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현 기자 기자 2016.02.22 09:15:01
[프라임경제] 2016년 2월16일, 순우리말 '큰 바다' 뜻을 품은 2207t급 참치선망선 '한아라호'가 출항했습니다. 2년여의 시간 속 총 투자액만 1000억원. 수산업계 컨버젼스 바람을 일으킨 최신형 선박 '한아라호'는 선망선에 연승선 기능을 추가한 특수 급냉설비를 탑재하고 횟감용 참치 생산, 어획물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원양강국'으로의 재도약을 위해 바다에 뛰어 들었죠.
국내 원양산업은 한때 미국, 일본과 함께 세계 3대 원양강국에 오를 정도로 위용을 자랑했지만 여타 국가 정부의 적극적 투자에 따른 경쟁심화와 국내의 무관심 속에 점차 뒤쳐졌습니다. 여기에 원양선단의 노후화까지 더해 글로벌 경쟁력을 잃어가는 상태입니다.
이러한 현실에 고민하던 동원산업은 본격적인 조업활성화를 위해 두 손을 불끈 쥐고 지난 12월30일 테라카호에 이어 '한아라호'까지 최근 2년새 4척 선망선을 건조, 출항시켰습니다. 연내 200억원 수출 신장을 목표로 오늘도 선망선 18척, 연승선 16척, 트롤선 1척, 운반선 5척 등 40척 선단이 세계 곳곳 바다를 놀이터 삼아 수산자원을 어획하는 중입니다.
이 행보 속에는 동원그룹 '키'를 쥐고 과감한 항해를 지속하는 영원한 바다사나이 '캡틴 J.C.KIM'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이 있습니다. '수산-식품-종합포장재'라는 3대 축을 중심으로 연매출 4조원의 대기업으로 성장을 거듭하는 동원그룹.
"인생의 짐은 무거울수록 좋다. 그것에 의해 인생은 성장하니까".
김 회장의 다이어리 맨 앞장에 항상 적혀있는 이 글귀처럼 원양어선 선원시절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도전 속에 수차례 죽을 고비 넘기면서도 오늘도 도전적인 항해를 지속하는 81세 청년 김재철 회장의 바다사랑 속으로 빠져 봤습니다.
◆가난한 농가 장남 김채철, '원양의 꿈' 품다
전형적인 농업마을 전라도 강진군에서 나고 자란 가난한 농가 장남 김재철 회장은 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주변 반대를 무릅쓰고 국립수산대학(현, 부경대학교) 어로학과에 입학합니다. 수산학을 공부하며 낙후된 국내 수산업계 현실과 발전을 위해 할 일이 많음을 느낀 김 회장은 가까운 연안 바다는 어족자원 한계가 있음을 깨닫고 '원양의 꿈'을 품죠.
1958년 1월, 졸업을 한달 앞둔 23세 청년은 한국 최초 원양어선 '지남호'의 남태평양 사모아 출항 소식을 듣고 보수 없이 실습항해사 자격을 자청합니다. 정원 외 인원인 그에게 침대도 주어지지 않았죠. 군 야전용 침대에서 지내며 허드렛일을 도맡았던 김재철 회장은 그 기간, 지남호 승선 선원들의 전무한 원양어업 지식과 경험에 비탄을 금치 못합니다.
'어떤 어종이 비싼지',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알 도리도 없던 탓에 지남호는 결국 출항 후 47일을 헤맨 끝에 인도양에서 처음으로 새치를 낚아 올리는 정도의 수확을 거두죠.
지나치게 낙후됐고 어로기술과 어로장비마저도 절망적인 수준인 한국 수산업계를 경험한 김 회장은 일본에서 어류도감(魚類圖鑑)을 구입, 고기 종류와 특성부터 연구하고 항해 중에도 외국자료를 구해 선진어법을 집중적으로 공부합니다. 그리고 그 열정에 보답 받듯 배를 탄지 3년 만에 26세의 젊은 나이로 지남 2호 선장이 됩니다.
20대 어린 선장이지만 '한 마리 고기라도 더 잡는 것이 애국'이라는 신념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어장조건을 연구에 몰두한 결과 김 회장은 사모아 최고 선장으로 외국 수산업계에서 이름을 날립니다.
그렇게 번 돈은 1969년, 자본금 1000만원의 동원산업을 탄생시킵니다. 국내외에 쌓아둔 김 회장의 신용과 '캡틴 J.C.KIM' 실력을 자산으로 일본 도쇼쿠社로부터 지불보증 없이 500t급 연승어선 '제31동원호'와 '제33동원호'를 37만 달러에 현물차관으로 도입하기에 이르죠.
'제31동원호'는 500t급 모선에 20t급 작은 자선을 싣고 다니는 조업방식에도 불구하고 2년간 약 120만달러 수출실적을 올리며 동원산업 사업초기 살림꾼 역할을 합니다. 이렇게 벌어들인 돈은 어선을 추가하고 신어장도 속속 개척하는 총알이 됐죠. 한국어선 최초로 오징어채낚기 조업도 실시하고 훗날 북양진출 발판되는 소련영해에서 명태, 연어, 송어 등도 어획합니다.
1973년에는 아프리카 어장으로 출어하며 대서양까지 진출한데 이어 인도양 타마타브, 대서양 라스팔마스, 테마 등지에 해외기지와 지사를 설치, 원양어업 전진기업으로 자리를 잡습니다.
◆1차 석유파동과 비상경영, 대형 공모선 '동산호' 건조로 승부
그렇게 승승장구를 이어가던 1973년 10월, '제1차 석유파동'은 한국 원양업계를 강타합니다. 원가 중 유류비가 40% 이상을 차지했기에 채산성이 극도로 악화됐는데, 설상가상으로 세계 각국이 200해리 경제수역을 선포하자 도산하는 업체가 속출하기에 이르죠.
김 회장은 1969년 회사를 시작할 때 어선을 분할상환식으로 구입했기에 이를 상환하면서 이익도 내야 했습니다. 결국 비상경영을 선포하고 효율을 최우선으로 하는 경영방침을 수립합니다. 우선, 해외기지 중심으로 진행했던 참치 판매를 독항 어업을 통한 일본 판매로 전환하죠.
어획한 참치를 섭씨 영하 50도 이하로 급속 냉동해 신선도를 유지하는 독항어선을 출항시켜 어가가 높은 일본에 직접 판매하며 부가가치를 높였습니다. 양질의 참치를 잡기 위해 인도양 해역에서 대서양으로 새로운 어장도 개척합니다.
어가가 낮을 때는 냉동보관 했다가 어가가 높아지면 판매해 경제성을 높입니다. 어획량당 유류가 적게 소비되는 트롤어선을 도입해 저서어(底棲魚)를 대량 어획하는 트롤어업을 활성화했습니다. 분기마다 자금계획을 점검하면서 위기에 대비해 나갔죠.
이렇듯 위기상황이 지속되던 그때, 김 회장은 또 한번 승부수를 던집니다. 1975년 2월, 4500t급 트롤 공모선 '동산호'를 건조한 것인데요. 동산호는 선내에 공장시설을 갖춘, 당시로서는 세계적 수준의 대형어선이었을 뿐 아니라 건조비도 동원산업 전 재산보다 많은 1250만 달러에 달했습니다.
동산호 건조를 맡았던 미쓰비시상사는 연신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면서도 김 회장의 고집스런 설득 끝에 서명만으로 동산호 건조에 대한 6년 분할 상환계약을 체결하고, 2년 뒤 2월, 동산호를 탄생시킵니다.
예상은 적중했죠. 동산호는 1975년 5월에 북태평양 캄차카 해역에 첫 출어해 3개월 만에 만선 3000t을 기록, 이후에도 조기 만선을 거듭합니다. 이를 계기로 동원산업은 국내외 수산업계에 불황 속에서도 '도전적인 기업' 이미지를 구축하는 신화를 써내려 갑니다.
◆2차 석유파동과 선망어업 도전…'코스타 데 마필호' 도입
그러나 1979년, 이란의 원유수출 중단으로 석유파동이 또 일어납니다. 1차 석유파동 때와 마찬가지로 회사를 폐업하거나 적자운영에 시달리는 업체가 속출하는 상황에서 연안 국가들은 200해리 경제수역 규제를 강화, 한국 수산업계를 사면초가 속에 빠뜨립니다.
김 회장은 다시 몰아친 석유파동 경제난을 극복하고 재도약 발판으로 헬리콥터 탑재식 참치 선망어법 개발계획을 수립합니다. 선망어법은 미국에서도 1943년 이래 개발에 나섰지만 실패를 거듭하던 터였습니다. 배를 구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어업선진국들은 기술도 알려주지 않았죠. 선망선 1척 값이 300t급 참치 독항선 10여척 값에 해당됐기에 대기업도 주저했습니다.
김재철 회장은 1979년 1월 국내 최초로 헬리콥터 탑재식 선망어선인 코스타 데 마필호(807t)를 320만달러에 도입합니다. 이어 괌에 기지를 설치하고 파푸아뉴기니아 해역에서 참치선망 어업에 나서죠.
그리고 그의 도전은 파푸아뉴기니아 근해에서 1회 투망에 약 250t(당시 22만달러) 어획을 올리는 쾌거를 가져다줍니다. 이를 통해 선망사업 성공을 확신한 김 회장은 선망선을 급속도로 늘려갔고 동원산업은 참치 어획에 있어 세계적 회사로 성장해 나갑니다.
◆1982년, 국내 최초 참치캔 '동원참치' 출시
1982년, 김 회장은 원양어업에서 식품가공업으로의 확장을 위해 중대한 결정을 하게 됩니다. 이전까지 원어(原魚) 형태로 해외에 수출하던 참치를 통조림으로 가공해 국내시장에 선보인 것이었죠.
국내 수산캔은 '꽁치캔' 정도에 불과했지만 1차 산업인 원양어업에서 2차 가공산업으로의 진출을 꾀하던 김 회장은 선진국 형태로 변하는 식생활패턴을 감지, 1인당 GNP 2000달러 이상 국가에서 참치 대중화가 가능하다는 사실에 착안해 참치캔 개발 및 출시에 나섭니다.
광고와 시식회 등 마케팅과 1984년 추석명절, 국내 최초로 참치캔 선물세트를 판매한 결과 30만세트 이상 팔리며 선물세트 시장에 돌풍을 일으키는 기염을 토하게 됩니다.
참치캔으로 안정된 시장을 확보한 김재철 회장은 이번에는 수산물 제조판매부문을 확대합니다. 가공식품 다양화를 위해 제조공장을 준공하고 꽁치 통조림, 조미김, 어육연제품 등을 생산하며 원양어업에서 식품가공업으로의 확장을 이뤄가죠.
1999년부터 2006년까지 무역협회장 임기를 마친 뒤 2006년, 동원그룹으로 돌아온 김 회장은 2008년 세계 최대 참치 브랜드 '스타키스트'를 인수하기에 이릅니다. 1963년 스타키스트 사모아 섬 참치캔 공장에 참치 원어를 납품하던 젊은 선장이 50여년 후 최대 고객사를 인수하는 기적을 일으킨 것이죠.
원양업계 대부가 된 '캡틴 J.C.KIM'은 평생을 사랑한 바다에 대한 고마움에 답하듯 이제 저물어가는 국내 원양업계에 다시 한번 도전장을 내놨습니다. 과감한 투자로 수산업계 컨버젼스로 여겨지는 최신형 선박 개발에 나섬으로써 '원양강국' 재도약에 앞장서면서 말이죠.
허드렛일을 하던 실습항해사가 남태평양을 누비는 20대 선장을 거쳐 국내 거대 참치 회사 수장이 되어 국내 원양업 발전에 앞장서는 강력한 '버팀목'이 되기까지, 81세 청년 캡틴 J.C.KIM은 오늘도 사랑하는 망망대해 바다 한가운데 키를 잡고 순항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