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혜현 기자 기자 2016.01.05 10:35:02
[프라임경제] 산업스파이를 통해 타국 기업의 기술을 빼내기 위한 노력이 치열한 가운데 이를 막기 위한 각국의 고민 역시 뜨겁다. 어느 나라든 과거 산업비밀 보호를 민사적 침해 문제로 이해해온 경향이 강했으나 이를 보완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히 전개되는 것.
우선 산업스파이, 경제스파이 등의 용어가 다양하게 쓰이는 상황 자체가 달라진 글로벌 첩보전 상황을 반영하는 징표라는 풀이도 나온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제 전반에서 '개별 사안, 기업적 이익'이라는 접근 외에 '국가적 이익'이라는 이해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적으로 다른 나라 기업 혹은 정부 단위의 경제산업적 아이템을 빼내려는 시도가 진행되는 게 놀랍지 않은 시대이므로, 제도 운영 역시 이에 걸맞게 진화할 것이 요청된다는 것이다.
미국은 영업비밀보호법을 통해 기업 비밀 침해 문제에 대응했으나, 경제스파이법(EEA)을 만들면서 방첩 개념을 보다 강화했다.
지식재산권침해를 민사 문제 처리했던 미국도 기술력 유출 부분 만은 과거에 없던 강력한 형사상 처벌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법을 내놨다는 것은 그만큼 큰 이해관계가 걸렸다는 위기의식이 미국인들에게 뿌리내렸음을 방증한다.
실제 2010년 케이스 알렉산더 당시 국가안보국장은 지적재산권 부정 취득으로 인한 미국의 경제적 손실은 매년 2500억달러에서 3000억달러에 달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경제스파이법의 처벌 유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외국 정부 등 국가기관을 위해 영업상 비밀을 유출하면 가중처벌(기본적으로 15년 이하 징역·50만달러 이하 벌금)한다. 이를 'EEA 1831조'상 범죄로 부른다.
그외 일반적 산업스파이로 입증될 경우라도 처벌이 가볍지는 않다. EEA 1832조에 의거 10년 이하 징역·25만달러 이하로 벌하는 것이 골자다.
냉전시절에는 이념 문제로 상대 진영의 국가기관이 우리에게 침투해 군사상 기밀을 빼내는 등 작전을 했다면 이 개념을 변형해서 경제적 기밀, 산업적 첨단 기술력을 빼돌리기 위해 정보기관이 직접 움직일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에 협력하는 자를 강하게 처벌해야 할 필요도 함께 높아진다. 이에 따라 EEA 1831상 범죄 처벌이 강한 의미를 갖게 된다. 외국 정부를 위해 일하든 외국 회사에 기밀을 팔아먹든 국내 경쟁업체에 기밀을 넘기든 엄벌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셈이다.
물론 이런 강력한 법을 가진 미국이라고 해서 기소 책임을 검찰이 편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은 아니다. 제대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거나 인과관계 입증, 피해액 산정 등을 세세히 하지 못해도 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윤종행 충남대 로스쿨 교수가 지난해 2월 '강원법학'에 기고한 논문은 미국 연방검사들의 산업스파이와의 전쟁 최신 동향을 소개한 심층자료다.
이에 따르면 여러 나라로부터 부러움을 사는 미국이지만, 막상 국내에서는 자국의 선진적 경제스파이 방어 대책 법률에 대한 만족도가 높지 않다. 미국 일각에서는 EEA 1831조상 '범죄의 입증'이 쉽지 않다는 문제, 즉 '법원에서 너무 엄격히 조항을 해석한다'는 논란이 있다고 한다.
잠깐 국내 이슈로 이야기를 전환하자면, 서울에서 열린 한 산업스파이 문제 컨퍼런스를 위해 방한, 참석한 데이비드 시너먼 변호사(미국)의 언급을 들 수 있다.
그는 2013년 5월에 "미국은 화이트칼라 범죄의 경우 보다 엄격한 양형 기준을 적용한다. 경제스파이법을 통해 기술유출 범죄를 다루고 강력히 처벌하고 있다"고 말했었다.
거칠게 종합, 요약하면 입증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나 그런 만큼 막상 혐의가 인정되는 경우 엄벌에 처해진다는 공포감을 확고히 조성할 정도의 강한 운영 시스템은 확보,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EEA, 특히 1831조의 활용도는 높지 않은 게 사실이다. 미국 법무부가 연방 전체의 조사 내용을 통합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까지 1831조를 적용, 기소한 경우는 9건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9건 중에도 5건은 플리바게닝(유죄 인정 협상)에서 피고인이 방어를 포기하고 인정하는 경우였다. 3건만 정식 재판으로 다뤄졌고 1건은 통계 작성 당시 사안유지한 채 계류 중이다.
기소 성공 건수 자체가 적고 유죄 판결을 얻어내는 비율이 낮다고 요약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더욱이 1832조상의 범죄 수사와 기소는 대단히 많다.
이는 EEA 1831조든 1832조든 간에 이 같은 문제를 엄단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미 검찰 당국이 쉬지 않고 근무하는 와중에 여기에 더해 민사상 철퇴를 병행해서 운영하기 때문에 촘촘한 그물망 완성이 가능하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미국 민사소송은 형사재판상 엄격함과 달리 '우월의 증거 원칙'을 갖고 산업스파이 문제를 다룬다. 따라서 EEA 상 국내 기업을 위한 것이든, 해외 기업을 위했든 일단 민사상 강력한 응징으로 거의 망할 각오를 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면서 형사상 압박을 같이 대응해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된다.
외국 정부를 위한 스파이였다면 민사상 소추에 다소 미비점이 있으나 일단 이 경우에는 중형의 압박이 그만큼 크기 때문에 전체적 맥락에서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결국 영업비밀보호법, EEA가 크로스 오버로 스파이 혐의자를 옥죄는 셈인데 이렇게 민사와 형사를 막론하고 주와 연방이 함께 협력적으로 일을 하는 구도가 되기 때문에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정은 산업스파이를 벌하는 문제를 업무상 배임, 산업기술보호법, 부정경쟁방지법 등으로 다양하게 중첩 보호하는 우리와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외형상 유사성에도 우리는 경제스파이 혹은 산업스파이를 막는 데 어려움이 큰 국가 중 하나다. 이렇게 위상의 큰 차이를 만들어 낸 배경에는 민사상 징벌적 배상을 가진 미국과 본질적 차이가 있고, 형사상으로도 솜방망이 처벌로 모든 걸 끝내주는 결과상 차이가 이런 상황을 빚는다는 평가가 있다.
경찰청 통계상 2009∼2013년 5년간 산업기술 유출범 처리 경과를 보면 적나라하게 이런 점이 드러난다. 기소된 719명 중 형 확정범 464명을 기준으로, 실형 선고 케이스는 단 32명(6.9%)에 그친다. 대부분이 집행유예(287명·61.9%), 벌금(72명·15.5%) 등 가벼운 처벌 정도다.
간단히 말하면 미국 수사 당국이나 소추를 맡는 검찰 측도 산업스파이를 잡고, 수사 및 기소해 법정에 세우는 과정에서 입증상 어려움을 갖는 것은 우리와 같다.
그렇지만 민사상 전통 등이 융합돼 든든한 우군이 되고 법원에서도 '입증이 어려운 대신 엄단해준다'는 약속을 대국민적으로 하는 셈이기 때문에 강력한 힘으로 스파이 혐의자를 압박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우리처럼 입증을 해도 집행유예로 처리된다는 맥빠지는 지경에서 일을 하는 상황과 출발선이 다르므로 결과도 다르다는 것.
이에 따라 아예 엄벌주의를 못박아 법원의 온정주의에 경종을 울리겠다는 정치권의 움직임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만우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형법 개정안이 외국 정부와 산업체를 위한 첩보 행위도 간첩죄로 처벌할 수 있게 하자는 아이디어다.
사형, 무기징역까지도 가능하게 엄벌주의를 선언하자는 이 안은 그러나 작년 12월 기준 법안소위 회부 단계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국회가 선거구 획정 갈등 등으로 공회전 중이기 때문에 4월로 바짝 다가온 임기만료 시한 내에 임시국회를 여는 등으로 이를 처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관측이다.
이런 여러 상황을 보면, 결국 제도가 좋아도 행정부처 등 운영자와 사법부 등 관련 개입자들의 '의지' 문제하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기계적으로 피해액 입증 검토를 진행하거나 막연한 온정주의를 내세워 대응하는 기류부터 개선하자는 공감대 확인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