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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세 노인·불치병…양형기준도 모르쇠? '사법치사' 비판 비등

[양형논란 전쟁②] 태광 고령 노인에 엄벌 의지, CJ 파기환송심 사건도 논란

임혜현 기자 기자  2016.01.14 11:4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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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양형, 즉 형을 정하는 재판장의 작업은 사법부 업무의 꽃이다. 국회에서 만들어준 법에는 법정형이 정해졌지만, 법관은 이를 위시해 형법 제51조에서 정한 양형의 조건이 되는 사항을 두루 참작하고, 적정한 범위 내에서 이뤄지도록 조정, 최종적으로 선고형을 만들 '재량 판단 권한'을 갖는다.

다만 이 재량이 과도하면 불필요하게 항소나 상고를 해 새로 판결을 받아야 하는 '심급 낭비 논란'이 불가피하므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더욱이 다른 심급에서 새 판결을 받아보기 전에 문제가 악화돼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판결에서 범죄 사실을 명쾌히 논증하는 것 못지 않게 적당한 형량을 정하는 작업의 중요성은 아무리 조심스러움을 요청해도 지나치지 않다.

양형 시비 가운데 큰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사법치사(致死) 논란이다. 사법부에서도 이런 여러 문제들에 주목, 양형의 합리적 범위를 정하려는 등 움직임을 보였다.

대법원은 재판부마다 양형 편차가 심화되는 현상을 막기 위해 별도의 위원회를 구성하고 범죄유형별로 양형기준을 설정하고 있다. 마련된 양형기준은 재판부에 권고적 효력을 가지며, 재판부가 이 기준을 벗어날 경우 판결문에 사유를 기재해야 한다.

살인이나 배임 등 주요 범죄에 대해 현재 마련된 양형의 기준을 살펴 보면, 형을 집행하는 게 현저히 어려운 경우 집행유예 등 사유로 반영하게 돼 있다.

하지만 사회적 주목도가 높은 이른바 재벌 사건에서는 이런 지침이 엄벌 요청, 사회적 대의 등을 이유로 사실상 배제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일례로 2012년 이선애 전 태광그룹 상무 사건이 있다. 지나치게 엄격한 판결이 수형 중 사망으로 이르게 한 경우로 거론되는 것. 이 전 상무는 1400억원대 횡령 및 배임 혐의로 아들 이호진씨(전 태광그룹 회장)와 기소됐다. 특히 이 사안은 범행을 지시하는 등 주도한 이가 어머니 이 전 상무였으나, 아들인 이 전 회장까지도 내용을 지속적으로 보고받아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 등으로 관심을 모았었다. 주범이 2명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가담 우열을 가늠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과거부터 재벌 사건에서는 문제가 되는 경우 부자, 형제 중 하나는 실형을 면하게 해 주는 관행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태광의 경우 먼저 구속돼 있던 아들은 물론, 84세의 노인인 이 전 상무에게까지 중형이 선고됐다.

여기에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에 회부됐던 이 전 상무는 법정구속까지 당했다. 수모는 둘째치고 고령인 이 전 상무에게 지나치게 무거운 처분이 아니냐는 우려가 판결 직후 나왔다. 이는 이 전 회장이 간암 수술 직후라는 점, 이 전 상무가 뇌졸중 증상과 과거 대동맥류 수술 병력 등 건강이 여의치 않았다는 점에서 이례적으로 여겨졌다. 당시 이들의 건강 문제에 대해 재판부는 "형량을 낮추는 조건이 안 된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이후 실제로 이 건강 리스크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빚으며 현실화됐는데, 이 전 상무는 결국 죄수복을 입은 상태에서 세상을 떠나는 신세가 됐다. 병이 악화돼 치료를 하지 못하고 결국 죽은 것. 일부 부유층이나 사회지도층 출신 수형자가 형집행정지 처분을 악용한다는 비판은 종종 나온 바 있다.

하지만 이런 비판을 받을 만한 사안이 불거지고, 이에 대한 비난 여론이 비등할 때마다 일각에서는 이 전 상무처럼 제때 치료를 해야 함에도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다 뒤늦게 집행정지 결정이 내려졌다는 지적이 있었다. 치료의 적기를 놓쳐 사망으로 치달았다는 것이다.

형집행정지는 기본적으로 교정 당국의 책임이다. 이 전 상무의 경우 '돋보기 심사' 등 깐깐한 심사 처리를 통해 집행정지 최종 결정이 이뤄졌었던 점이 대서특필됐다. 일명 '영남제분 사모님 논란'을 의식한 것으로 읽히는데, 결국 이런 상황은 법관들이 양형이 아니라 수형 집행의 문제라며 건강 상태를 반영해주지 않는 게 과연 온당한지 근원적 의문을 갖게 한다. 건강 문제에도 불구하고 엄중한 실형 판결을 받고 갇힌 이를 풀어주는 문제에 새삼 관계자들이 부담감 없이 소신 결정을 한다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법원 관계자들은 사면이나 복권 등 판결 효력을 잃게 하는 조치에 대단히 부정적인 견해를 기본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형 사건에 대한 정치적 고려, 혹은 민생 사건 등에 대한 국민적 화합 유도를 목적으로 한 조치, 대사면을 통한 사회 분위기 제고 등으로 단행되는 고도의 통치 행위인 사면권 행사에는 부정적이면서, 정작 개개인의 문제, 하지만 그런 개개인에게는 정말 중요한 문제를 좌우하는 형집행 가능성에 대해서는 그것은 양형이 아니라 집행의 문제라며 떠넘기기를 하는 셈이다.

이는 대통령이나 법무부장관의 중요 사안이나 문제에 대한 판단은 사법부 권한의 침해지만, 일개 수형자에 대해 '잠시 밖으로 내 보내주는 정도'에 대해서는 더 이상 관여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사실상 같은 판결문의 무력화 상황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는 이상한 논리인 것은 물론, 그런 판결이 휴지가 되는 가능성이 오히려 예상되는 경우에 법원 스스로가 방지를 할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를 미리 살펴 애초에 판결을 잘 하면 되는데, 법무 당국에 일을 넘기겠다는 식으로 판결만 하면 된다고 밀고 나간다는 것은 양형 기능을 일부 혹은 전부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비판을 받을 여지마저 있다.

이런 논리는 양형에 대한 심사를 점차 정교화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당초 기대됐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대체로는 2009년 무렵 살인, 배임 등 주요 범죄에 대한 양형의 기준이 엄정하게 확립된 것으로 회자되기도 했다.

그러나 태광 문제 즉 이 전 상무 건으로 사법치사 논란으로까지 불거졌다. 사법치사 표현은 박정희 전 대통령 집권기에 사법부가 공안 사건에서 사형 판결을 통해 일명 사법살인 비판을 받았던 전례에 빗댄 것으로 당시 언론이 이 같은 표현을 사용한 것은 물론, 이헌 변호사도 바른사회시민회의가 연 토론회에서 이 표현을 거론했다. 

엄정한 판결과 집행 자체는 나쁘다고 볼 게 아니지만, 예상 가능성이 없고 자칫 누군가는 무리한 판결로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는 점이 공포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우려는 이번에 이재현 CJ그룹 회장 사건에서도 재점화되고 있다. 당초 검찰측 기소 논리보다 조세 포탈 논란액은 1심에 항소심, 대법원 판단 그리고 다시 파기환송심을 거치는 동안 반으로 줄었고, 배임 부분은 특정경제범죄처벌에 관한 법률상 배임에서 형법상 배임으로 적용 법조가 바뀌기도 했다. 실제로 액수가 현저히 줄어드는 정도만 문제가 부각된 게 아니라, 배임 피해액은 특정이 곤란하다는 모호한 상황이 된 것.

하지만 이런 법률적 쟁점 변화에도 불구하고 판결은 1심부터 파기환송심의 다른 사건 대비 길고 복잡한 과정에도 크게 줄어든 바가 없다. 이에 더해 파기환송심 재판부에서는 선천적 유전병(CMT)을 앓고 있는 데다가 신장 이식 수술까지 받는 등 건강이 워낙 좋지 않아 수형생활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라는 지적에 대해 사실상 외면을 했다.

이는 양형 요소가 아니라 수형 조건이라는 게 파기환송심에서 실형 선고가 나온 이유라는 것이다. 특히 외부 감염에 약한 질병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판결을 내려 봐도 집행에 사실상 어려움이 있다는 점을 알지만, 무시하고 굳이 강행한 것으로 요약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는 양형기준에서 세분화된 기준, 엄격하고도 예측이 가능한 판결 가능성을 요청하면서도 기본적으로 살인의 기수에 이른 경우가 아니면 형을 사는 게 거의 어려운 사람에게는 집행유예 가능성을 고려해 주도록 한 게 제대로 일선에서 수용되지 않는 상황을 대변하는 경우다. 때에 따라서 유연하고 온정적인 여지를 만들어 줌으로써 전체적인 정의와 개별적 정의를 조화하라는 게 양형기준 검토의 틀이라고 이해하기 보다는 기계적 해석과 엄정 판결 고집으로 일선 법관들이 곡해할 여지마저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우리나라가 비록 여러 번의 재판을 받아볼 수 있는 심급제도(우리의 경우 세 단계를 예정하므로 흔히 3심제로도 부름)를 시행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는 다른 상급 재판부의 판단을 굳이 요하지 않게끔 완전한 판결을 해야 할, 적어도 그러기 위해 고민해야 할 의무 자체를 면제해 주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건 하나하나가 사실상 여기서 종결될 수 있고 소중하기 그지없다는 일기일회(一期一會) 정신으로 모든 재판부가 판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사법부가 그런 요구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일반인들의 오해가 있고, 이를 향후 불식시켜야 한다는 숙제가 있다는 것 자체가 비극이다. 그 해법 중 하나로 피고인이 이미 지극히 고령이거나 불치 내지 난치병을 앓고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양형 요소와 수형 조건으로 구분하는 언어유희 관행을 먼저 없애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