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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리 스나입스 사건 타산지석…CJ, 특가법 조항 헌법소원 가능?

미국은 세금관리 철저 명성, 우리 법은 가혹한 시범케이스 난타…상습절도 등 이미 위헌 선례

임혜현 기자 기자  2016.01.25 10:4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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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블레이드' 등에 출연했던 미국 흑인 배우 웨슬리 스나입스가 감옥에서 징역 3년 기한을 꼬박 채우고 나온 사실을 기억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는 세무 당국의 추적망에 걸려들면서 2000년대 초반부터 지루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2008년 기소됐다.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3년형이 확정된 것은 2011년, 이때까지도 법률 자문을 받으며 대외적으로 자유를 누렸다.

1999년부터 2004년까지 소득 신고를 누락했다는 지적과 거론된 액수는 3억8000만달러(우리 돈 4000억원), 하지만 이는 소득 규모 문제이고 실제 탈세액은 2000만달러(240억원선)인 것으로 결론났다.

미국은 세금에 대해 강경한 대응을 하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미국 조세 시스템이 가진 신화는 '탈세는 반드시 잡아낸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관리 능력에 방점이 찍혀 있지, 시범케이스를 가혹하게 다루는 데 본령이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독일 세금탈루 관리 비결은 '중벌' 아닌 '촘촘한 그물망'

'저승사자'로까지 불리는 국세청(IRS: Internal Revenue Service)은 살인적 업무 압박에도 많은 사건을 꼼꼼하고 집요하게 파헤치는 것으로 유명하고, 기소와 재판 단계에서의 법률 적용과 집행도 촘촘한 편이다. 잠시 언급한 웨슬리 스나입스 사건은 그런 신화의 대표적 케이스라기 보다는, 지나친 조사 진행과 형량이라는 비판을 받은 경우다. 

한화 240억원선의 탈세에 3년 징역이 선고, 대법원에서 확정되자 노블레스 오블리제에 따른 정당한 판결이었다는 논의보다, 지나친 형량이라거나 인종 차별적 판결이었다는 비판이 일었을 정도다.

심지어 미국 법제를 보면, 적발이 어려운 역외 조세포탈에 대해서도 5년 이하 징역을 기준으로, 벌금을 강경하게 집행하고 있다. 국가 운영에 필요해 세금을 확실히 걷어야 하기 때문에 탈세 생각을 아예 못 하게 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한편 돈 문제이기 때문에 돈으로 해결을 하는 게 원칙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독일도 형량이 유사하다.

◆재벌 역차별 시스템 논란, 특가법 조항들 줄줄이 위헌 참조할 만

CJ그룹 비자금 및 조세피난처 악용 사건을 놓고 재계가 부글거리고 있다. 우선 현재 '전면 무죄' 취지로 재상고가 제기된 배임죄 부분이 그렇다. 기업을 운영하는 와중에 오너 일가가 리더십을 갖고 경영판단을 해야 하는 경우마저도 배임으로 처벌하는 전례가 많았고, 이재현 CJ그룹 회장 사건만 해도 피해 발생 가능성이 '제로'임에도 죄가 된다는 취지로 수사가 진행됐으니 이번에 틀을 깨 줘야 한다는 요청이 많다.

이에 더해 "해도 너무 한다"는 재계의 불만이 나오는 요소는 또 있다. 바로 조세포탈에 대한 강력하다 못해 '살인적 압박'을 가하는 한국의 엄중처벌 시스템 때문이다. 물론 법이 지나치게 무르게 짜여 있거나 세금을 포탈하는 것에 무조건 기업의 경제적 기여 운운하며 온정을 베풀자는 주장이 통하는 사회는 건강하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여러 기업이 계열사간에 기대고 도움을 주고 받는 선단식 경영을 하는 한국적 구조에서, 특히 기업 오너 일가가 경영판단의 주도권을 쥐고 끌고 가야 하는 틀이 우리 재벌 시스템상 많다 보니 세금을 내지 않는 경우 '표면적으로 보이는 탈루 예상 액수'가 일단 크다는 문제가 생기는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조세범처벌법은 세금포탈범에 대해 2년 이하 징역을 기본으로, 그 액수가 늘면 3년 이하 징역을 예정한다. 그리고 이미 상습범에 대한 형의 1/2까지 가중이 가능하다는 규정이 따로 있어, 이런 일탈 행위에 대해서도 이미 그물이 마련돼 있었다.

그런데 특정범죄가중처벌법에는 그 액수에 따라 무기징역 혹은 5년 이상 징역, 3년 이상 유기징역 등으로 급격히 강화된 규정이 마련돼 있다.

문제는 특가법의 태생적 한계다. 특가법은 군사 정권 시절 편의주의 형벌 시스템을 뒷받침하기 위해 고안됐다는 지적을 오래도록 받아왔다. 각 개별법에서 정해놓은 형벌의 폭을 다시 지나치게 강화했다는 의문을 산 경우가 적지 않았고, 이런 문제적 규정들에 대한 위헌 결정이 이미 헌법재판소에서 여럿 나온 바 있다. 우선 '장발장법'으로까지 불리던 상습절도 등에 대한 특가법상 규정은 위헌이라는 판단이 내려졌다. 장물취득에 관련된 특가법 규정 역시 헌법재판소가 위헌을 선언한 사례다.

이미 형법 등 각 분야의 기본이 되는 법에서 상습성에 대해 비판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 규정을 따로 만들어 둔 경우가 있다면, 논리적 필요성 없이 형량만 무조건 상한선이 없다시피 강화하는 것은 문제라는 게 헌법재판소의 일관된 판단이다.

물론 재벌이 사회적으로 보범을 보여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기업을 경영하는 과정에서 움직이는 사업 규모가 크다면 세금 관련 위반이 발생할 경우 문제 금액 자체가 클 수도 있고 탈세의 경우, 비난 가능성이 다른 범죄 대비 작은 기술적 영역에 가깝다는 점은 다른 나라들도 탈세범 처벌 규정 마련시 고려하고 있는 경우다.

◆신체 건장한 미국 탈세 배우와 한국 불치병 탈세범 동일 형량, 과연 상식적인가

우리만 특가법 대상으로 규정을 강화하고, 더욱이 역외 탈세 시도는 죄질이 나쁘다고 강조를 하는 것은 결국 해외사업을 활발히 해야 하는 대기업집단, 즉 재벌에 지나친 비난을 섞어 법을 짠 것으로 볼 여지가 많다.

심지어 지나치게 높은 특가법상 탈세범 형량 틀로 인해 사법부가 온정을 베풀어야 할 사정까지도 전부 외면할 수밖에 없는 지경으로 흐른다면, 국가가 세금을 받아내는 일에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심지어 이는 경제 활동의 기본 세포인 기업 숨통을 막는다는 지적으로까지 연결된다.

참고로 웨슬리 스나입스가 탈루한 것으로 알려진 탈세액 규모는 CJ 해외포탈 사건의 특가법 적용 사건과 규모가 거의 같다. 이런 상황에서, 탈세에 대해 철저하게 다루기로 유명한 미국 세무 당국과 법원이 신체 건장한 중년 액션 배우에게 선고한 최종 형량과, 우리 법률이 불치병으로 사실상 시한부 신세인 CJ그룹 수장에게 선고한 형량(파기환송심 기준)이 거의 같은 점은 법률의 맹점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가혹함의 도가 지나쳐 위헌 논란이 가능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