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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엄마 희로애락] 김무성 대표 ‘마더센터’ 반대입니다!

‘준비되지 않은’ 부모 없어야…美 성교육 인형 돌보기 도입 고려해야

이수영 기자 기자  2016.03.15 09:0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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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지난 한 주는 개인적으로 힘든 며칠이었다. 평택 원영이 사건을 비롯해 태어난 지 100일도 채 안 된 아기가 부모의 폭행과 방치 끝에 숨진 것 등등. 아이 키우는 사람으로서 차마 눈 뜨고 못 볼 끔찍한 이야기가 머릿속을 가득 채웠기 때문이다.

사회부 초년병 때 나는 강력사건 마니아였다. 한창 '미드' CSI 열풍이 불던 시기와 맞물려 인간끼리 죽이고 죽는 사건들에 둘러싸여 밤새 관련 서적과 논문을 파고들었다.

변사 사건 취재를 하며 현장 사진은 수시로 관찰했고 어깨너머지만 부검실 참관도 해봤다. 그랬던 내가 뉴스를, 심지어 사건기사를 보고 멀미를 일으키다니.

◆"지킬 것이 생기면 인간은 약해지나 봐"

유난일지 모르겠다. 둘째가 생후 50일을 갓 넘겼을 때 기침을 하더니 순식간에 모세기관지염으로 악화됐었다. 동네 소아과와 규모가 좀 더 큰 준 종합병원에서는 '아기가 너무 어리니 대학병원으로 가라'며 소견서를 들려줬더랬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종이 한 장 펄럭이며 병원을 나서는 내가 얼마나 무기력하고 쓸모없어 보였는지 모른다.

작년 12월 가스배관을 타고 학대에서 탈출한 인천 A양, 비슷한 시기 덜 떨어진 아비에게 목숨을 잃고 시신까지 훼손당한 소년, 겉으로는 목사와 교수로 치장한 괴물에게 희생된 여중생 등 고구마줄기처럼 드러난 아이들의 상처는 절대 익숙해질 수 없었다. 내 아이가 아팠을 때 엄마인 나도 아팠으니까.

기침이 심해지는 둘째를 안고 결국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아프지 않게 해주려고 데려간 응급실에서 태어난 지 2개월밖에 안 된 어린 몸에 링거 바늘을 찔러 넣는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봐야 했다. 아이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좀 더 따뜻하게 입혔어야 했는데. 어린이집에 막 등원을 시작했던 첫째와 완벽하게 분리해서 돌봤어야 했는데. 더 많이 안아주고 체온을 올려줘야 했는데. 결국 드는 생각은 하나였다. ‘내가 아이를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구나.’

그랬던 내 아이와 비슷한 또래 신생아가 상상도 못할 폭행에 숨을 거뒀다니. 웃는 모습이 사랑스러운 원영이는 부모에게 버림받고 추위와 굶주림, 공포 속에 죽어갔다니. 이건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문제가 너무 명확한 상황에서 가장 힘 있는 사람들이 헛다리짚고 있다는 걸 아는데. 핵심을 말하는 이는 왜 없는 걸까?

◆부모역할을 모른 채 아이 낳아 힘들다? 모르면 안 된다


"부모역할을 모른 채 아이를 낳아 힘들어하는 부모가 많다. 사회적 도움이 절실하다."

김무성 대표가 14일 새누리당의 5대 핵심공약을 발표하며 한 말이다.

다시 묻고 싶다. 부모역할을 모르는 사람이 아이를 낳는 게 최선인가? 부모가 되기 이전, 청소년 이하 유아동에게 올바른 부모의 롤모델과 본인의 몸을 지킬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해주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지 않을까? 심지어 집권 여당이며 앞으로도 정권 방어의 의지가 있다면 말이다.

14일 보건복지부와 경찰청 등에 따르면 국내 아동학대 사례는 2011년 이후 4년 동안 77% 급증했다. 2010년 아동학대 신고건수는 5657건이었지만 이듬해 6058건으로 늘었고 2014년 1만27건을 기록하며 2배 가까이 폭증했다.

최근 매스컴에서는 아동학대의 원인으로 건강하지 못한 가정을 꼽는다. 콩쥐팥쥐나 신데렐라 동화처럼 이혼·재혼 가정에서 아동학대가 빈번하다는 것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아동 학대에 의한 살인범 10명 중 8명이 부모 또는 양육자며 소름끼치게도 친엄마가 39.6%로 가장 많다.

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친모에 이어 △친아버지(23.7%) △계모(11.3%) △부모의 동거인(4.7%) △양부모(3.8%) 순으로 피 안 섞인 남이 학대를 저질러 아이를 죽이는 경우는 비교적 적다.

항거불능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학대와 살인, 그것은 결국 준비되지 않은 자가 '부모'가 됐을 때 벌어질 수 있는 가장 끔찍한 결말이다. 그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도 상당히 주효한 사회적 대응이다.

그러나 이보다 먼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아이를 낳고 양육을 포기하는 [불량품]을 걸러내는 작업'이 아주 장기적으로 체계화돼야 한다.

특히 윤리 교육을 포함한 성교육을 법제화, 제도화해야 한다. 스웨덴의 경우 세계에서 처음 교과과정에 성교육을 포함했으며 인간의 생식을 '사랑'과 연계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성교육을 체계적으로 진행한다.

그 결과 스웨덴 청소년의 성의식은 상대적으로 건강하다. 결혼 이후에도 정절에 대한 인식이 확고하고 유희적, 일시적 쾌락은 금기하는 인식이 바로 잡혔다는 얘기다.

생식과 잉태의 생물학적 결론은 아기, 즉 생명이다. 아이가 태어나 보살핌을 받고 온전한 성인으로 자라기까지 부모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부모가 아이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 아이의 인생은 엉망이 된다.

◆육아의 무거움, 경험 없이는 못 느껴

실체적인 성교육의 성과로 꼽고 싶은 것은 미국의 사례다. 재작년쯤 즐겨 찾던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미국식 성교육의 방법으로 '인형 돌보기' 수업에 대한 소개를 봤다.

말 그대로 신생아와 똑 닮은 인형을 주에 따라 1주일~1개월간 직접 돌보면서 육아 부담을 고스란히 체험하는 수업이다. 남녀 구별 없이 12학년(우리나라 고3)이면 반드시 이수해야 한다.

미국의 성교육은 청소년의 임신과 성병 방지가 사회적 과제로 자리 잡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무조건 성관계를 막는 게 아니라 '사후 예방'에 방점을 둔다.

이 인형은 1시간 안에도 수시로 울며 부모(학생)를 찾는다. 실제 신생아처럼 우유와 안아주기를 조르며 트림을 못해도 자지러진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아기'가 왜 우는지를 찾아 돌봐야 한다.

인형의 등에는 카드 삽입 장치가 있고 △놀아주기(Attention) △맘마 주기(Feed) △트림시키기(Burp) △기저귀 갈기(Diaper Change) 카드 가운데 상황에 맞게 꽂아야 한다.

만약 울음이 멎지 않거나 방치하면 낙제. 배터리를 빼거나 기록을 조작하는 것 역시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한 학생이 수면부족에 시달리다 인형을 화장실에 던져 울음을 그치게 했는데 이튿날 학교에 가져가니 '아기가 사망했다'며 낙제로 처리했다 한다.

인형을 돌보는 학생은 매일 아기가 언제 밥을 먹고 얼마나 놀았는지(안아줬는지)에 대한 육아일지를 작성해야 한다. 아기 인형과 일지는 학교와 집을 불문하고 항상 지녀야 한다.

지역에 따라 인형대신 밀가루나 설탕을 아기처럼 꾸며서 늘 들고 다니게 하는 것으로 이를 대신하기도 한다. 가방에 넣거나 사물함에 밀가루 아기를 방치하면 당연히 낙제다. 내 몸처럼 안고 다니며 보살펴야 하는 내 아기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다.

물론 살아있는 아기는 저 카드보다 훨씬 많은 선택지를 요구하고 카드만 넣으면 울음을 그치는 게 아니라 원하는 것을 아침이 밝을 때까지 해줘야 잠잠한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탓에 초보엄마들이 가장 기다리는 것 중 하나가 일명 '백일의 기적'이다. 백일 이전 신생아는 정말 1시간 간격으로 울며 밥을 보챈다. 그랬던 아기들이 비로소 백일을 즈음해 4시간 이상 '통잠'을 자기 시작하면 그날은 엄마의 '광복절'이다.

당연히 우리 둘째처럼 100일이 되든 뭐든 엄마를 깨워야 속이 편한 소악마도 있다. 지난 4년간 아이 둘을 연년생에 가깝게 키우면서 한 번에 4시간 이상 붙여서 자본 적이 없으니까. 아이 성향이 다르고 엄마의 인내심에 따라 다르지만 상당수 엄마들은 이를 '백일의 기절'이라고 한다.

중요한 것은 학생들은 이 수업을 통해 무분별한 성관계, 준비되지 않은 임신의 끝이 무엇인지 깨닫는다는 것이다. 누군가 내 삶을 방해하고 잠조차 못 들게 한다면 상당한 고통인데 그것이 내가 낳은 아이라면?

물론 대부분의 부모는 이를 감수한다. 목숨보다 소중한 내 새끼니까. 그러나 전혀 준비되지 않은 임신, 원하지 않는 출산이었으며 심지어 경제적 빈곤이 겹치면 생물학적 부모의 피폐함은 몰라도 아이의 생존권이 위협당하기 십상이다.

최근의 비극은 어느 날 갑자기 벌어진 이상현상이 아니다. 성폭력과 가정폭력, 아동학대 등 피해자의 인권이 특히 중시돼야하는 범죄에서 상당수 피해자들은 신고보다 개인의 인내력을 시험하며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고 최근의 현상은 공권력에 '접수되는' 사례가 늘었을 뿐이다.

늘 우리 곁에 있었던 일이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귀를 막고 입을 막고 살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집안일이니까'라며 무관심한 어른들이 원영이를, 이름 모를 아기 천사들을 고통 속에 방치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오지랖'이 필요한 상황은 바로 이런 때다.

이미 다 자란 어른들이 학대 아동에 대한 '선한 오지랖'을 펼칠 동안 한시라도 빨리 준비되지 않은 부모들을 양산하지 않도록 올바른 성교육이 정례화, 법제화되길 바란다. 준비되지 않은 부모는 누구에게도 불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