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자연분만은 복불복이며 모유 수유 역시 복불복이다. 경험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할 수는 있지만 비난(심지어 제삼자에게서)받을 이유는 결코 없다. 노력으로 선택하는 게 아니라 운 또는 체질의 문제니 말이다.
큰 아이 때 예정일을 일주일 넘겨 유도 분만을 시도했다. 13시간쯤 진통을 했지만 아기는 산도로 내려오지도 않고 태동마저 약해졌고 결국 제왕절개를 결정했다. 일명 '산모 굴욕 3종 세트(관장·제모·내진)'를 다 치르고 하루의 절반 이상을 누군가 배를 있는 힘껏 쥐어짜고 또 짜는 게 분명한 진통에 시달리던 필자는 수술실로 옮겨질 때 내심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마취에 들어가기 직전 뒤늦게 도착한 친정엄마의 난입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에 찬물을 끼얹었다. 더구나 "나도 (자연분만) 했는데 멀쩡한 우리 딸이 못 할 리가 없다"는 논리로 완강하게 버티던 친정엄마는 지금도 가끔 섭섭할 정도다. 주치의가 직접 나서 상황을 설명하는 동안 필자는 수술대 위에 새우처럼 웅크린 채 징징 울면서 고함을 치고 말았다.
“날 왜 이렇게 괴롭히는 건데! 수술한다니까!”
아들에게는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그때는 '아가야 엄마도 좀 살자' 싶었다. 물론 자연분만에 성공한 동료들이 이튿날 자리 털고 일어난 것에 비해 필자는 숨만 쉬어도 당기는 배를 싸안고 가스가 나오기까지 60여시간 동안 물 한 모금 못 마시는 뒷감당에 시달려야 했다.
출산과 육아를 직접 경험한 엄마들은 모유 수유와 관련한 무용담도 사람마다 화려하다. 그만큼 초보 엄마에게는 반드시 넘어야 할, 못하면 죄인이 되는 일종의 주요 관문이다.
보통 신생아 때는 거의 1~2시간마다 젖을 물리거나 유축을 한다. 필자의 경우에는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유축기 깔때기를 조립하며 '이게 바로 젖소의 일상이지'하며 헛웃음이 나올 때쯤 당황스럽게도 젖이 말라붙기 시작했다. 큰 아이 백일 얼마 전이었다.
남들은 제때 짜지 않으면 단단하게 부어올라 줄줄 젖이 새어 나오는데…. 필자의 경우 전문가에게 가슴 마사지를 받고 아이 입에 수시로 젖을 물리며 기다렸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배고파 죽겠는데 간에 기별도 안 가는 꼬맹이는 더 심술을 부렸고 '백일의 기적'을 바라던 필자는 '백일의 기절'을 맞아 더 피폐해졌다.
어쩔 수 없이 백기를 흔들고 4개월 이후부터 혼합수유에 돌입했다. 이유식을 시작한 6개월부터는 아예 분유만 먹이니 확실히 몸은 편했다. 둘째 때는 포기가 더 빨라 겨우 백일을 채웠는데 남매가 나중에라도 의지박약 엄마를 놀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자연분만과 완모(완전 모유 수유)라는 시험대에서 낙제한 엄마들은 자연스럽게 자책감에 빠진다. 모유도 못 주는데 분유는 정말 좋은 것으로 먹이겠다는 일념으로 한 통에 4만원이 훌쩍 넘는 수입 분유 또는 산양분유에 눈이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업체들은 그 틈새를 전형적인 공포 마케팅으로 자극하고 그만큼 쉽게 먹힌다. 프리미엄 분유를 표방한 제품 상당수가 '엄마니까'를 상품명과 광고 콘셉트로 정해 대규모 판촉에 나서는 것은 이 때문이다.
결론부터 밝히자면 필자는 그마저도 못 줬다. 남매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싼 모 회사의 조제분유를 먹었다. 지금 둘째가 먹고 있는 3단계 제품(750g) 1캔이 오픈마켓 최저가 1만2800원 정도로 같은 회사 다른 제품(800g)과 적게는 6000원, 많게는 1만6000원까지 차이가 난다.
처음 아이 분유를 사러 갔을 때 막연히 병원과 조리원에서 먹이던 것을 그대로 주면 된다며 별로 고민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막상 마트에 가 보니 가격 차이가 왜 이렇게 큰지 당황스러웠다. 이럴 때 믿을 건 직접 비교해보는 것이다.
그날 남편과 진열대 앞에 붙어 1시간 넘게 깨알 같은 성분표를 노려보며 얻은 결론은 '별 차이 없음'이었다. 그래도 못 미더워 분유 회사와 다니는 소아과 선생님에게도 전화를 돌렸지만 그들의 대답도 "영양소와 성분은 거의 비슷하다"였다.
며칠 뒤 남편이 업체 관계자로부터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며 브리핑(?)을 했는데 크게는 조제분유와 조제식분유의 차이이고 이는 유당 함량과 마케팅 여부에 따라 구분된다고 했다.
조제분유는 유성분과 유당 함량이 60% 이상인 모유 대용품, 조제식분유는 이보다 적은 이유식 대용품이다. 이렇게 써놓으니 무조건 조제분유가 더 좋고 더 비쌀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국내에 유통되는 분유는 제조사와 제품군에 상관없이 1, 2단계는 조제분유다. 생후 6개월 이후 먹이는 3단계(일부는 4단계)부터 성장기용 조제분유와 조제식분유로 구분되는데 이마저 상당수는 조제식분유다.
우리나라는 정부 차원에서 모유 수유를 권장하는 탓에 모유 대용품인 조제분유의 광고, 판촉활동이 모두 금지돼 있다. 실제로 TV나 지면에 실리는 분유 광고를 유심히 살펴보면 모두 3단계 이후 제품이다. 조제분유인 1, 2단계는 광고를 할 수 없고 그만큼 마케팅 비용이 들지 않으니 가격이 싼 것이다.
이런 이유와 함께 제품마다 가격이 천차만별인 것은 기술 개발비용이 제각각이고 일부 제품은 청정지역에서 방목한 소의 원유를 썼다거나 뇌 성장, 골격 형성에 좋은 일부 영양소를 강화했다는 식으로 프리미엄을 내세우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제품별 차이는 크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싼 분유로 갈아타라고 강권하는 것은 아니다. 호소남매가 아무거나(심지어 음식이 아닐지라도) 주워 먹어도 멀쩡한 건강 체질인 덕분에 가능했던 것이고 아기마다 입맛과 체질이 다르니 절대 일반화해서는 안 될 일이다. 지인의 아이는 위장장애가 너무 심해 모유는 물론 고가의 수입 분유가 아니면 아예 소화를 못 시켜 엄마 속을 까맣게 태웠었다.
가격이 싸든, 비싸든 아이가 조금의 탈도 없이 잘 먹고 잘 쓰면 최고다. 그러나 이런 단순한 사실을 업체가 나서서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엄마들이 '아는 언니' 네트워크에 의존해 육아용품을 고르고 업체들이 바이럴 마케팅을 통해 대규모의 판촉 활동을 진행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