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새누리당이 4·13 총선에서 참패한 가운데 김무성 대표가 책임을 지고 14일 사퇴 발표를 하는 등 후폭풍이 불고 있다. 이른바 '진박(眞朴·진박근혜)'계 후보들도 절반만 살아남은 것으로 나타나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 패턴에 대한 민심 이반이 공식화된 상황 속에 새누리당의 향배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유승민 의원 탈당 등 공천 파동 속에서 등장한 진박 후보들의 생환율은 높지 않았다. 대구 생존율만 높았을 뿐 반타작에 그쳤다는 평가다.
곽대훈(달서갑), 곽상도(중남), 정종섭(동갑), 정태옥(북갑), 추경호(달성) 당선자 등은 원외 후보로서 기존 현역 의원이 공천 배제된 자리를 차지해 승리한 대구 진박 정치인들이다. 부산 기장의 윤상직 당선자나 인천 연수을에 도전했던 민경욱 당선자 등은 '분구'된 지역에 출마한 효과가 더해져 여의도 입성에 성공한 것으로 풀이된다.
전체적으로 보면 당의 지지세가 강한 곳에서도 진박 패배 케이스가 적지 않아 '낙하산 공천'에 대한 반발이 강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더 이상 박 대통령을 '선거의 여왕'으로 무한정 평가하기 어렵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차떼기당' 논란과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 이래 옛 한나라당-새누리당은 선거의 상당 부분을 '박근혜 마케팅'에 의존해왔다. 옛 한나라당 대표로 구원등판한 박 대통령은 당시 '천막당사'라는 승부수를 던져 역풍을 뚫어내며 121석을 만들어 냈고, 이후 '피습 사건' 때에도 선거 판세를 좌우하는 아이콘으로 기능해왔다.
그러나 이번에 내놓은 "진실한 사람을 뽑아달라"는 주문은 대구에서 약효를 발휘했을 뿐, 여타 지역에서는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다. 특히 영남권조차 낮은 투표율로 싸늘한 민심 이반을 드러낸 점도 간과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당초 생각했던 145석 내외도 아닌 제2당으로 내려앉은 성적표가 어느 정도 후폭풍을 일으킬지 가늠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다만 우선 '무대'로 불려온 김 대표가 총선 공천 와중에서 청와대와 각을 세웠지만 그도 수혜자가 되는 데 실패했다는 점 때문에 당내 역학 구도 재편에서 '안정적 집권 후반기 지원에 걸맞는 당선자 배출 실패=자중지란'이라는 공식은 사용이 어려워질 전망이다. 새로운 국면이 조성되는 가운데 '김무성 이후'를 논의해야 할 것이라는 얘기다.
김 대표는 청와대와 종종 각을 세워 온 데다 일명 '옥새 파동'까지 일으키며 결국 새누리당이 몇 군데 지역구에 공천을 내지 않는 상황까지 빚어냈다. 이번 총선에서 상당한 성적을 거두게 되면 바로 '자기 정치'가 가능했을 것으로 예측된 부분이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성적이 예상 외로 너무 나쁜 상황이 되면서 지도부 책임론을 자신부터 직접적으로 뒤집어쓰는 상황에 직면했다.
안대희 전 대법관이나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등 유력 대선주자급 인사들의 상황도 좋지 않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실패도 뼈저리다. 이른바 '김무성 몽니'의 여파로 쉽지 않은 지역구에 출마하게 된 잠룡들이 대거 상처를 입었다.
오 전 시장의 경우 민주당 원로인 정세균 당선자와 벌인 종로 활극에서 치명상을 입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등 대부분 득표율에서 나쁜 성적을 거두거나 다른 야권 정치인 부상에 조연이 돼 주는 상황을 맞아 재기를 기약하기도 쉽지가 않다.
새누리당의 가장 큰 문제인 유능한 정치인은 많은데 뚜렷한 잠룡군이 체계적으로 성장하지 못한다는 상황이 이번 총선 이후 본격적으로 대두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역설적으로 '박근혜 정치'에 대한 불만이 당에 타격을 줬음에도 그 이후를 떠받칠 대안 인력군이 부재한 상황에서 이에 대한 '응답'도 쉽지 않아 보인다.
우선 김 대표의 사퇴로 당 지도력에 진공상태가 발생된 상황을 오래 방치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황우여 전 부총리 등도 낙선, 당과 청와대 간을 긴밀히 이을 원로층을 찾는 게 쉽지가 않다. '관리형 지도체제'로 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에 19대 국회 운영 상황에 불만을 표시해온 청와대와의 관계에 큰 변화가 일어나기 어렵다는 풀이가 뒤따른다.
숫자만 많지 정부와 정권이 일을 도모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여당이라는 불만을 받아온 상황에서 외형적 지표도 나빠졌다. 더욱이 '유승민 계열' 등 이른바 일사분란한 움직임에 걸림돌이 돼 온 일부 인사들이 이탈해 버리면서, 여당 속사정이 오히려 정예화됐다는 해석마저 일각에서는 제기된다.
유 의원의 당선 등은 충분히 당혹스러운 상황이다.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이들을 다시 받아들여 제2당으로 내려앉은 상황을 극복하는것은 또 다른 문제로 보인다. 김 대표에 관한 막말 논란으로 당적을 버리고 무소속으로 나섰던 윤상현 의원 등과는 결이 다른 숙제라는 것.
따라서 무소속 당선자 중 일부를 끌어들여 제1당 지위를 다시 꿰차든, 현재의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정권 말과 대선 준비 국면을 준비하든 결국은 이번 총선의 참패를 청와대 책임으로 선언하는 일이 일어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에 당 안팎에서는 김무성 체제가 상황 판단을 잘못해 일어난 일로 매듭짓고, 총선 이후 나름대로 정비된 당 구성원을 데리고 가는 문제에만 골몰하면서 수습이 쉽게 이뤄질 가능성도 언급된다. 총선 패배 책임론이 찻잔 속 태풍으로만 이어질 가능성이다.
이렇게 되면 대권 후보군을 길러내고 대선을 치르는 문제에서 청와대의 의중이 전혀 배제되는 상황은 오지 않을 공산이 커진다. 이른바 오너십의 붕괴 상황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종종 대통령의 탈당으로 정치적 모멘텀을 만들어 보겠다는 유혹을 여권이 받아온 경우가 우리 정치사에 적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약진하기는 했지만, 이들도 당내 사정이 복잡한 점 그리고 3당 체제의 역학 구도를 능숙히 풀어갈 정치인들이 야권에도 충분치 않다는 점에서 새누리당은 이 구도를 견디면서 이후를 준비하는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20대 총선의 결과가 박근혜 친정체제 강화로 이어질 여지가 생기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