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기자수첩] 특무상사의 꿈과 눈물, 이훈평과 고연호

임혜현 기자 기자  2016.01.14 10:07:23

기사프린트

[프라임경제] 1999년 3월 국민회의 전국구의원직 승계가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오래 당료 생활을 해 온 이훈평씨가 김한길 당시 의원의 청와대 수석직 이동(지금 안철수신당에 힘을 실어주는 그 정치거물 김한길이 맞다)으로 금배지 바톤터치를 한 것이다. 

1963년 6대 국회의원 선거 무렵부터 대학생(중앙대 신문학과) 신분으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선거 운동원으로 정치권에 발을 들인 뒤 40년 가까이 흐른 뒤 얻은 선물이었다. DJ, 권노갑 전 의원 등에게는 까마득한 목포상고 후배로 이른바 '목상 라인'을 잇는 가운데 어려운 일을 오래 해 왔다.

한때 그는 정치생활을 접고 회사에 들어가기도 했지만 노동운동을 하는 등으로 여전히 평탄한 일반 회사원이 되지는 못했다(삼강산업 노조위원장 역임). 이로 인해 결국 DJ맨이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했고, 그 때문에 1980년 5·18당시에는 합동수사부에 연행돼 고초를 겪기도 했다. 그래서 결국 정치권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평민당 노동국장, 국민회의 지방자치부위원장과 유세부위원장 등을 거치며 DJ 청와대 입성에 기여했지만 직함은 늘 부위원장급에서 맴돌았다. 바로 금배지가 없었기 때문이었는데, 그래서 그도 지역구 출마를 생각해 사무실을 마련하는 등 작업에 들어간 적도 있다. 하지만 권 전 의원 등의 만류로 결국 뜻을 접었다.

하지만 DJ와 당에서는 어렵고 복잡한 지역구 출마 교통정리 와중에 선뜻 오랜 꿈을 접어준 그를 잊지 않았다. 그래서 전국구 즉 오늘날 비례대표 명부 순위에서 제법 높은 자리를 줬다. 입각, 청와대 입성 등으로 빠질 경우 승계를 기대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고, 실제 그 안이 실현됐다.

한 정당이 오래 영속하고 정권 창출을 하려면 기라성 같은 스타 의원들도 많을 수록 좋으나, 밑바닥 지역 요소요소를 누비며 관리를 하는 '이훈평 특무상사' 같은 이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신민당부터 시작된 야당 역사가 이승만 정부와의 대결과 오랜 군사정권 치하를 거치면서도 끊기지 않고 국민회의, 새천년민주당, 열린우리당 등에 이어 지금의 더불어민주당으로 법통을 이어온 것도 다 이들의 덕이다.

그리고 실제로 당에서도 이런 기여를 잊지 않고 모든 이에게 충분히 보상해 줬다고는 할 수 없어도 항상 노고를 잊지 않고 있다는 정을 표시하고는 했다. 이른바 특무상사 발탁 케이스다.

근래 서울 은평을에서 고연호씨가 탈당했다. 열린우리당 시절 입당해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주장 등으로 당 주류 의중과 다른 파격적 민생경제 구상으로 주목받았던 이다. 이화여대 경제학 전공이라는 주류 같은 간판에도 이런 아이디어를 낼 수 있었던 배경은 바로 그녀의 개인사에 있다. 형편이 어려웠기에 고학 비슷하게 중고교, 대학을 마치고 은평에서 사업을 해 자수성가를 해 서민에 대한 애정과 고민이 항상 많았던 것. 지역정치권에서도 발이 넓고 기여도가 컸었다.

하지만 2006년 은평구청장, 2008년 전국구의원, 2010년 7·28 재보궐, 2012년 19대 총선 등 여러 번 마음을 뒀지만 번번히 고배를 들어야 했다. 거의 대부분 당 내부 교통정리, 즉 다른 진보진영과의 후보단일화 등 상황으로 인해 본선에 나서보지도 못하고 접었어야 하는 경우였다.

결국 오래 사랑했던 당을 떠나 안철수 진영에 의탁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녀가 국민의당 발전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 여부는 사실 별로 우려 대상이 아닌 것 같다. 은평을에서 그간 다져온 무형자산이 크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인사들을 최대한 많이 세심하게 아우르지 못하는 현재의 민주당 사정이다.

이렇게 지역 세포를 하나씩 잃을 때마다 현직 새누리당 지역구 의원과 격돌해야 할 깃발 뺏기 경쟁에서 민주당이 이길 가능성은 요원해져 가는 것이다. '이훈평 발탁' 같은 감동을 주지 못한 여파가 지금 천정배 신당, 안철수 신당 이탈 움직임의 한 축이라고 해석하면 지나친 해석론일까.  특무상사의 이탈에 마음이 무거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