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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멋대로 판결'의 진화? 형소법 상고제한 방패 삼아 '비겁한 폭주'

[양형논란 전쟁①] 집행유예 오남용으로 검찰 발목 잡아…엽기적 악질범죄 사실상 봐주는 부작용

임혜현 기자 기자  2016.01.12 17:3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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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양형, 즉 형을 정하는 재판장의 작업은 사법부 업무의 꽃이다. 국회에서 만들어준 법에는 법정형이 정해졌지만, 법관은 이를 위시해 형법 제51조에서 정한 양형의 조건이 되는 사항을 두루 참작하고, 적정한 범위 내에서 이뤄지도록 조정, 최종적으로 선고형을 만들 '재량 판단 권한'을 갖는다.

다만 이 재량이 과도하면 불필요하게 항소나 상고를 해 새로 판결을 받아야 하는 '심급 낭비 논란'이 불가피하므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그간 음지에 가려져 많이 논의되지 않았지만, 사법부 내부에서조차도 이 같은 문제를 주목, 양형의 합리적 범위를 정하려는 등 움직임을 보였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여전히 문제가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법관은 신이 아니다'라는 제언은 양형 실무에서 늘 비판의 가장 큰 문제이자 공격 근거로 거론돼 온 명제다. 법관의 오만함을 경계하고, 자신의 개인적 신념이나 소신 혹은 취향을 법관적 양심으로 착각해 재량을 준 이유 자체를 망각하는 경우를 경계하는 비판인 셈이다.

그러나 최근 이런 문제보다 "법관이 비겁하게 형사소송법 규정의 방패 뒤에 숨어서 최대한 마음대로 처리를 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이른바 집행유예 남용 의혹, 형사소송법상 제383조 제4호 악용 가능성 문제다.

우선 집행유예 문제는 엄중히 판단해야 할 사항에 집행유예 판결을 함으로써, 사실상 절차를 미봉책으로 덮어버리는 것이다.

피고인으로서는 공직자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경우 사실상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는 집행유예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벌금형보다도 선호하는 경향마저도 있다. 검찰로서도 이 같은 상황이 나쁘지 않다. 어쨌든 '이긴 셈'이 되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가을 서울중앙지법에서 나왔던 항소심(1심을 지방법원 단독에서 맡았던 사안) 판결은 이런 우려를 정면에서 받는 대표적 케이스로 거론된다.

삼성전자에서 일하던 중국인 연구원이 외국으로 기밀을 유출했다는 범죄 사실 법정 공방에서, 항소심 재판부는 "기밀을 유출한 것은 인정되나 해당 내용이 경쟁사 등으로 넘어간 흔적을 찾을 수 없다"며 집행유예형을 선고했다.

사실상의 '면죄부'로 수사소추기관의 국익 보호 의지에 찬물을 끼얹는 동시에 산업스파이 문제가 '추상적 위험범인지 구체적 위험범인지' 논란을 치열하게 법리 검토할 상황까지도 덮어버린 폭거라는 지적마저 나온다.

이 판결은 후에 서울고법으로 자리를 옮겨 CJ그룹 배임 등 파기환송심을 맡아 엄벌 판결을 내려 화제가 된 이원형 당시 서울중앙지법 부장의 재판부에서 나왔다.

특히 검찰의 처벌 의지가 폭주할 경우 사법부가 준엄한 판결로 제어하는 심판 역할을 한다는 인정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검찰의 의지를 멋대로 흔드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사는 사안들이 상당히 나오는 큰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미 언급한 집행유예를 통해 그냥 다 같이 좋은 게 좋은 상황을 만드는 것과, 여기에 법적 한계점 및 형소법 관련 대법원 판례의 고루한 태도 유지 상황 등이 어우러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이런 경우다. 피고인이 15년형을 선고받은 경우라고 할 때, 일단은 상당히 중형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상당히 각종 사회적 비판 가능성과 죄질의 나쁨, 유사 사안의 양형 케이스 등 고려를 하면 상당히 가벼울 수도 있다. 바로 경북 지역에서 일어났던 칠곡계모사건의 사안이다. 

현행 형사소송법 관련 판례로는 피고인이 상고를 포기했음에도 검사가 단독 상고할 경우, 양형 부당을 이유로 상고하는 것으로 본다.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가 선고된 사건에서 중대한 사실의 오인이 있어 판결에 영향을 미친 때나 형의 양정이 심히 부당하다고 인정할 현저한 사유가 있을 때에는 피고인이 대법원에 상고할 수 있다'고 제한하는 게 형소법 제383조 제4호 내용이다.

검찰로서는 피고인이 10년 이상 중형인 사안에서 이 조건에 만족하는 경우 상고한다면 몰라도, 독자적으로는 형량이 약하다는 불만을 내세워서는 상고할 수 없다고 해석되는 것이다.

이는 1심과 2심에서 충분히 다투고서도 범죄를 입증하지 못하는 것은 오롯이 검사의 책임, 더 나아가 국가의 책임이기 때문에 피고인을 그만 괴롭히라는 대전제를 반영한 것으로 그 출발점은 상당히 옳다.

그런데 칠곡계모사건에서 검찰이 이례적으로 판례를 변경하겠다며 공세적 태도를 보인 것은, 형을 어중간하게 선고하는 식으로 치열한 법리 공방을 법원이 포기하는 경우가 너무 많고 범죄 증가의 한 원인이 된다는 불만 때문이다.

2013년 울산자매사건에서도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경우 검찰 측이 꼭 사형 선고를 해달라며 상고를 추진했지만 기각된 예가 있다. 검찰은 이런 누적된 여러 악질 사안에 대해 검사가 단독 상고하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며 해당 조항의 해석 변경을 바라고 있다.

대법원이 이런 해석론을 포기하지 않는 경우를 대비해 검사의 단독 상고를 허용하는 형소법 개정안이 추진된 바도 있으나, 차기 국회에서 이런 법안이 재등장할지, 또 통과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결국 엄격하고 신중한 판결의 저울질 대신 적당한 타협 논란에 안주하는 법관이 늘어날 수록 양형의 기준이 대체 뭐냐는 논란, 판사를 잘못 만나 망쳤다는 한탄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