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남편은 '남의 편'이고 시댁은 절대 본가가 될 수 없다는 얘기를 예전에는 크게 공감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둘째가 나오기 전까지 말이다.
초보엄마의 '독박육아'가 괴로운 것은 남편이 가사와 육아에 동참하는 물리적 시간이 적어서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공감해준다는 믿음은 생각 이상으로 힘이 되는데 심리적 지지자로서 남편의 역할이 마땅찮을 때 상상을 초월하는 배신감이 든다. 심지어 시댁이 그런 아들을 옹호하고 나서니 갈등의 골은 지구 내핵까지 뚫을 기세로 깊어지더라.
첫째가 태어났을 때 다행히 도와주실 친정엄마가 계셨고 덕분에 첫 육아휴직을 마친 뒤 쉽게 복직할 수 있었다. 돌도 안 된 아이를 어린이집에 안 맡기는 자체가 다행이니까. 아이 아빠 역시 그렇게 생각할 줄 알았다.
그러나 예정에 없던 둘째가 들어선 뒤 친정엄마의 황혼육아는 '모녀 동반 독박육아'로 변모했고 우리 부부의 틈은 시나브로 벌어지기 시작했다. 외아들로 자란 남편은 알게 모르게 장모님을 불편해했기 때문이다.
외동딸만 키워보신 엄마는 TV에 나오는 연예인 사위들처럼 살가운 '아들'을 원하셨다. 물론 그게 쉬울 리 있겠는가. 어느 순간 함께 식사하는 것조차 꺼려졌는지 남편은 우리 모녀를 피해 다녔고 심지어 불편한 기색을 감출 생각도 없어보였다.
결국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우리 집에서 첫째를 돌봐주시던 엄마는 내가 두 번째 출산휴가를 받은 직후 출퇴근을 고집하셨다. 그것도 사위가 출근한 뒤 오셨다가 퇴근 전 서둘러 돌아가시는 수고였다. 5년 전 아버지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시고 재작년부터는 류머티즘 관절염이 악화돼 힘들어 하시는 엄마였기에 버스를 타고 오가시는 게 속이 상했다.
그러다 둘째가 7개월쯤 된 작년 가을. 복직을 앞두고 쌓였던 감정이 폭발했다. 첫째는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었고 둘째도 입학이 확정됐기에 당연히 친정엄마께서 등·하원을 도와주면 될 것이라 여겼다. 최대한 장모와 사위가 마주치는 일 없이 조율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남편은 친정엄마께 매달 드리는 '월급'이 부담스럽다며 아이들을 어린이집 종일반에 보내든, 시댁(차로 2시간 거리)으로 보내자고 맞섰다.
첫째를 맡길 때 엄마께 약속한 수고비는 매달 150만원. 처음 남편과 협의한 것은 '시세의 70~80% 선'에서 매달 월급을 드리는 것이었다. 엄마는 육아뿐 아니라 청소, 빨래, 요리 등 살림을 거의 책임져 주셨고 오히려 큰 아이 간식이며 김치, 장도 손수 준비해주셨다. 돈 몇 푼이 아까워 애들 생고생 시키자는 거냐며 따졌지만 속내가 뭔지는 서로 알고 있었다.
4대독자 외아들로 자란데다 전형적인 '부산남자'인 사위 성격을 알 리 없는 친정엄마는 마치 나에게 하듯 잔소리를 하셨다. '술 많이 먹지 마라' '애들 앞에서 스마트폰 들여다보지 마라' '자기 전에 군것질 하지 마라' 등등.
자신을 중학생마냥 다루시는 장모가 편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짐작은 했지만 설마 주중 내내 애들과 떨어지는 것을 감행할 정도로 진저리를 칠 줄은 예상을 못해 충격적이었다.
남편은 그랬다.
"장모님이 내 자존심을 얼마나 짓밟았는지 당신이 알아?"
모른다. 사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이런 면에서 시부모님은 상당히 무던하신 분들이다. 두 분은 아직 일을 하고 계시고 휴일이 잘 맞지 않아 자주 찾아뵙지 못했다. 그럼에도 가끔 보는 며느리에게 싫은 말씀 하신 적 없고 우리 생활에 간섭도 안 하셨다. 그래서 우리 부모님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분들이라 믿었다.
하지만 '시댁은 절대 본가가 될 수 없다'는 경험자들의 충고는 역시였다. 남편을 설득해 달라며 하소연하는 나에게 시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렇게까지 해서 회사를 꼭 나가야겠니?"
곁들이는 말씀으로는 우리 며느리 경력도 있고 일도 잘하니 애들 좀 크고 나면 얼마든 다시 일 할 수 있을 거다. 지금은 애들을 위해서 좀 쉬는 게 좋겠다는 얘기였다. (어머니 며느리는 의사나 판·검사가 아니랍니다….)
처음 겪는 시댁 파상공세에 뻗어버린 끝에, 결국 회사와의 약속을 깰 결심을 했다. 퇴사하겠다는 보고를 하려니 눈물이 쏟아졌다. 일 할 때는 '출근하자마자 퇴근하고 싶다'며 키득대던 '월급루팡' 행세를 해댔지만 막상 10년 가까이 '기자'로 채워졌던 직업란이 '무직' 또는 '전업주부'로 바뀔 것을 생각하자 속이 쓰렸다.
정말 사랑스러운 내 새끼들 덕분에 나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묘한 기분이다. 이유가 뭐든 자의 아닌 타의에 의한 결정이기에 더 그렇다.
이런 상황이 우리 집 일만은 아닐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4월 기준 여성 21.8%가 △결혼 △출산 △육아 등으로 회사를 떠났다. 이렇게 경력이 끊긴 채 5년 이상을 보낸 여성은 61.2%로 절반이 넘고 가장 활발히 일할 30대의 여성 경력단절 비율은 53.1%에 달했다. 사실상 30대 여성 직장인에게 결혼과 출산은 수리 직전의 사직서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다시 우리 집 이야기로 돌아오면 사직서는 반려됐다. 편집부 배려로 재택근무 가능 부서가 생겼고 나는 이른바 '경단녀'의 꼬리표를 달지 않게 됐다. 물론 재택근무를 한다 해도 아이들과 같은 공간에 있으면 집중해서 일을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간 동안 혹은 잠든 사이 집중해서 일 하고 나머지 시간은 엄마로 사는 것. 이게 나와 회사가 선택한 최선의 방법이었다. 또한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들과 기업에 적극 추천하고 싶은 타협점이기도 하다.
문제의 시작이었던 남편과 친정엄마의 장서 갈등은 지금도 해결 또는 극복 중이다. 최근 2개월 사이 우리 부부는 별거 직전까지 몰린 끝에 몇 가지 합의에 성공했다.
재택근무로 처리할 수 없는 업체 미팅이나 외부 일정이 생길 수 있으니 일주일에 두 번 친정엄마가 아이들 등원과 하원을 맡아주시는 것 등등이다. 아직 타협해야 할 쟁점이 수두룩하지만 분위기는 비교적 냉랭하지 않다. 보름에 가까운 대화단절에 이어 이혼 서류를 사이에 두고 대화한 끝에 최악은 피했으니 다행이지 않은가.
또 하나 부부사이,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일종의 '포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기대하니까 실망하고 실망은 원망이 된다. 남편은 '남의 편' 맞다. 나 역시 애들 아빠를 호소남매 보듬듯 완벽히 감싸주기 어렵듯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