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전문 CEO, 극단적으로 나쁘게 말하면 바지사장 지휘 아래 대형사업을 수주했는데 이후 공사가 쉽지 않을 전망이라면? 오너로서는 입맛이 쓸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총선 약진 상황을 마냥 즐기기 어려운 문재인 전 대표의 이야기다.
문 전 대표는 지난 8일 내놓은 이른바 호남 발언 때문에 20대 국회에서 더민주가 제1당 자리를 예약한 상황에서도 웃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호남이 저에 대한 지지를 거두겠다면 저는 미련 없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겠다. 대선에도 도전하지 않겠다"고 배수진을 쳤지만, 끝내 호남은 국민의당을 선택했다. 국민의당은 심지어 비례대표 선출에서 더민주를 앞섰고, 여러 지역구에서 분투하면서 제3당의 위상을 차지했다. 3당 체제라는 개념을 16년 만에 한국 정치사에 부활시키는 등 20대 총선에서 최고의 수혜주가 됐다.
문 전 대표의 배수진을 호남이 철저히 외면하면서 당의 성공 효과를 그는 절반밖에 누리지 못하게 됐다. '절반의 성공'이거나 '절반의 실패'다. 심지어 '식언을 한다'는 비아냥마저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므로, 절반에 채 못 미치는 패를 받았다고 할 수도 있다.
다만, 선거 막판에 광주에서 무리한 승부를 던진 것이 전혀 효과가 없지는 않았다. 광주 공천과 비례대표 후보의 면면 때문에 호남 민심이 완전히 돌아선 상황이었다. 결과론적으로 호남 현지 민심을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수도권을 비롯한 다른 지역 20~40대 및 호남 출신 유권자 등 전통적 야당 지지자들이 반응하는 데에는 문 전 대표의 배수진이 어느 정도 역할을 했다고 볼 수도 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에게 당을 맡긴 문 전 대표의 의중 혹은 이른바 친노(親盧·친노무현)의 정서가 무엇인지가 짚어볼 대목이다. 이른바 '문재인 체제'가 계속 이어지는 것으로 김 대표의 지휘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당 안팍에서는 총선 정국에서 비례대표 2번 논란을 극복한 터라 이미 새롭게 '김종인 체제'라는 그림이 탄생했다고 봐야 한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런 시각은 김 대표가 비대위 시스템의 권위와 경제민주화 등 처리를 위한 최소한의 힘 이상을 바란다는 혐의를 전제로 한다.
문 전 대표나 친노로서는 호남 패권이라는 부정적 개념을 처리하기 위해 둔 무리수를 수습하는 적임자로 김 대표를 '모신' 것이지 '당권 헌납'을 한 게 아니라고 여길 수 있다. 때문에 총선 화려한 성적표가 문 전 대표와 김 대표간 새로운 위치 찾기 등 역학 구도 정립 문제가 불거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이제 총선 이후로 넘겨뒀던 이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문 전 대표가 여러 각도에서 무리수임에도, 전체적인 판세를 유리하게 일구기 위해 호남 발언을 한 것이라고 보게 되면 역학 구도 재정립 문제는 상당히 빨리 부각될 수 있다.
이회창-조순 갈등과 같은 치열한 싸움이 재연되지 말라는 보장도 없게 된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지난 1997년 대선에서 민주당(조순 후보)고 신한국당을 통합하는 작업을 이뤄냈다. 이렇게 한나라당을 창당한 후 이 전 총재는 대선 후보로 나서고(대권), 조순씨는 당권을 차지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정작 대선 패배 후 이 전 총재는 생각이 달라졌다. 그가 다시 정치 전면에 복귀할 명분은 물론 자리를 만들기 위해 주변 인사들이 압박, 사실상 '조순 토사구팽'을 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현재로서는 사실상 영남에서의 약진, 수도권에서의 선전 등 총선판에서 열린 과실의 대다수를 문 전 대표 등 기존 정치 인프라 덕에 거뒀다고 주장하지 못할 바가 아니고, 김 대표가 비대위 이상의 정치행보, 그 이후의 욕심을 갖고 있다는 혐의가 있기 때문에 문 전 대표 주변에선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서로 간에 아름다운 동거, 최종적으로는 아름다운 결별이 가능할지가 문 전 대표의 2선 후퇴(내지는 정치적 퇴장) 선택 여부에 달린 셈이다.
이를 모두 뒤엎으려면 문 전 대표가 정치의 비정하고 더러운 면에 확고부동하게 발을 담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에 입문한 과정부터 현재까지의 흐름에서 늘상 고고하고 악역과는 거리를 둔 그의 행보만으로는 이번 호남 발언 이후를 그려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