중된다.

사회적으로 관심을 모으는 대형 민사소송의 증거조사를 검찰이 대신 떠맡는 게 아니냐는 걱정도 따르나, 공익을 대변한다는 검찰 존재 이유에서 보면 민사와 형사 양면의 난제인 이번 사안에서 역할론을 주문할 수 있다는 지적이 유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