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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25시] 다시 있어서는 안 될 '나영이 선거캠페인'

김동현 기자 기자  2016.03.05 15: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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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2008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유아 성폭행범 조두순 사건의 피해자 '나영이'가 불현듯 20대 국회의원 선거판에 등장해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당시 주치의였던 A씨가 서울의 한 지역구 예비후보로 나서면서 자신의 선거활동 일환 삼아 나영이를 활용한 것이죠.

나영이의 이름은 해당 지역 길거리 현수막에 걸렸고, A씨 선거사무소 개소식에서 상영된 동영상에는 나영이의 환자 당시 모습까지 또다시 공개됐습니다.  

A씨는 지난 2월 선거 현수막에 '나영이 주치의'라는 문구를 써넣어 적잖은 논란이 일었는데요, 한 정당에서만 7명 정도의 예비후보가 난립하는 선거구 지역이라 어지간히 말들이 많습니다.

특히 A씨가 현역 비례대표 의원이라 뭐 하나라도 트집 잡힐만한 게 나타나면 여타 후보들에게는 '공공의 호재'가 아닐 수 없는 그런 상황이긴 합니다.  

하지만 '나영이 홍보 활용' 사건을 정치판 난타전 에피소드쯤으로 볼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일각에선 의사로서 윤리의 선을 넘었다는 지적까지 나옵니다. '환자에 관한 모든 비밀을 지킨다'는 히포크라테스 선서 중 주요 대목 하나를 저버렸다는 것이죠.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그렇다 치더라도, 이번 논란은 선거캠페인의 윤리적 기준을 새로 잡아야 할 이유를 보인 사건으로 기록될 만합니다. 상대 후보를 비방하는 네거티브 선거 전략은 늘 있었고, 또 4·13 총선을 앞두고도 암암리에 흔히 벌어지는 것으로 알려집니다.

이번 일은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긴 한데,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에 기존의 어떤 사건을 빗댄 해석을 내놓기도 쉽지 않습니다. 당연히 판례도 희박합니다.

그럼에도 성폭행 피해 아동의 주치의였다는 점을 홍보 내용으로 내세우며 아이의 이름을 재차 공공연하게 알리는 일은 합당하지 않다는 확신은 듭니다. 자신의 선거 홍보를 위해 제3자로 하여금 정신적 피해를 감수하도록 동의를 구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입니다. 

A씨가 나영이와 나영이 부모로부터 어떤 식으로 동의를 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설령 나영이의 부모로부터 '내 아이의 이름을 내걸고 선거캠페인을 벌여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하더라도 A씨가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았나 하는 견해입니다.

이 아이에게는 심대한 정신적 폭행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회초리를 심하게 휘둘러도 구속되는 세상입니다. 손찌검이나 회초리와는 종류가 다르지만 '선거판 나영이 홍보'는 당사자에겐 정신적 폭행일 여지가 다분해 보입니다.

나영이가 희생된 '조두순 사건'이 언론을 통해 방방곡곡 알려졌기 때문에 일반적인 상황과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상처가 아물어가고 있는 피해자에 대한 또 다른 형식의 정신적 폭행일 수 있다는 점에서 걱정이 앞섭니다.   

A씨 선거사무소 측은 본지 취재에 대해 "(개소식에서) 나영이 영상이 상영될 때 나영이 아버지도 그 자리에 참석했었고 문제의 영상이 이미 언론을 통해 공개 된 바 있기 때문에 당시엔 문제가 될 게 없었다"고 항변했습니다만, 이런 답으로 이번 일이 양해가 될까요. 

유명 병원 정신과 의사 출신이자, 유력 정당의 아동·여성성범죄근절특별위원회에서 간사로 일한 경력이 있는 A씨로서는 '나영이'가 자신의 이력을 상징적으로 잘 드러내는 키워드일 것이란 짐작은 듭니다.

A씨 입장에선 '나영이 주치의' 이력이 국회의원 배지를 다는 데 유리할 것이란 판단으로 이를 거리 현수막에까지 내걸었을 테지만 이를 보는 사람들이라면, 더군다나 부모 입장에 선 사람들이라면 어떤 마음이 들지, A씨가 깊이 고민하고 결정한 것인지 의문입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아동 정신 전문가'라는 이미지를 챙길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한편으론 '국회의원 되려고 수단방법 안 가리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비난받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선거사무소에서 상영된 7분32초짜리 영상에서 배변 주머니를 찬 나영이의 사진은 3초 정도 노출됐다는 전언이 나돕니다.

'나영이' 그 여린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먹먹해지고 치가 떨리는 사건으로 떠오릅니다. 그러나 A씨에게는 새로운 정치인생의 막을 열게 할 중요한 이름인 듯합니다. 나영이는 미래가 힘들어졌지만, A씨는 '나영이'로 새 인생을 준비합니다.  
  
이번 일과 관련해 A씨 측도 잘못과 실수를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억울하고 안타까운 점도 있다고 합니다. 

A씨 한 측근은 5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현수막 건이나 홍보영상에 대한 비판 등은 겸허히 받아들이고, 불찰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주관적인 해석이 개입이 되다 보면 사실과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경선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해당 선거구의 한 정당) 예비후보가 7명인데, 현수막 건이 논란이 일자 앞서 문제될 게 없었던 홍보영상까지 '제보'라는 이름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측근은 "개소식에서 상영된 영상은 이미 언론에 나왔던 것이고, 문제의 영상도 외주에 맡겨 제작한 것"이라며 "마치 우리가 기존에 없던 영상을 새로 제작해 공개한 것처럼 호도되는 것 같다"고 항변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