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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임은 판례변경 중+전두환 아들 탈세엔 온정=CJ만 역차별?

[양형논란 전쟁③] '추징기술'과 '엄벌필요성' 사이 균형잃은 탈세처벌논리 우려

임혜현 기자 기자  2016.01.15 19:3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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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우윤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300억원 이상 사건의 배임 등 판결은 양형기준 준수 비율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사건 금액이 클수록 오히려 경종을 울려야 하는데 법원이 온정주의로 기운다는 것. 표면적으로는 옳은 지적이지만 이에 대해서는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

양형, 즉 형을 정하는 재판장의 작업은 사법부 업무의 꽃이다. 국회에서 만들어준 법에는 법정형이 정해졌지만, 법관은 이를 위시해 형법 제51조에서 정한 양형의 조건이 되는 사항을 두루 참작하고, 적정한 범위 내에서 이뤄지도록 조정, 최종적으로 선고형을 만들 '재량 판단 권한'을 갖는다.

다만, 이 재량이 과도하면 불필요하게 항소나 상고를 해 새로 판결을 받아야 하는 '심급 낭비 논란'이 불가피하므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추상적 위험범 해석 과거 전례에 제동, CJ 파기환송심만 마이웨이?

배임에 대해서는 재계의 불만이 많다. 거대 기업조직을 경영하기 위해 기업공개, 즉 주식회사로 외부의 불특정 다수의 자금을 끌어들이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것. 일부 내부 구성원 간 지분 나누기로 형식상 주식회사에 그치는 경우보다 이해 당사자가 당연히 많아지고, 오너 일가가 기업의 주인으로 여기는 현실과 달리 주주들에 대해 책임을 지는 구조를 형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경영상 위험 부담을 안은 결정에 대해서도 처벌 추진이 이뤄지고 심지어 '걸면 걸리는 법'으로까지 비판을 받게 된다.

형법상 배임에 비해 특정경제처벌법상 배임, 상법상 특별배임은 무게감이 다르지만, 오히려 처벌은 더 쉬운 운영 상황을 보이기도 했다. 법원도 검찰의 이런 기업인 수사 행태에 굳이 제동을 걸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배임에 해당하는 범죄 사실이 있으면 그 위험 발생의 가능성이 사실상 존재만 하면 처벌할 수 있다는 추상적 위험범으로 해석, 운영돼왔다. 위험 발생 가능성을 한층 더 현실적이고 엄격하게 보는 구체적 위험범으로 보는 게 맞다는 게 학술적 의견이었지만, 막상 재벌 관련 사건 등에서는 이런 문제는 도외시돼왔다.

하지만 지난해 가을, 은행 일선지점장이 특정한 업체에 비정상적인 지급보증을 해줬다는 이유만으로는 배임죄가 성립된다고 볼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지급보증서가 실제로 사용되지 않아서 은행이 져야 하는 채무가 '현실적으로 발생하지 않은 이상' 재산상의 손해가 발생됐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이다.

시곗바늘을 좀 더 앞으로 돌려보면, 심지어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형식으로 중요한 선언을 하는 배임죄 관련 판결도 있다. 2014년 판결에 따르면,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돈을 빌리면서 부동산을 담보로 제공한 후 채무를 갚지 못하면 부동산을 넘겨주기로 했었던 대물변제 예약을 하고도 부동산을 제3자에게 처분했을 경우 배임죄로 처벌할 수 없다. 

과거 대물변제 예약 후 부동산을 처분하고 계약을 이행하지 못한다면 채무자를 배임죄로 처벌하던 기존 판례가 변경된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선에서도 이런 배임 등 처리 상황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무죄 취지의 대법원 판결을 참조하다 보니, 사건 가액이 일단 크더라도 꼭 엄벌해야 하는 경우인지 모호한 경우에는 집행유예 판단도 과감하게 내리게 된 것이다.

지난해 외부에 알려진 '서울고법 관내 형사합의부 양형실무토론회 자료'가 이런 동향을 잘 반영한다. 이 자료는 2014년 3월부터 지난해 2월 말까지 1년간 서울고법 관내 각 지방법원 및 지원 형사합의부가 선고한 횡령 및 배임 사건의 1심 선고(항소심 선고된 사건은 항소심 결과도 반영) 결과에서 집행유예 활용도 상승 경향을 지적했다.

때문에 "왜 사건 가액이 큰 사안에서 양형기준을 벗어난 경우가 오히려 많냐"는 지적은 이런 판례 변화 와중의 해석 패턴 격동기임을 감안하지 않은, 절반만 유효한 언급이라는 해석도 나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CJ 탈세 및 배임 파기환송심에서 해당 재판부가 엄벌을 한 게 더 문제라는 지적도 가능하다. 물론 재판부는 △CJ 사건에서 특정경제범죄처벌법상 배임이 아니라 형법상 배임으로 바뀌는 것일 뿐, 기본 사실관계 구조는 같다 △배임 문제가 중요한 게 아니라 조세포탈(탈세)이 중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배임죄 성립 여부를 따질 때 신중하게 구체적 위험성 판단을 하라는 대법원 견해가 등장한 이 시점에, 특히 배임 피해액수 산정마저도 어려운 사안에 굳이 불치병인 근육위축증 환자에게 실형 선고를 한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많다.  

배임 이득액을 크게 잡고 특경가법상 배임 명목을 적용한 1심, 항소심 판결 형량이 4년, 3년이었고, 파기환송 사유 자체가 이번에는 형법상 배임으로 사안을 검토하라는 것으로 조정됐다는 점을 유념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2년6월형이 나온 걸 보면, 죗값 즉 불법의 크기에 대한 오해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경가법을 어기든, 형법을 어기든 같다고 여기고 있다면 그것은 문제다. 그게 아니라도 '아무튼' 기업인 배임은 질이 나쁘고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생각이 양형판단과 자유심증 전반을 오염시키고 있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 따라서 CJ측 변호인단은 재상고를 통해 '배임 부분은 아예 무죄'로 강경하게 주장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조세포탈이 중요한 범죄 상황이므로 실형 불가피라는 전체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없다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순전히 이것만으로도 불치병 환자에게 실형 선고라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해야 한다. 문제는 그렇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조세포탈 엄벌주의 천정배 장관 시대로 끝, 전재용씨 등 선처 사례 다수

우리 법제는 탈세 처벌에 관련해 조세범처벌법을 기본으로 하되, 특정경제범죄처벌법이 아닌 특정범죄가중처벌법에 탈세 관련 가중 규정을 두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번에 CJ 파기환송심에서 적용된 것은 조세범처벌법상 규정이 아닌 특가법상 탈세죄다.

기본적으로 그 액수에 따라 3년 이상 징역, 5년 이상 징역 등으로 조세범처벌법 대비(2년 이하 징역을 원칙으로 함) 상당히 높인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일단 형을 5년으로 정한 다음 작량감경 등을 하면 집행유예까지 가능하다는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경영권 방어를 위한 차명주식 보유가 탈세라거나 해서 정상을 참작할 여지가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또 해외 조세포탈에 대한 비난 가능성 등을 이유로 하더라도, 반면에 근위축 특수 질병을 앓고 있는 점에서 수형 감당 능력이 없다는 점에서 같이 집행유예로 처리할 수도 있다.

미국은 적발이 어려운 역외 조세포탈에 대해서도 5년 이하 징역을 기준으로, 벌금을 강경하게 집행하고 있고, 독일도 형량이 유사하다. 우리만 특가법 대상으로 규정을 강화하고, 더욱이 역외 탈세 시도는 죄질이 나쁘다고 강조를 하면서도 온정을 베풀어줘야 할 사정은 외면한다면 세금을 받아내는 일에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세금 문제는 기술적, 기계적 처리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무조건 탈세 사실이 발생했다고 해서 범죄 시하거나 강한 처벌 일변도로 가는 관행도 없다. 과거 천정배 의원이 법무부 장관으로 있던 시절(2006년)에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로 조세를 포탈한 경우'라는 조항을 '고의로 행하는 일체의 행위'로 바꾸자는 정부 차원의 논의가 있었으나 결국  없던 일이 된 원인이 여기 있다. 심지어 최근엔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 표현을 쓰는 현행 규정마저도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고 가혹하다는 비판마저 나오는 실정이다.   

2014년 한 세미나에서는 오종윤 변호사나 이형철 변호사 등 주요 로펌 중견 변호사들이 탈세 처벌 규정이 경제 규모 발전과 이로 인한 거래 규모 상승 등 현실에 비해 너무 지나치다고 지적하고, 양형기준 역시 액수에 지나치게 좌우되며 과도하다는 의견도 내는 등 문제가 많이 지적됐다.

재판 실무상으로도 대법원이 양도소득세 27억여원을 탈루한 전재용씨(전두환 전 대통령 아들)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한 바 있다. 과거 포탈 전례가 있고 건강 등 배려 사항이 없음에도 이같이 처리한 것.

1999년 한진그룹이 항공기 도입 리베이트 등으로 탈루소득이 1조895억원선에 달했고 추징액은 5416억원이었는데 조중훈 당시 회장은 고령으로 기소조차 안 되고, 이후 조양호-조수호씨 형제가 기소됐지만 항소심에서 집행유예형을 받은 전례가 있다. 

따라서 단지 초기에 거론되는 액수가 커서 '공공의 적'처럼 소란하게 수사와 기소, 1심 진행이 된다는 이유만으로 배임이나 조세포탈 사건에 성급히 돌을 던지는 것은 지양할 문제라는 지적이다. 해외 포탈액 등은 특히 기소와 1심 판결 사이에 즉, 검찰과 법원 판단 사이에 격차가 커 반토막이 나다시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배임 역시 죄가 있는지 여부가 논란이 되는 가운데 기업을 살리기 위한 활동이라는 점이 뒤늦게 인정받기도 한다.

이에 배임과 조세포탈의 경우, 양형에 비판이 많지만 이제는 그 논의를 한 단계 격상할 필요도 있다는 지적이다. 왜 엄벌을 하지 않느냐는 주장만 할 게 아니라, 왜 개별 재판부에서 자의적으로 판단할 여지를 그렇게 넓게 두는가에 잣대를 대야 한다는 것이다.

CJ 사건은 문제가 많은 배임 양형과 탈세 양형이 교집합으로 만나 부적절한 중형 선고가 이뤄진 게 아니냐는 비판이 이어지며 특히 관심을 모으고 있다. 대법원이 재상고심을 진행하면서 배임죄 관련 법리 분석을 어떻게 마치느냐가 중요 쟁점이지만, 세인들은 오히려 이 과정보다 파기환송심이 남긴 이런 양형 여파에 보다 많은 관심을 두고 논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