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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도교육청 윤경자 교사, 정년 앞두고 산문집 출간

장철호 기자 기자  2016.01.18 1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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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교직생활 내내 제자들과의 뜨거운 사랑, 그리고 올곧은 40년 교직생활을 180여페이지의 산문집으로 담아낸 한 교사 이야기가 화제다.
 
전남 담양고에 재직중인 윤경자 교사는 최근 '온통 사랑이었던 날들 사십년'(도서출판 해동, 사진)이란 제하의 산문집을 발간했다. 

총 15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산문집을 가득 채우고 있는 주제는 '제자들과의 풋풋한 사랑'이다. 그래서 여느 거창한 직위에 있다 퇴직하며 무슨 무슨 정책을 추진했느니, 뭐뭐한 자리에 있으며 어떠 어떠한 일을 했느니 따위의 글은 단 한 줄도 없다.
 
다만 1976년 초보교사로 출발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는 제자들과의 끈끈한 인연만이 오롯하게 담겨있다. 우선 각 장의 제목만 봐도 당시 시대상은 물론 중학교와 고등학교, 일반고와 특성화고, 남녀 공학과 여학교, 고흥과 곡성·담양·무안·완도·나주의 지역적 특성에 따른 학생들의 가정생활, 학생들의 생활환경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1977년부터 1979년, 고흥 두원중학교 근무시절 고흥 녹동에 간첩이 출몰해 '학교에 총 든 군인들'이 나타났고 당시 라디오와 수석수집을 좋아해 하교 후 해수욕장 인근에서 배회하다 학생들이 간첩으로 오인해 신고되면서 지서에 붙잡힌 교감선생의 사연은 엄혹했던 유신시절을 떠올리게 해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또 '장학사 눈감아준 교통경찰 제자' 장에서는 중학교 2학년 때 학급 실장을 맡아 사범대학 진학을 꿈꿨으나 운동선수 생활을 하다 대학진학에 실패해 교통경찰이 된 제자의 사연이 소개되는데 우직한 제자의 윤경자 교사를 향한 사랑이 눈물샘을 자극한다. 

담양 한재중 재직시절 (1987~1991년), 학급 아이들의 성적을 올려보겠다고 학교에 남겨 야간자율학습을 시켰는데 배가 고파 그만 점심시간에 막걸리를 마셔야 했던 상권이의 가슴 아픈 사연도 울컥 가슴을 저미게 한다.
 
이렇듯 윤 교사의 산문집에는 남자 담임교사인 줄 알고 '담배 두갑'을 전달해 준 나이 든 어머니(P85), 학생부장 시절 인근 고등학교 남학생들의 겁박에 하교를 두려워했던 여중생을 위해 '형사와 함께 동네 오빠를 잡으로 출동'(P99)했던 사연, 무안북중 시절 공개수업을 하는 과정에서 열렬하게 선생님을 응원했던 제자들(P113)이 책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특히 중요한 건 윤 교사와 인연을 맺었던 제자들의 관계가 평생동지이자 사제 사이로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윤 교사의 산문집에는 유독 자취시절 학생들과 관사에서 밥먹고, 커피 마시고, 손금을 봐주기도 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여기에서 현재 사제간과는 판이하게 다른 장면이 연출된다.
 
한 제자는 '자취방 쥐 때문에 잠도 못자고, 중1 여학생과 밤새워 나눌 수 있었던 이야기가 무엇이었을까'(P21)를 묻고 "그건 사랑이 아니었을까" 하고 자답한다. 당시만 해도 귀했던 '맥스웰 커피'를 선생님 사택에서, 컵이 없어 스테인레스 밥그릇에 나눠 마신 '설탕 일색의 그 커피 맛'은 결국 '말하기와 듣기, 부대낌과 스밈의 과정을 거쳐 삼투압의 화학작용'을 마친 사도에의 길, 엄마같은 사랑이 넘실대는 장독대 깊숙이 숨겨진 '뚝배기 장 맛'이 아니었을까.
 
윤 교사는 담양공고에 재직(2007년 3월~2011년 2월)하며 아침에는 보이지 않던 녀석들이 점심시간 급식실에 나타난 이유가 학교에 와야 점심이라도 챙겨 먹는다는 사실, 나주상고(2011년 3월~2013년 2월)재직 시절 과수원에 동떨어진 집에 할머니, 할아버지와 살면서 새벽이면 2시간 넘게 걸어 버스 정류장에 나와 차를 타고 등교하는 학생들을 지켜보며 지난 40년 동안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켰다고 말할 수 있었느냐'(P156)고 반문한다.

특히 윤 교사는 "교사 시절 내내 내가 옳다고 생각한 것만이 옳은 것이 결코 아닌데, 그 한 생각을 바꾸기가 그렇게 어려웠다"면서 "백목련 고운 잎 망울져 기다리는 시간, 희망을 쓰고 있는 하나, 슬하, 주리, 순애, 고운, 다슬이의 이름을 지금도 하나하나 읊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윤 교사는 늘 학생들과 함께 하다 전남도교육청에 파견돼 살았던 퇴직을 앞둔 5년간의 세월(2011년 4월~2016년 2월)을 '인생의 외도기'로 규정했다. 자신의 든든한 응원군이었던 학생들이 없는 삶, 정년 5년을 남기고 전문직 경험이 전문한 그녀가 도교육청 관료들과 생활하며 부대낀 세월이 어찌 힘들지 않았을 것인가.
 
하지만 윤 교사는 그럼에도 '고마운 그대들, 전남 교사여서 행복했다'(P166)고 고백하며 '가장 멀리 가는 향기로 살고 싶었다'(P178)고 자신의 40년 교직생활을 명쾌하게 정리하고 있다. 

윤 교사는 "위대한 역사를 쓰지는 못했지만, 하늘 아래 다 함없는 온통 사랑이었던 날들, 사십년이었다. 그대로 행복이었다"는 유언같은 말을 남기며 글을 마무리 했다.
 
저자는 "후배 교사들이 공직생활을 마무리하며 책을 내고 싶지만 용기가 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부담갖지 말고 생애 마지막에 책 한권 정도는 내야 한다고 권하고 싶다"면서 "다만 이사를 자주하다 보니 당시 제자들이 보내준 편지나 사진, 관련 자료가 사라져 기억에 의존해 책을 낸 것이 못내 안타깝다"고 말했다.

전남여중, 전남여고, 전남대 문리대 국어국문과를 졸업한 윤 교사는 '내 가슴에 꽃물'. '한편의 시가 되리라'등의 시집을 발표하며 시인으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