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마블 코믹스의 대표 히어로인 캡틴아메리카는 미국의 수호신이며 정의로운 영웅으로 묘사된다. 외모 역시 금발 벽안의 전형적인 백인 미남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푸른 복면 아래 숨겨진 진짜 모습이 동양인이라면 어땠을까?
미드 '슈퍼내추럴'의 캐빈으로 친숙한 배우 오스릭 차우(Osric Chau)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몇 장의 사진을 공개했다. 평소 다양한 코스튬플레이를 즐기는 것으로 유명한 그가 이번에는 동양인 캡틴아메리카로 분한 것.
팬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일부는 ‘도널드 트럼프라는 재앙으로부터 당신의 조국과 세계의 안녕을 지켜달라'(Captain America please save your country and rest of the world from the disaster called Donald Trump)는 진심 섞인 농담도 건넸다.
캡틴아메리카는 애국심과 미국인의 이상향을 상징하는 히어로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맞서 '하울링 코만도스'를 이끈 전쟁영웅이며 미국의 패권주의적 정책과 위선에 회의를 느끼고 정부와 대립하기도 하는 절대선(善)이다.
평범한 미술학도였던 스티브 로저스가 '슈퍼혈청'으로 초인의 힘을 얻고 캡틴아메리카로 진화, 전장을 누비던 1940년대는 인종차별과 편견이 지배하던 시대였다. 그러나 캡틴과 하울링 코만도스는 동양인과 흑인이 똑같은 전우로 활약한다.
특히 영화 '어벤저스'에서 보듯 캡틴은 70년 만에 해동됐음에도 흑인인 닉 퓨리(사무엘 L 잭슨)의 명령을 따르고 팔콘(안소니 마키)과 팀을 이뤄 하이드라와 맞선다. 스탠딩 코미디의 소재로도 등장했던 성자에 가까운 그의 면모를 감안한다면 '미국대장'이 동양인이라도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어제는 유엔 총회가 선포한 세계인종차별철폐의날(International Day for the Elimination of Racial Discrimination)이었다.
196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벌어진 샤프빌 학살을 계기로 매년 3월21일은 인간 존엄과 평등의 가치를 되새기는 기념일이 됐다. 하지만 차별과 편견, 배타적 이기주의는 비단 인종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근래에는 종교, 집단, 진영 간 배타성이 심각한 문제로 부상했다. 테러와 전쟁으로 비화되는 만큼 과거 인종차별 또는 인종분리보다 더 복잡하고 더 과격하다.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소속 도널드 트럼프가 온갖 설화(舌禍)에도 돌풍을 일으킨 배경에는 경제 위기에 따른 백인 중산층의 분노와 진보적 흑인 대통령을 향한 불만이 깔려있다.
이는 캡틴아메리카가 상징하는 이상향, 즉 자유와 포용, 개방 등 선한 미국의 이미지가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는 뜻이다. 대신 트럼프식 막말에 드러나는 폐쇄주의와 배타적 이기주의가 이를 대신하고 있다.
비슷한 현상은 대한민국 여의도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4·13 총선을 앞두고 여당은 대통령을 내세운 진영논리로 특정인에 대한 공격성을 적나라하게 노출했다. 야당 역시 고인(故人)이 된 전직 대통령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공천권을 무기 삼았다. 이 모든 과정이 언론을 통해 실시간 중계됐음은 물론이다.
'편견'과 '배척'은 굳이 국가의 이상향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대부분 나라에서 지양하는 부정적 가치다. 그러나 최근 미국과 대한민국에서는 선거 기간 내내 '나쁜' 가치들이 이슈를 선점하고 있다. 심지어 뉴스를 접하는 시청자 또는 독자들이 이를 거부할 권리도 없다.
미국과 한국의 차이는 일탈의 주체가 누구냐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불만 많은 유권자들이 트럼프에 동조하며 이상 현상을 주도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청와대와 여야 지도부 등 정치 지도자들이 앞장서서 유권자들에게 피로감과 경멸을 안기고 있다.
'동양인 캡틴아메리카'가 어색하지 않을 만큼 평범한 사람들의 세상에서 편견과 차별의 벽은 낮아졌다. 그러나 최근 국내 정치권은 배타성에 찌들어 완전히 이성을 잃은 모습이다. 부정적인 가치를 부숴야 할 그들이 오히려 잠식당한 상황. 슬프게도 이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유권자 개인의 자정의지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