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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 134] 장애·비장애가 한곳에 어울리는 사회를 만들다

설립 목적 '장애인 고용'…열 살배기 노란들판

전지현 기자 기자  2016.04.04 19: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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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지난달 3월 설립 10주년을 맞은 사회적기업 노란들판. '가을 들녘에 곡식이 익어가는 풍경' '농부의 땀이 결실을 이루는 풍경'이라는 뜻을 지닌 노란들판은 실사출력 및 인쇄, 디자인전문 사회적기업으로 지난 2006년에 출발했다.

노들장애인야간학교(이하 노들야학)을 근간으로 하는 이 기업은 '차별 없는 세상'을 바탕으로 장애인 노동권과 자립생활이라는 목표 아래 설립됐다.

노들야학 전·현직 교사 출신 비장애인 2명과 노들야학 장애인 학생 2명이 현수막 기계 한 대를 구입하며 시작했던 노란들판은 현재 어엿한 연매출 20억원대 기업이 됐다.

총 14명의 구성원 중 장애인 고용비율은 50%. 노란들판의 성장과 함께 '희로애락'을 겪은 박시백 노란들판 디자인 팀장을 통해 10년의 발자취를 따라가 봤다.

◆노란들판, 장애인 고용비율 50% '불문율'

"'우리 다 함께 같이 살자'가 기업이념입니다. 현재 장애인인구가 전체 4.5%라고 하지만 출근길에 장애인을 본 적이 있나요. 누군가 '사회적기업' 타이틀을 뺏는다 해도 비정상을 정상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날까지, 우리가 장애인을 고용했다고 박수받기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이 일하는 모습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노란들판'의 목표입니다."

노란들판의 총 인원 14명 중 청각장애, 뇌성·근육마비 등 장애인은 7명으로 고용비율 50%에 달한다. 대부분이 '한 번 같이 한 인원은 끝까지 함께한다'는 기업이념에 맞춰 초창기부터 힘들 때까지 단 한명의 낙오자 없이 함께 걸어온 가족 같은 멤버들이다.

박시백 디자인 팀장은 "비장애인들이 장애인들을 한곳에 몰아넣고 똑같은 업무를 주며 관리하는 방식이 아닌 함께 일하는 구조의 노란들판 같은 기업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왔다"고 술회했다.

학창시절, 노들야학 교사 인연으로 설립 후 4개월 뒤인 2006년 7월에 합류했다 현재까지 몸담은 박 팀장은 노란들판이 '사회적기업이기 때문에 장애인을 뽑는 것'이 아닌 '장애인을 고용하기 위해 만든 기업'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회사 목적 자체가 '장애인 고용'이라는 얘기다.

장애인이기 때문에 보호받으며 획일적인 단순 작업을 주문하기보다는 일반 회사에서도 장애·비장애인들이 함께 어울려 일하는 모습이 우리 사회에 자연스레 자리 잡길 바라는 생각과 믿음으로 10년이 흘렀다고 회상했다.

박 팀장은 "특정 대기업에서는 장애인 고용을 늘리기 위해 별도 법인형태로 기업형 사회적기업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며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장애인 고용은 최저임금을 넘어 생활 임금을 받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루 택배, 10건 이상 됐으면"…소원이 현실이 된 오늘

힘든 시기도 있었다. 현재는 주문전화가 하루에도 몇백통씩 울리지만 초창기에는 하루 10통도 안 오기 일쑤였다. '하루에 택배 10건을 보내는 것'이 소원이던 바람이 이어진 1년여 뒤, 한 달 매출 1000만원에 이르렀고, 시간이 더 흐르자 '언제 한 달 매출 5000만원을 찍어보나'했던 소원은 기적처럼 현실이 됐다.

박 팀장은 "2006년에는 한 해 매출을 다 합쳐도 1억원이 채 안됐지만 '무조건 함께한다'는 믿음으로 시간을 보내다 보니 현재는 약 20억원 매출에 이를 정도가 됐다"고 웃었다.

설립 5년 뒤, 노란들판은 또 한 번의 시련을 맡는다. 정부로부터 받는 사회적기업 지원금 임금종료 1~2년 전을 앞두고 당시 매출을 토대로 재무상태를 추산하니 월 500만원의 영업적자가 눈앞에 뻔히 보였던 것이다.

더군다나 그때까지 노란들판은 '회사에서 일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만큼 실사출력에 관한 유경험자들이 아닌 무경험 장애인들을 중심으로 6개월여의 취업교육을 실시하는 동시에 작업까지 진행하는 방식을 유지했었다.

현장에서 교육하며 각 파트별로 장애인들의 적성에 맞는 작업을 찾고 여기에 인력을 배치하는 방식으로 업무를 배분하다 보니 자립커녕 가중되는 일들로 지치는 날이 이어지곤 했었다.

박 팀장은 "매출이 늘수록 이런 구조가 부침에 달했지만 우리는 '한 사람도 해고하지 않는다'는 고지식한 마인드를 고수하며 단 한명의 구조조정 없이, 되레 한명의 인력을 충원했다"며 "이를 해결할 방안으로 영입한 영업 및 대외협력 전문가 덕분에 임금지원이 끝나던 해, 적자를 면할 수 있었고 노란들판을 알리는 결과까지 얻었다"고 돌이켰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비정상을 정상으로 만드는 '노란들판'

현재 노란들판 팀장 인원 중 1명은 청각장애인이다. 모든 파트에 골고루 장애인들이 배치됐지만 비장애인들로 구성된 팀장 조직이 어느덧 이상한 구조로 인식됐다. 상황이 이렇자 장애인중에서도 팀장급을 뽑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고 '같이 함께 일하는 공간'임을 실현시키기에 이르렀다.

즉, 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노란들판의 존재 이유인 만큼 외부에서 비정상적으로 볼 수 있는 모든 요소를 배제한 것이다.

박 팀장은 인터뷰 내내 "지난 10년은 장애인 고용을 위한 '생존'에 힘써왔다면 앞으로의 10년은 '장애인'이라는 말조차 뺄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노란들판은 장애인 장려금을 제외하면 정부로부터 받는 지원금도 거의 없다. 10년간 실사 출력이라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한 노란들판 구성원 개개인의 땀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실이다.

◆앞으로의 10년, 새로운 먹거리 창출 '숙제'

이제 노란들판에 남은 숙제는 앞으로의 10년이다. 실사 출력을 중심으로 10년의 주수입을 이뤄왔지만 매출규모에 비해 순이익이 높은 편이 아니라는 판단에 따라 다음 10년의 먹거리를 인쇄·편집과 같은 고부가가치 산업에 집중할 계획이다.

박 팀장은 "새로운 먹거리 창출을 위해 미래성장기획팀을 가동했다"며 "정확한 포커스는 아직 구상 중이지만, 인쇄·편집 혹은 소재, 잉크 등 친환경 출력에 관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신중히 고려하고 있다"고 포부를 전했다.

이어 "그동안의 주요 고객층이 공공기관 및 시민단체 등으로 단순히 사회적기업이라고 해서 주문하는 경우도 있었다"면서 "앞으로는 신규고객 창출을 위해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장애인들이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더욱 확보해 나갈 것"이라고 자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