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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두산에는 벽을 OO 남자가 있다

뉴미디어부 기자  2016.03.23 10: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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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프랑스 작가 마르셀 에메의 단편소설 '벽을 뚫는 남자(Le Passe Muraille)'는 평범한 우체국 직원 듀티율이 벽을 통과하는 초능력을 발견한 뒤 의적 '가루가루(garou garou)'로 행세하며 벌어지는 얘기다.

듀티율은 초능력으로 자신을 무시하는 상사를 골탕 먹이는가 하면 가난한 이웃들에게 훔친 보석을 나눠주며 영웅이 된다. 그러나 듀티율의 행복은 짧았고 '벽을 뚫는 남자'는 차가운 벽에 끼인 채 굳어버린다.

두산에는 벽을 '보는' 남자가 있다

두산그룹 계열인 두산모트롤이 지난해 말 사무직 직원 20여명의 명예퇴직을 종용하며 비상식적인 처우를 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명예퇴직에 불복한 직원을 하루 종일 벽 앞 테이블에 앉혀두고 고사시키는, 이른바 '면벽 대기발령'이다.

차장급 직원 A씨(47)는 지난해 11월 대기발령 직후 사무실 구석 자리로 밀려났다. 책상 앞은 사물함이 가로막았고 출근부터 퇴근까지 7시간 30분 동안 짧은 휴식시간 외에는 전화통화, 독서는 물론 자리를 옮기는 것도 금지였다. 물론 그에게 주어진 업무는 없었다. 종일 사물함 문만 바라보는 신세가 된 것이다.

A씨는 곧 경남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대기발령 구제신청을 냈다. 두산모트롤은 노동위원회에 "재배치 이전의 임시 자리였을 뿐"이라고 해명하며 A씨의 자리를 바꿔줬다. 면벽은 면했지만 손님용 원탁 테이블에 칸막이도 없는 자리였다.

그러나 지난달 25일 경남지방노동위회원회는 A씨의 구제신청에 대해 "대기발령은 부당하지 않다"고 판정했다. 이유는 △대기발령 대상 선정 기준이 합당하고 △사측 귀책사유로 평균임금 70%가 지급됐으며 △대기발령이라도 근태관리 위한 회사의 근무수칙 요구는 정당(신의성실에 따른 근로제공 의무)하다는 것.

이와 함께 두산모트롤은 A씨의 이의제기 이후 뒤늦게 재교육에 나섰고 석 달 만에 그를 자재관리 부서에 배치했다. 그러나 해외방산영업 경력 사원이었던 A씨는 사실상 기술직에 적응할 수 있을지 문제다. 회사 입장에서는 업무부적응을 이유로 다시 대기발령 조치를 하는 등 A씨를 내칠 명분이 생길 수 있다.

물론 회사의 퇴직종용에 시달리던 근로자가 소송을 제기해 이긴 사례도 있다. 다만 1년 이상 법정공방을 벌이며 회사의 압박과 부담을 고스란히 견디는 근로자는 많지 않다. 시간은 회사편이다.

◆"사람이 미래다"(혹은 직원이 사람이라고는 안 했다)

앞서 지난해 12월에도 두산그룹 계열사인 두산인프라코어가 일명 '명퇴 종결자'라는 오명을 쓴 바 있다.

당시 두산인프라코어는 사무직 모든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했고 1~2년차 신입만 31%(28)가 몰리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신입사원에 대한 부당한 압력이 있었다는 증언이 이어졌고 희망퇴직을 거부한 기술직 직원 21명에 대해 매일 A4용지 5장 분량 회고록 작성을 지시했다는 정황이 나오기도 했다. 이 와중에 지난 7일 박용만 회장(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남은 19대 임시회의 기간에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노동개혁법'등 경제 관련 법안을 통과시켜달라."

저성과자에 대한 해고 가능성을 열어둔 노동개혁법을 언급한 박 회장의 속내가 궁금하다. 자사 대기발령 사원들의 처분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닐까.

한편 최근 CEO스코어가 49개 출자제한 대기업 집단에 포함된 21개 지주회사의 올해 배당 현황을 발표했다. 조사에 따르면 ㈜두산은 지난해 1조7008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지만 912억6700만원을 배당했다.

회사 지분 40.67%는 총수 일가 몫이며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 3.65%, 박정원 ㈜두산 회장이 6.29%, 박용만 회장의 조카 박지원 두산중공업 부회장이 4.19%를 보유한 대주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