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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인물 37] 지역주의 깨고 두자릿수 득표율 일군 신기록 보유자…금천구 강성만

임혜현 기자 기자  2016.02.29 16: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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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서울 금천구는 '여당의 험지'로 많은 이들이 꼽는 몇 안 되는 지역구다. 이목희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이 현역 의원으로 버티고 있는 데다, 호남 연고 인구가 적지 않아 새누리당 깃발로는 명함을 내밀기조차 어렵다는 이유를 거론하는 의견도 있다.

이런 가운데 문태중, 목포고를 졸업한 호남의 아들이 새누리당 공천을 희망하고 나서 당내 심사 결과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특히 서울에서도 상대적으로 낙후된 곳인 금천의 살림살이 주름살을 확실히 펴겠다는 자신감을 피력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문화재단 사장과 여의도연구소 정책자문위원 등을 지내며 국가와 기관 경영 감각을 익혔고, 18년 동안 월급봉투를 집에 들고 들어온 적이 없던 지역 공직자였던 선친처럼 일하면 지역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확신도 뇌리에 각인돼 있기 때문이다.  

그는 천주교 계열 재단인 서강대 영문과를 나온 인연으로 부천 소명여고 교사로 부임했다. 이후 서울 휘경여고로 전근, 영어교사 생활을 계속한 이력을 갖고 있다.

이후 기자로 변신해 광주일보 등에서 근무했고, 서강대 언론대학원을 마치고 경기대 공공행정 연구(박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식쌓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강 예비후보는 이처럼 지역이나 직업 연고에서는 친호남 혹은 친민주당 정서에 가까울 것이라는 세간의 관측과 달리, 줄곧 지역정서에 맞서는 정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 같은 험한 길을 스스로 자신있게 걷고 있는 배경에는 한화갑 전 의원의 보좌진으로 일했던 경험과 말단 행정기관장으로 일했던 선친의 영향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한때 민주당 대표와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지낸 한 전 의원은 2012년 대선 정국에서 박근혜 당시 후보를 지지해 눈길을 끈 바 있다. 지역정서에만 매몰되어서는 큰 정치를 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내린 결단으로, 그의 밑에서 정치를 배운 강 예비후보의 정치철학 저변에도 이런 대의의 씨앗이 일찍부터 뿌려져 있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강 예비후보의 장인인 고 윤기석 목사 역시 "유신헌법철폐 운동이 곧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일"이라고 확신했던 인물이지만 무턱대고 반대파를 미워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빈손으로 교회를 4개소나 일으킨 목회자이자 반독재 운동에 열을 올렸던 장인으로부터는 강단을 물려받았고, 신안군에서 면장을 역임한 선친(고 강동규 옹)에게서는 가난한 나라의 공직자로서 늘 청렴함과 근면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배웠다. 

변변한 재산을 일구지 못한 부친 덕분에 어머니의 고생으로 가계가 꾸려지던 집안 사정은 입주과외교사 아르바이트 등으로 고단한 대학 시절을 보내는 원인이 됐지만, 선친의 이런 공직관은 이후 그를 정치권에 발들이게 한 동력원이 된다. 

이런 태도 때문에 어느 정치인보다 치열한 결전을 치르면서도 대과없이 임무를 마무리짓거나, 유례없는 이변을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지방선거 경험을 놓고 보면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 선대위 수석부대변인으로 일했다. 상대편 박원순 후보(현 서울시장) 진영과 치열하게 대결하는 와중에 일각에서는 의혹과 막말 선거로 변질될 가능성도 점쳤으나 최악의 혼탁 상황으로 치닫는 것을 막는 데 일조했다.  

그 자신의 출마 성적표를 보면 2007년 전남 무안·신안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 간판으로 출마, 11.87%의 득표율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금배지를 다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1996년 한나라당 창당 이후 한나라당이 호남에서 10% 이상 득표한 것은 처음으로 당시 언론의 주목을 끌었다.이번에 야권측 거물에 맞서 금천구에서 새누리당 승리를 이끌어 낼 구원투수로 꼽히는 배경이 여기 있다.

부인 윤주아 여사와의 사이에 딸이 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