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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내 댓글 지워줘" 잊힐 권리와 책임

황이화 기자 기자  2016.03.31 17:5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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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성숙한 자유란 책임을 의미한다."

요아힘 가우크 전 독일 대통령은 자신의 저서 '자유'에서 이같이 밝혔다. 누구나 자유로울 수 있지만, 자유의 성숙도가 '책임'에 좌우된다는 것을 예리하게 짚었다.

지난 25일 방송통신위원회는 소위 '잊힐 권리(the right to be forgotten)' 국내 도입의 첫걸음으로 '인터넷 자기 게시물 접근배제 요청권 가이드라인(안)'을 공개하고 공청회를 열었다.

가이드라인을 통해 이용자 본인이 인터넷 상 작성·게시한 게시물에 대해 타인의 접근 배제를 요청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 해당 이용자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과 '프라이버시권'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자유를 권리로 보장해준다는 취지였으나, 전문가들은 이번 방통위의 가이드라인에 대해 게시판·게시물 등 범위 설정의 문제와 법적 근거 미비 등을 지적했다.

일부 시민 단체는 '알 권리' 침해를 우려해 '잊힐 권리'를 반대하고 있다. 특히 정치인이나 기업인 등 사회적 영향력이 큰 사람들이 이 잊힐 권리를 악용해 과거 안 좋은 사건들을 모두 지워 미화할 수 있다고 지적하는 상황이다.

논란은 많지만 실제로 많은 이들이 '디지털 장의사' 혹은 '디지털 세탁소'라 불리는 온라인 기록 삭제 전문 업체를 찾는 등 잊힐 권리에 대한 요구가 실재한다.

배우자가 될 사람에게 온라인상에서 옛 연인과 주고받은 대화를 들키고 싶지 않다는 사연, 온라인에 반(反)정부 성향 글을 게재한 것이 취업에 영향을 미칠까 두렵다는 사연 등이 소개되기도 했다.

과거에 무심코 올렸던 글이나 사진이 결혼이나 취업 등 일생의 사건에 장애가 될 것 같으면 얼마나 없애고 싶을까. 그 심정 이해는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게시물을 올렸던 자유에, 지울 수 있는 자유까지 '자유'만 거듭되는 자유의 남용이라는 생각도 든다. 글을 쓰고, 콘텐츠를 게시하는 등 일종의 '자유'를 누렸던 데 대한 '책임'은 뒤따르지 않는 듯 보여 씁쓸하다.

'한번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는 말은 동서고금을 막론한다. 자기 게시물을 마음대로 지울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기 앞서, 책임감있게 게시물을 노출시켜하 한다는 생각, 무책임한 행동과 표현(글)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전제돼야 한다.

한편, 잊힐 권리와 관련해선 알렉스 퍼거슨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구단 감독의 명언 "트위터(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인생의 낭비다. 인생에는 더 많은 할 것들이 있다"는 말도 되새겨볼 만하다. 잊힐 권리를 행사하는 순간, 게시물을 올렸던 과거와 그 흔적도 남기지 않고 지우는 시점이 모두 '낭비'되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