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지난달 7일 출시한 오리온 초코파이 바나나가 '품귀현상'을 일으키며 선풍적인 인기로 승승장구를 이어가는 가운데 과도한 '물량 마케팅' 전략을 내세워 부족현상을 유도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오리온으로 자리를 옮긴지 2년여 가까이 됐지만 과거에 비해 눈에 띄는 실적을 내지 못한다는 진단을 받는 유통전문가 허인철 부회장이 이러한 전략의 뒷배경으로 지목돼 관심을 모은다.
지난달 22일 오리온은 공식 페이스북에 "생산라인을 24시간 풀가동하는데도 물량 부족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충분한 양의 제품을 준비하지 못한 점에 대해 사과드리며 4월 중 생산 라인을 추가해 물량을 늘리겠다"고 신제품 품귀 사과문을 올린 바 있다.
이후 지난 11일 "출시 한 달 만에 누적판매량 1400만개를 돌파했다"며 "'초코파이情 바나나' 생산라인 확장을 완료, 제품 공급량을 늘리기 시작했기에 이번 주부터 기존 대비 50% 늘어난 물량을 매장에 공급해 품귀현상이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의도적 생산량 조절로 품귀 마케팅?
오리온 초코파이 바나나의 이런 인기와 달리 맛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이어져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실제 오리온 초코파이 바나나를 맛본 소비자 A씨는 "경쟁제품인 '몽쉘 바나나'보다 특별한 맛을 찾기 힘들다"며 "왜 품귀현상이 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네이트 블로그에 올라온 초코파이 바나나 맛 후기 역시 "바나나의 달달함도 못 느끼겠고 초코의 달달함도 못느끼겠다" "초코파이와 바나나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한 번 사 먹어볼 만하다" "바나나맛 우유 향하고 비슷한데 맛은 기존 오리지널보다 맛이 없다"는 등의 반응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의도적으로 제한된 물량을 공급해 소비자들이 구하기 힘들어 더 갖고 싶도록 만드는 전략이라는 주장에도 수긍이 가는 상황이다. 오리온이 의도적으로 생산량을 조절해 조금만 판매돼도 품절사태가 빚어지도록 ‘마케팅 전략’을 펼친다는 것이다.
오리온 측은 11일 보도자료를 통해 "슈퍼와 편의점, 마트 등 주요 유통채널에서 진열하자마자 동나는 등 품귀현상이 빚어지면서 초코파이 바나나 판매처를 공유하는 글이 퍼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국내 대형마트 3사의 점포를 모두 합치면 420여개. 1박스당 18개가 들어있는 오리온 초코파이 바나나의 한 달 누적판매량 1400만개를 일별 판매량으로 환산할 경우 하루 61.7박스가 팔린 셈이 된다.
여기에 CU, GS25, 세븐일레븐, 미니스톱, 위드미 등 편의점 5개사의 전국 총점포수(약 3만점)와 슈퍼를 감안하면 하루 단위 오리온 유통 공급량은 더욱 줄어든다.
대형마트 업계 관계자는 "최근 일주일간 발주 자체가 안 되고 있다"며 "현재 물량이 부족해 들어오지도 않는데 생산자체를 작게 잡아 물량 마케팅을 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고 의문부호를 붙였다.
◆둥지 이동 2년여, 초코파이 바나나로 휘두른 혁신의 칼
2013년부터 계속된 실적 악화에 시달리던 오리온그룹은 담철곤 회장과 이화경 부회장이 등기임원에서 물러나면서 2014년 7월, 허인철 전 이마트 대표이사를 부회장으로 영입했다.
신세계에서는 경영지원실 경리팀장과 재경·관리담당 임원, 그룹 경영전략실장을 거치면서 굵직굵직한 인수합병(M&A)을 성사시켰던 유통업계 출신의 전문인재인 허 부회장을 선임함으로써 실적 만회에 나선 것이었다.
취임 직후 회장실 폐지를 골자로 한 조직 개편을 단행하는 과정에서 절반 가까운 대규모 임원 교체를 단행했고 마케팅·디자인·홍보 등 지원부서 조직을 간소화하는 대신 영업·생산·연구 등의 핵심부서에 힘을 싣는 등 과감한 칼날을 휘둘렀지만 현재까지 이렇다 하게 내세울 실적이 거의 없는 상태다.
오는 6월 취임 2년째가 돼가지만 임원 절반 가까이가 교체됐음에도 지난해 홈플러스 인수전에서는 '전공'이었던 M&A 실력을 제대로 발휘도 해보지 못한 채 접고 말았다. 내놓은 신제품도 이렇다 할 히트상품이 나오지 않고 있다.
따라서 업계 호사가들은 이마트 사장을 역임했던 허인철 부회장이 유통 노하우를 살려 이번 오리온 초코파이 바나나 '품귀 마케팅'을 이끌고 있다는 것에 의견을 모으는 중이다.
실제, 허 부회장은 지난 2012년 11월 이마트 사장에 취임한 뒤 2014년 1월까지 영업과 마케팅을 이끌며 경쟁업체들뿐 아니라 제조업체들에게까지 '공공의 적'으로 여겨질 만큼 과감하고 혁신적인 마케팅을 구사했었다.
전단지상 '가격파괴'로 대표되는 허위·미끼상품과의 결별을 위해 '품절제로 보증제'를 실시하는가 하면, 신선식품 및 대표 가공식품 브랜드 연중 최저가 판매, 이마트 '반값' 피자를 위시한 '반값 시리즈'의 첫 단추를 끼운 것 등이 모두 허 부사장의 작품이었다.
2013년 7월에는 홍삼시장 독주체제를 이어가던 정관장을 향한 대항마로 기존 제품보다 최대 50% 싼 '이마트 홍삼정(240g)을 9만9000원에 출시하며 대형마트들의 반값 공세를 부추기기도 했다. 당시 홍삼 품질에는 거의 차이가 없는데도 한국인삼공사가 너무 비싼 값에 판매해 소비자들에게 바가지를 씌우고 있다고 주장하며 판촉전을 주도한 경험도 있다.
이런 만큼 허 부회장도 창립 60주년을 기념해 초코파이 탄생 42년 만에 처음 내놓은 자매제품 초코파이 바나나에 대한 소비자 반응이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 판단이다.
제과업계 관계자는 "3년여전부터 초코파이 신제품 개발을 위한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할 정도로 오리온이 이번 신제품에 거는 기대가 큰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