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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제조업 살리기 유행 못 타는 한국

임혜현 기자 기자  2016.03.29 08: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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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각국이 경제 살리기 에너지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세련된 금융업이 조명받던 시대에서 다시 원동력인 제조업에 대한 관심과 발전 방안에 눈길을 주기 시작한 것이 그 결과다.

이에 따라 밖으로 나간 제조기업과 공장을 다시 국내로 불러들이기 위해 각국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새로운 기술 마련에 마중물을 부어주는 역할을 국가가 본격적으로 맡기도 한다.

미국은 제조업의 부활 덕에 세계적으로 불경기가 계속되는 와중에도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대표적 국가다. 리쇼어링재단은 지난해까지 최근 6년간 해외기업의 유턴으로만 24만개의 일자리가 생겼다고 분석했다.

일본도 제조업 발전의 중차대함을 일찍이 깨닫고 민간과 국가가 머리를 맞댄 케이스다. 자동차 메이커 도요타도 해외에서 생산하던 캠리 등 일부 차종을 다시 일본에서 생산하기로 했다. 파나소닉도 전자레인지와 에어컨 생산 라인을 중국에서 일본으로 옮겼다.

부동산 부양 등 돈을 풀어 경제를 이끌어 나가던 중국도 최근 경기둔화에서 교훈을 얻어 기술력만이 살 길이라는 점을 재확인하고 있다. 이런 각성 효과 때문일까. 최근 기술력 강화에 대한 중국의 열기가 특히 뜨겁다.

중국 허베이성 정부가 투자해 설립한 회사인 반도체업체 XMC가 28일 허베이성 후안에서 메모리칩 생산공장 건설 기공식을 연 것을 놓고 세계 반도체 관련업계가 주목하는 상황이다. 중국 국영기업이 메모리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한다. 이번 공사에 투입되는 비용만 240억달러에 달한다.

이렇게 자국이 이미 확보했거나 경쟁국 대비 뒤떨어지는 기술력을 광범위한 투자로 강화하고, 그 생산을 국내에서 하게 해 생산유발효과의 애국주의를 표명하는 것은 세계 공통 현상이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만 떨어져 있다는 우려가 새삼 고개를 들고 있다. 

경상북도 상주시와 한국타이어 간 갈등이 좋은 예다. 2013년 9월 한국타이어는 상주시 등과 투자 협약을 맺었다. 2020년까지 2535억원을 투자해 상주 공검면에 국내 최대 자동차 주행시험장과 연구기지를 짓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이후 새로운 시장이 당선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산업계에서는 정책 연관성이 깨졌다는 표현으로 이런 상황을 표현한다. 공사계약 재검토 지시가 이뤄지면서 계획은 표류하기 시작했다. 이미 부지 조성을 위한 설계용역을 진행했던 한국타이어만 난감해졌다.

급기야 경상북도와 상주시를 상대로 21억원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1심을 맡은 재판부는 도와 시에서 청구액 중 60%인 13억원을 책임지도록 회사 승소 판결을 내렸다. 돌아가는 상황을 안타깝게 여긴 상주 사람들 일부가 나섰다. 지역 시민단체가 재유치에 나서는 등 해프닝이 빚어지기까지 했다.

'산업의 쌀'로 일컬어지는 반도체도 전폭적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경기도 평택의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시설 추진이 타지역에서 발목을 잡힌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전기는 공급 생산자로부터 최종 사용자까지 긴 구간을 지나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중간에서 전자파 우려 등으로 주민건강권 침해 논란이 일어났다. 결국 한국전력과 충청남도 당진시가 충돌했다.

밖에서는 주민 건강권 문제 외에 열매는 다른 지자체에서 따는데 곤란한 시설만 우리 땅을 지나간다는 불만이 더해진 경우로 풀이하고 있다.

북당진변환소 건축허가를 둘러싼 한전과 당진시의 갈등은 지난 2014년 12월부터 시작됐다. 2015년 4월 재신청도 결국 좌초됐다. 이에 한전 측은 2015년 8월 곧바로 행정심판을 청구하기에 이르렀다. 그해 11월에 당진시가 허가를 반려하는 바람에 손해를 입었다며 10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저간의 사정을 모두 간과하고 기업우선주의나 경제만능철학으로 일을 풀어가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제조업 되살리기가 아니고서는 글로벌 경제위기를 돌파할 방법이 없다는 절박함으로 대응하는 상황에서 우리만 각종 분쟁에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은 문제다.

우리 기술력이 세계적으로 부동의 상위권을 차지한다고 자신할 수 있더라도 이런 태도는 극히 위험한 낭비인데, 하물며 그렇지 못한 부문도 적지 않다.

제조업은 일단 잘 되면 관련업체(흔히 하청이라고 말하는)에까지 연쇄 파급효과가 대단하다는 점에서 금융 등에 매달리는 것보다 긍정적 측면이 크다.

전에 없던 먹거리를 창출하자는 '창조경제'를 추진하는 것도 좋으나 이런 튼튼한 전통적 산업기반을 다지는 것도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상황은 거꾸로 가고 있다. 자원은 없고 같이 나눠먹고 살아야 할 인구만 많은 나라에서 세계적으로 부는 제조업 살리기 바람을 외면하는 아이러니를 더 이상 방치할 것인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