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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결혼 주례선 남자…“여편네 말 들어라”

[인터뷰] 가장 ‘쌈지스러운' 천호균 쌈지 대표

김보리 시민기자 기자  2006.01.04 17: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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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저는 쌈지라는 시를 쓰는 시인입니다” 시인? 오너를 만나러 갔는데 만난 이는 시인이었다.  짙은 카키색 바지에 빨간 니트, 젊은이 못지않은 패션감각 보다 상대를 끄는 건 그의 눈빛이었다.  시인이라 해도 고개를 끄덕일만한 눈빛이었다.

   
한국 패션 계에서 예술경영, 튀는 아이템으로 토종브랜드를 이끌고 있는 이를 꼽는다면 십중팔구 쌈지 천호균 대표가 꼽힐 것이다.  그는 ‘쌈지’ ‘쌤’ ‘놈’ 등의 굵직한 토종 브랜드를 이끌고 ‘쌈지길’, ‘딸기가 좋아’와 같은 아트비즈의 중심에 서 있다.

해질 녘에 그를 만나 쌈지와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쌈지가 특별한 이유는 그의 생각 ‘쌈지’에 있었다.

◆ ‘보다 더 살아있게’ 쌈지의 슬로건

 - 쌈지의 힘은 뭔가요.

“순이네 빈대떡 가봤어요?   광장시장 내에서 세 딸이 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초라하다 지저분하다 할지 몰라도 거긴 생동감과 살아있음이 보여요.  바로 쌈지가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이 ‘시장의 맛’, 이거죠.  ‘보다 더 살아있게 되자’가 쌈지의 슬로건인 셈이죠.  새로운 것에 대한 사랑, 사람에 대한 애착, 살아있는 것에 대한 존중이 쌈지의 방향입니다.”

“NO SHOP, YES MARKET!   획일적인 숍 대신 시장이 살아야 한단 말.  우린 우리 것을 너무 경시해요.  시장이 점점 없어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죠.  하지만 가장 잘 사는 나라는 가장 옛것을 잘 지키는 나라입니다.  ‘시장’자리에 대형 쇼핑몰이 올라가는 것이 안타까워요.  시장은 가장 완성되고 진행형의 ‘사랑’, ‘온정’이 있는 패션의 완성인데 말이죠.”

   
-‘쌈지’부터 ‘쌈지길’에 있는 가게 이름에는 ‘숨, 딸기, 손, 팔짜’ 까지 한글이름이 많아요.  우리 것에 대한 애정 표현인가요?

“당시 한글이름 브랜드가 많았다면 안 했을 겁니다.  일종의 차별화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우리말만큼 예쁜 게 없어요.  중국 미국 시장에 진출할 때도 한글 이름 그대로 갈 생각입니다.  한글이 외국에 나가면 얼마나 아름답다고 찬사를 받는지 몰라요.  첫 손자 이름도 한글 자음 중 ‘니은’이라고 지었어요.  둘째는 ‘그래’라고 할 생각입니다.”

◆ 예술경영? 깊은 생각이 깊은 거짓말

 -이윤추구가 목적인 기업에서 사랑이라뇨.  아이러니한데요.  ‘쌈지길’ 헤이리 ‘쌈지스페이스’ ‘딸기가 좋아’ 이런 문화활동 등은 장기적 차원에선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당장 이윤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데요.

“깊은 생각이 깊은 거짓말.   많은 사람들이 그런 말을 많이들 해요.  하지만 이윤추구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윤 대신 아트경영, 문화경영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쌈지의 경영철학인거죠.  쌈지가 사람들의 인식보다 결국 한 수 더 고단수인 셈이죠.”
그가 말하는 하얀 거짓말은, 고객은 ‘쌈지길’에서 즐겁고 경영인은 스스로에게 아트비즈란 최면을 거는 ‘모두가 행복해 지는 거짓말’ 인 셈이었다.

그의 사무실은 사방이 신진 예술가들의 작품이 흩어져 있다.  ‘이불’작가의 자기 신체 사이즈와 같은 상반신 조각상부터 심지어 ‘쌈지길’의 상징, 두 개의 ‘ㅅ'이 기댄 모습까지 사람과 관련이 있다.

   
  천호균 대표실에 있는 신진 작가 작품들. 모두 '사람'과 관련이 있다.
“쌈지에서 가장 ‘보존’하려는 것은 사람이에요.  이제 쌈지의 초창기 판매원들이 40~50대가 됐습니다.  일부에선 판매상은 가게의 얼굴인데 젊어야 한다고들 해요.  저는 물리적으로 ‘젊다, 늙었다’로 나누는 것은 어리석다 생각해요. 이들이 쌈지의 소중한 자산이거든요”

◆ 패션은 ‘찡’한 느낌으로 옷을 만드는 것

-패션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패션은 사랑이죠 .  얼마 전에 의상학과 학생들 앞에서 강의를 하는데 한 학생이 자기가 정말 엄마 속 많이 상하게 했는데 졸업 작품으로 엄마를 위한 옷을 만들면서 그렇게 눈물이 나더래요.  바늘 한 땀도 정성이 들어가고......  고객이 옷에서 사랑을 느끼는 것, "찡"한 느낌으로 옷을 만드는 것이 저희의 궁극적 목표입니다.”

-헤이리의 ‘예술마을’은 외국인까지 들어오고 싶은 창작 메카가 됐는데 특별히 신인 예술가들에게 애정이 남다르신 것 같은데….

“쌈지의 보물은 우리에게 자극을 준 예술가의 영감입니다.  예술가들에겐 영감을 존중하고 쌈지에겐 아이디어 창고가 되는 윈윈 전략인거죠.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운동(?)’의 일종이기도 하지요.”

-쌈지 이름 뒤엔 ‘자유로움’이 따라다니는데 요즘 명품과 ‘짝퉁’ 문화에 대해 하실 말씀이 있을 것 같아요.

   
“과도기죠.  우린 외국 상품에 문을 연지가 20년이 채 못돼서 지금이 극성기에요.  이 과도기를 거치고 나면 소비의 ‘성숙기’가 올 거라 봅니다.  소비도 예술과 같아서 명작을 많이 보고 난 후에야 작품을 고르는 눈이 길어지는 것처럼 우리 소비자도 독창적 상품을 자꾸 써보면 진짜 좋은 상품을 보는 눈이 생길 걸로 희망적으로 봅니다.”
   
“단 중요한 건 과도기를 단축하는 건 리더들의 역할이죠.  역량 있는 분들이 신인들의 창의적인 작품을 많이 써주면 좋은데 가끔 안타깝죠”라고 말하는 그에게 씁쓸한 미소가 번진다.

“명품 코드를 대면서 ‘이 모델 언제꺼야’가 화두가 되면 신인 디자이너들의 설 곳은 더 좁아집니다.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상을 주는 자리였는데 그 분들이 큰 상표가 붙은 가방들을 들고 나오는 거 보면서 씁쓸했죠.  역량 있는 분들이 그럴 때 신인 작가들 작품을 하고 나오면 작가도 살고 홍보도 되고 좋은텐데……”

“편견, 자기 것을 깨기가 그만큼 어려운 모양입니다.  아내가 골프장 회원 가입에 거절당한 일이 있어요.  거긴 뭐 시험 비슷한 게 있더라구요,  이유가 더 재밌어요.  ‘당신 신랑 옷 입는게 마음에 안 든다’가 거절 이유에요 .”

이럴 때 ‘아, 내가 살아있구나’하고 느끼죠.  그 후 한동안 직원들한테 물었어요.  “내가 너한테 뭐 편견 갖는거 없니?”라고...

◆ 예술가에게는 축의금을 받지 않습니다

-아드님 주례를 직접 보신 특이한(?) 아버지세요.  무슨 말씀하셨습니까.

“‘니 여편네 말 듣고 살아라’가 핵심이죠.  너무 여성들 입장에서 말 했다고 핀잔 좀 먹었어요.  아버지가 그 고된 일 마치고 돌아보면 청소에 설거지에 빗질을 하시는 걸 보면서 ‘어머니를 위해 태어난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의 대명사 “쌈지”란 이름도 아내가 갑자기 밥 먹다 ‘아, 쌈지다’그렇게 나오게 된 거란다.

그리고 결혼식에서 내건 것은 “예술가들에게 선물이나 축의금을 받지 않습니다” 였는데 사람들이 더 어렵다고 고민 많이 했다 그러더라구요”
  
“아들 결혼은 딸이 하나, 아니 며느리의 동생까지 두 딸이 생긴거죠.  아들 며느리(?)가 저에게 카드를 쓸 때 꼭 아들 재용, 딸 은정 이렇게 써요.  예쁜 딸까지 생겼는데 기분 좋죠.”

“내가 편견 가진 건 없니?”라고 한동안 직원에게 질문을 했다는 그에게 늙음도 젊음도 중요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