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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62] 다친 마음 치유하는 심리 마데카솔공장 '곁愛'

문화예술협동조합, 문화 예술 테라피·그림 동화책 제작·커뮤니티 공간 운영

황이화 기자 기자  2016.03.02 08:3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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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서울 구로구에는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들어선다는 것조차 신기한 이야깃거리가 되는 동네가 있다. 개발은 더딘 곳이지만 작은 공원과 도서관, 인심 후한 시장이 있는 사람 냄새 가득한 동네다.

구로에 터를 마련한 서울시 마을기업·문화예술 협동조합 '곁애(곁愛)'는 마을에 숨겨진 따뜻하고 소중한 이야기를 채록해 '동네방네 그림책' 시리즈로 발간 중이다.

'철길을 걷는 아이' '희희희 미용원' '형제설비 보맨' '소영이네 생선가게' 총 네 권의 그림 동화책에는 마을을 지켜온 사람들의 실제 이야기를 녹여냈다. 웃음 짓게 하는 귀여운 표현과 코끝 시린 감동 스토리가 어우러졌다.

2008년 '배꼽 빠지는 도서관'에서 시작된 '곁애'는 마음의 상처를 깨끗이 치료한다고 해 '마데카솔공장'으로 통한다.

방황하는 청소년을 문학과 예술을 통해 치유하고, 자아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이곳 조하연 대표의 꿈이었다. 조 대표의 바람처럼 이곳을 찾는 아이들은 기타, 드럼을 배우고 2박3일 함께 여행을 떠나는 등 자아를 깨닫는 경험들을 하게 된다.

배꼽 빠지는 도서관은 2013년 서울시 마을공동체에 선정됐고 이후 북카페 '곁애'로 전환했다. 2015년에는 문화예술 협동조합으로 재조직했고, 같은 해 서울시 마을기업 인가를 받았다. '곁애' 사업은 △북카페, 세미나실 등 '커뮤니티 공간' △시 창작 교실 '문화예술 테라피' △동화책 제작 '그림책 공장'으로 범위가 넓어졌다.

이야기를 곁에서 더 듣기 위해 구일역 인근 '곁애' 커뮤니티 공간을 찾아 조 대표를 만났다.

메뉴판엔 직접 로스팅한 원두와 오렌지 청으로 만든 오렌지 아메리카노 등 프렌차이즈 카페 못지 않게 음료가 다양했다. 커뮤니티 이용 금액은 3800원. 음료 가격과 공간 이용료가 포함된 것으로, '곁애'를 찾는 아이들과 함께 정했다. 수익은 '곁애' 운영비로 사용된다.

◆마을 어르신 추억 담은 그림 동화 자서전

'동네방네 그림책' 시리즈는 '허름하고 오래된 곳에서 공간을 유지하고 있는 분들을 깊이 알아보자'는 생각에서 시작됐다. 그분들에게 그림책 자서전을 선사하자는 것이 '곁애'의 목표였다.

"'소영이네 생선가게'를 쓰려고 아이들이 직접 손님인 척 하면서 소영이네 생선가게를 찾아갔어요. 책에 실린 그림들은 마을 어르신이 직접 그리신 겁니다. 소싯적 꿈이 화가였다고 하세요. 수십년 만에 붓을 들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참 멋지게 그려주셨죠."

아마추어 작가에게 그림을 맡긴 건 의도된 바다. 조 대표는 주민, 학생들을 작업에 참여시켜 이들이 못다 이룬 꿈을 이루거나 향후 관련된 일을 할 때 포트폴리오로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랐다.

'소영이네 생선가게'라는 한 권의 책에는 화가 첫 데뷔전을 마친 마을 어르신, 책 편집을 멋지게 해낸 가난한 뮤지션 청년 등 참여한 사람들의 정성이 스며들었다. 그래서인지 읽어본 이들마다 호평이다. 박원순 서울 시장도 책에 서평을 남겼다.

"며칠 전 소영씨가 그림책을 안고서 표지와 똑 닮은 사진을 찍어 보내줬어요. 생선가게 어르신도 책이 참 좋다고 칭찬해주셨습니다. 살면서 이런 기쁨과 보람을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모든 걸 다 가진 듯 행복합니다."

아이들, 이웃과 사랑을 나누며 얻는 보람은 힘이 되지만, 단체를 운영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곁애' 운영진은 정부 지원금을 허투루 쓰지 않고, 지원과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 바삐 움직이는 중이다.

◆詩 테라피 '나를 보는 시, 세상을 보는 시'

곁애의 근간 사업 중 하나는 '시 테라피'다. 말 그대로 시를 통해 치유하는 것. 대체로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해왔고, 성인을 위한 시 테라피도 진행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내면에 직면하는 방법을 잘 모릅니다. 자기 스스로 마음 상태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갑자기 분노하는 등 감정 조절이 어려워질 수 있어요. 시 테라피는 자신을 들여다 보는 훈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곁애'는 시 테라피를 통해 자신의 마음과 감정의 실체를 파악하는 방법을 전파하고 있다. 고난을 이겨내고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다.

"시를 쓰려다 보면 생각을 떠올려야 하고, 떠오른 생각을 글로 써내려면 그 생각의 비율을 맞춰보는 등 가다듬어야만 합니다. 이 과정에서 자아성찰을 할 수 있는데요. 시테라피는 단순히 교육이 아니라 삶 속에서 끊임없이 진행돼야 하는 진지한 성찰이라 생각해요."

시 테라피는 게임을 통해서도 진행된다. 아이들은 나무토막에 각자 상처받은 마음들을 하나씩 적어 넣는다. 아이들은 게임을 진행하며 서로에게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를 털어 놓고,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한다.

마음속에 숨겨뒀던 상처를 시원히 꺼내 보이는 것만으로도 조금씩 상처가 아물게 된다. 이후 일련의 과정들 후에 글로 옮겨 써보는 것.

"시 테라피 과정 중 초반에는 아이들 시의 주제는 대부분 '나는 힘들어'예요. 그런데 시를 계속 쓰다 보면 아이들은 점차 나 아닌 '세상'을 보더라구요. 이때쯤 구둣가게 아저씨 발뒤꿈치를 보고 시를 지어보라는 주문을 하는데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인간에 대한 애정이 형성될 거라 기대합니다."

이곳에서는 시 테라피 외에도 작가와의 만남, 작가 교실, 인문학 테라피, 일러스트·포토그래퍼·싱어송라이터 프로그램 등 문화·예술 테라피를 전개하고 있다.

한편, 세상을 등지려는 생각까지 했던 한 중학생은 '곁애' 시 테라피를 통해 나와 세상의 이야기를 시로 써보며 마음을 다잡아 지금은 어엿한 '문학청년'이 됐다. 조 대표는 이런 아이들을 보며 함께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곁애'를 찾아 온 마을 어린이가 청소년이 되면 청소년 봉사자로서 청년보조강사와 합심해 문화 예술 강의를 직접 맡는다. 청년보조강사 역시 마을 주민이다. 

조 대표는 "'곁애'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마을 속 전 세대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길 희망한다"는 말로 인터뷰에 마침표를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