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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비식별화 개인정보, 벌건 대낮에 털릴까?

이보배 기자 기자  2016.01.28 10: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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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정보통신기술(ICT) 사업자들에겐 희소식, 국민들에겐 흉보(凶報)가 날아들었다. '비식별화·익명화한 개인정보'를 본인 동의 없이 마케팅 등에 활용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27일 '2016년 업무계획' 브리핑을 통해 비식별화와 익명화 조치 근거를 만들어 개인정보를 활용한 산업을 활성화시키겠다며 이 같은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기업들은 빅데이터와 사물인터넷 클라우드 등 정보통신기술서비스 부문에서 신상이 구별되지 않는 개인정보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게 됐다. 다량의 개인정보를 빅데이터로 만들어 개인별 맞춤형 온라인 광고 등 마케팅 활용이 가능해진 것이다. 

다만, 비식별화·익명화된 정보들이 다시 식별화돼 이용되지 않도록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이용자가 자신의 정보가 이용되는 것을 원치 않을 경우 사용을 중지할 수 있도록 사후 거부 방식이 도입될 예정이다. 

방통위는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클라우드 등 IT 기술 발달과 맞춤형 마케팅 증가로 개인정보를 활용하는 신규 서비스가 더욱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에 근거해 이 같은 계획을 세웠다. 국내 빅데이터시장을 더욱 살리고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를 줄이기 위해 개인정보와 위치정보 활용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난해 국내 빅데이터시장은 2623억원 규모로 전년대비 30% 이상 성장했으나, 국내 빅데이터 관련 기술수준은 선진국을 '100'이라고 봤을 때 '62.6'에 그치는 수준이라는 게 방통위 측의 설명이다. 이는 시간으로 따지면 약 3.3년 뒤처진 상태다.

또, 지난해 매출액 100억원 이상인 기업의 빅데이터 도입률은 9.6%에 그쳤다. 미래창조과학부 조사 결과, 국내기업들은 아직까지 빅데이터를 도입하지 않는 이유로 '빅데이터라고 할 만한 데이터의 부재' '도입효과 검증 불가'를 꼽았다.

이에 맞서 방통위는 올 한해 개인정보 활용도를 높이는 데 방점을 찍었다. 그러나 여기 앞서 가장 중요한 선행조건은 두말할 나위 없이 개인정보 보호·활용에 대한 이용자의 신뢰 구축이다.

정부는 개인정보 처리 가이드라인의 명확히 제시, 안전한 개인정보 활용 지원 및 산업현장에서 적용 가능한 사례 중심의 '비식별화 조치 안내서' 개발 등의 대응책 마련을 약속하고 있지만 우려의 목소리는 여전하다.

가장 큰 부분은 개인정보 활용이 개인의 자기정보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이다. 정부의 야심찬 빅데이터 활용 정책이 개인정보보호 조치를 완화시킬 수 있다는 걱정이다. 우리는 몇 년간 각 개인의 정보를 여기저기에서 누구도 모르게 강탈당해왔고 아직까지 피해의 흔적이 남았다.

여기 더해 정부와 누리꾼들에 의해 이뤄진 '사이버수사대' '신상털기' 등 우리나라처럼 이미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가 남용되고 악용된 환경에서 비식별화·익명화는 빅데이터시장 활성화,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 축소라는 당초 목표와 달리 거듭됐던 문제만 더 살아나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이런 와중에 관련 사업추진 일정은 '하반기' '연중'이라고만 명시돼 구체적인 개인정보 활용 시기와 방법은 아직 알 수 없다.

사업이 추진되기 전 국민에게 관련 사업계획을 정확히 알리고, 개인정보 활용에 대한 최소한의 동의를 구하는 게 응당하다. 물론 기우(杞憂)지만 적어도 알고 털려야 상처를 덜 받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