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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필리 필리 파랑새는 갔어도

정금철 자본시장부장 기자  2016.02.25 14:5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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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유년시절, 동네 어귀에서 작은 구멍가게를 하던 외할머니는 노는 방에 세를 놓으셨다. 사글세를 줬던 작은 방 한 칸에는 진수라는 이름을 가진 김씨 성(姓)의 동년배 가족이 살았었다. 몇 년 후 옆 마을로 이사를 가기 전까지 꽤 친했던 기억이 난다.

자세하진 않지만, 수많은 별을 이끈 노을이 내리기 전 둔덕진 밭에서 총각무 껍질을 도○코 면도칼로 벗겨먹던 무렵이었다. 땅에 묻힌 열매 선별에 애를 먹던 나는 진수의 큼지막한 총각무에 눈독을 들였고 집주인 손자라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내 것과 교환할 것을 요구했다.

당시 어린 마음에도 분명한 갑질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순진했던 진수는 친구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다는 듯 선량한 눈빛광선을 마구 쏴대며 큰 것을 가진 자의 도량(度量)으로 교환요청을 흔쾌히 수락했다. 원하는 것을 손에 넣었지만 마음이 불편했다.

이런 연유로 할머니 몰래 매대에 놓인 캐러멜 한 봉지를 뜯어 진수에게 한 움큼 쥐어주고 삼십 센티 쇠자를 이용해 밀봉했다가 할머니에게 걸렸던 아스라한 추억이다.

23일 저녁부터 이어지고 있는 야당의 필리버스터(filibuster·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는 올해 서두(序頭) 국회에서 벌어질 험난한 일정에 화염 못을 박는 일과도 같다. 지금 이 순간도 이어지는 필리버스터는 단순한 시간끌기가 아니라 그간 하고 싶었던 얘기를 털어놓는 자리가 되면서 더 큰 지지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일방적인 전개를 만드는 수 싸움과 재계의 추악함을 넘어선 갑질들, 국민의 하인 주제에 국회의사당은 물론 국민의 주인 행세를 하는 토악질 나오는 모습들은 절로 어린 시절 파랑새를 찾게 만든다.

넉넉한 산타할아버지가 좁은 굴뚝을 어떻게 드나들까 궁금해하던 그때, 우리는 찌루찌루의 파랑새와 안델센을 알았다. 반목과 질시로 분열되지 않은, 누구나 한 번 가보고 싶어서 생각만 하는 무지개 넘어 파란나라를 갈망했다.

테러방지법에 공안정국이 연상된다면 이는 국민의 안전은 물론 선량한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지켜주지 못한 정부의 책임이 큰 탓이다. 개성공단 업체 철수를 위시해 전시 위기상황에 준하는 국면을 만들고 이제 와서 국민 안전을 찾는 아스트랄한 모습은 참으로 괴이하기까지 하다.

사태 수습 대신 국민 분열 조장에만 초점을 맞춘 듯한 불안한 정국은 이미 산 넘어 남촌으로 떠난 우리의 마음을 우주 저편 안드로메다까지 날려보내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살얼음판 건너 안드로메다가 아니라 꿈꾸던 시절의 파란나라를 원한다.
 
찌루찌루와 미찌루(원래 틸틸과 미틸. 일본 번역판을 고스란히 옮기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이름이 됐지만…)가 쫓던 파랑새는 행복의 표상이다. 이 희곡을 보면 파랑새는 집 안 새장에 있다.

세상의 이치를 반 절가량 알아버린, 사십 대 초반 언저리에 머문 지금 나는 그 시절 진수와 마찬가지 처지다. 없는 살림인 줄도 모르고 마냥 순진무구했던 진수가 떠오른다.

하지만 진수는 새장 안에 있는 파랑새를 봤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 지금은 내가 진수다.

현재의 작태로 봐서는 내부의 적과 싸워야하는 국민의 고초는 우주의 기운을 모아도 해결하기 힘들 듯하다. 그러나 우리는 소망한다. 어쩌면 가까이 있을지도 모를 금지된 파랑새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