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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총수는 산업스파이만 못하다? 일부 판결, 균형성 시비

산업기밀보호 시스템 도전해도 온정주의 논란…경영판단이론 입법화 국회 거는 기대↑

임혜현·이보배 기자 기자  2016.01.04 15:4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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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CJ그룹의 변호인 선임 전략이 경영판단이론 등에 대한 논의 재점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구랍에 파기환송심에서 이재현 회장이 실형 선고를 받은 가운데, 재상고 방침이 결정됐다. CJ그룹 관계자는 4일 이와 관련, 정해진 바는 아직 없으나 변호인단은 우선 그대로 갈 것 같다고 말했다. 

이는 재상고에서 철저히 배임죄 부분에 대해 무죄 주장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물을 건너는 중에는 말을 바꿔 타지 않는다는 상식적 판단에서 벗어나는 모험은 지양한다는 것으로 읽힌다. 특히 이 사건에서 활약했던 변호사들이 특별히 업무에 미숙했다기 보다는 해당 재판부의 지나친 엄벌주의에 따라 실형 선고로 이어졌다는 세간의 평가도 이런 판단 기류에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무죄 취지로 주장한다는 것은 작은 양형 불만으로는 상고(재상고)를 하지 못하게 하는 현행 시스템 때문에 부득이한 전략적 이슈화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배임죄를 추상적 위험범처럼 다루는 일부 일선 법원 법관들의 행보에 더 이상 끌려다닐 수 없다는 재계 공감대를 대표해 재상고 전쟁을 치르려는 것으로도 읽힌다.

여기에는 특히 파기환송심을 맡았던 이원형 서울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불만도 깊이 작용한다는 호사가들의 이야기도 나온다. 엄벌주의자라는 지적은 이전에도 없지 않았으나, 산업 스파이 등에 대한 태도와 비교해 보면 지나친 재벌 엄벌론을 편다는 지적마저 나오는 것. 

재벌 고삐 여론 달래기용 엄벌주의가 배임죄 해석 논란 낳아

기업군, 한국식 표현으로는 재벌의 수장이 전체 그룹 경영상 필요에 따라 일부 계열사 손실을 감수하여 다른 계열사를 돕는 경우 이는 국민경제상 보면 (+)가 되는 판단임에도 불구하고 배임죄 처벌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우리 법률 체계는 형법상 배임은 물론 상법상 특별배임,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가중 이슈까지 촘촘하게 마련된 배임 처벌 틀을 갖고 있다. 이런 얼개는 사상 유사한 유례를 찾기 드물다. 프랑스는 이미 로젠블룸 판례로 이에 대한 면책 논리를 마련했고, 미국은 경영판단이론을 확립해 창의적이고 필수불가결적인 경영상 모험이나 일부 손실 감수 행동에 대해 면책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우리는 개별 회사의 주주에 대한 손실을 입혀서는 안 된다는 기계적 상법 해석 논의에 집착하는 것은 물론, 재벌 병폐에 대한 국민적 여론을 반영해 경영상 불가피한 판단에 대해서도 배임죄로 처단하는 관행을 고수하고 있다. 문제는 그나마 배임죄는 일반적으로 손실 발생의 위험도가 구체성에 도달했을 때 처벌하면 족하다는 논의가 일반적임에도(구체적 위험범) 유독 재벌 관련 사안에서는 추상적 위험범인 양 판결이 이뤄지고 이로 인해 엄벌(중형) 선고가 이뤄지고 있다.

예를 들어 CJ그룹의 경우는 이 회장이 일본 소재 개인 기업에 CJ 계열사를 동원, 보증을 하게 한 것은 잘못된 일이고 조세포탈 문제 등에 대해서는 응분의 처벌을 받아야 하지만 변제 여력이 충분한 상황에서 일종의 돌려막기 유사 결정을 한 것에 대해 손실액 계산을 통해 배임 위험 발생 논리를 짜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대법원의 지난 번 파기환송 판단은 단순히 배임액 규모에 대한 지적이었고, 세간에서는 그런 지적을 큰 틀에서 고법이 받아들인다면 파기환송심에서는 아마도 집행유예 정도가 나올 것으로 봤다. 하지만 이런 기대감이 무산된 터라면, 배임죄 적용 기류 전반에 대한 대법의 확실한 태도를 요구해 볼 필요가 있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산업기밀 침해 = 구체적 위험범' '재벌 배임 = 추상적 위험범'? 통일적 법체계 요청 외면

이런 상황에 대해 더욱 참기 어렵다는 판단을 CJ 주변은 물론 재계 관계자들이 하고 있는 데에는 산업 기밀 침해 문제에 대한 처벌 태도와 비교해도 지나치다는 불만 때문이다.

법 해석과 개별 사안에 대한 판단, 그리고 양형 결정은 어디까지나 사법부의 몫이고 극히 존중해야 하겠지만, 전체 입법적 균형성을 벗어날 정도로 사법 해석론이 폭주하는 것까지 감내해야 한다는 것은 무리라는 얘기다.

배임죄에 대한 해석과 적용 불만, 즉 이것이 왜 유독 재벌 관련 사안에서는 추상적 위험범인 것처럼 처리되는가에 대한 논의는 이미 언급한 바와 같다.

그런데 기업의 경영 와중에 경영진의 고뇌에 찬 결단을 추상적 위험범으로 처벌해야 할 정도로 우리나라 법률망이 전체적으로 개별 기업의 유무형 재산 이익에 대한 완전무결성 보호를 주장하고, 이에 필요한 행동을 기업 및 그 구성원들에게 강하게 요청하고 있다면, 마찬가지로 산업체 기밀 보호 등에 대해서도 이런 논리를 적용하는 등 일관성이 요청된다는 추정도 들어맞아야 한다.

입법학에서는 개별 법안을 마련할 때 아무리 좋은 목적이라고 해도 전체 법률 시스템과의 조화 필요성, 특히 처벌 규정의 논리 일관성과 균형 등을 요구한다.

선거로 뽑혀 입법형성의 자유가 있다고 이야기되는 입법자인 국회조차도 이런 요청을 받는 와중이라면, 입법, 사법, 행정 3부 중에서 가장 민주적 정당성이 떨어지는 사법부에서 기교적 해석의 자유를 이유로 전체적인 맥락에서 틀어진 자의적 법규 적용 구조를 보이는 것은 정당화될 여지가 더욱 적다고 하겠다. 

지금은 고인이 된 형법학의 태두 고 이재상 전 이화여대 교수의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산업기밀보호법, 산업기술유출방지법 등으로 통칭) 해석론에 따르면, 이 법에서 정한 누설은 침해의 구체적 위험이 있을 때 성립한다고 한다. 반대 의견으로는 임웅 성균관대 교수의 추상적 위험범 주장이 있다.

산업 스파이, 특히 우리나라를 먹여 살릴 창조적 원천기술을 빼돌리려는 해외 산업 스파이의 케이스마저도 구체적 위험범으로 해석, 적용해 재판하는 게 맞다는 해석론이 유력하게 대두되는 상황이라면, 회사 전반의 이익 추구를 항상 고민해야 하는 기업 총수 등에 대해서도 구체적 위험범 처벌을 하는 게 온당한 배임죄 해석론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따라서 현행 법률의 확실한 자구 수정 등을 통해 전체 틀을 보완하고 무엇보다 배임죄 문제에서 기업 경영인이 받는 지나친 불이익 해석 여지를 메우는 것이 요청된다고 하겠다.

외국 기업 위한 스파이짓은 집행유예, 재벌은 엄단 지나쳐          

이런 이야기는 결국 해석상 문제를 더 이상 사법부에 맡길 게 아니고, 경영판단이론 등에 대해서는 아예 국회에서 입법 처리를 해 줘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싣는다.

한편 이와 별도로, 산업기술유출방지법과 함께 산업 스파이 처벌 논거로 애용되는 또다른 전가의 보도 부정경쟁방지법에 대해서도 법원의 손에 더 이상 너무 많은 맡겨서는 안 된다는 우려 또한 높아지고 있다.

2011년 가을에 서울중앙지법에서 나온 항소심(1심이 단독재판이었던 사안) 판결은 이런 우려를 더욱 높이고 있다.

삼성전자에서 일하던 중국인 연구원이 외국에 기밀 유출을 한 경우에, "기밀을 유출한 것은 인정되나 해당 내용이 경쟁사 등으로 넘어간 흔적은 찾을 수 없다"고 집행유예의 가벼운 판단을 한 것.

이는 검찰의 유죄 논리를 정면으로 깰 정도로 법리상 논쟁거리는 없으나 얼마든 재판부 판단 여지에 따라 사실상 면죄부나 다름없는 처리를 해 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안이다.

공교롭게도 이 솜방망이 논란의 판결을 내놓은 재판부는 이원형 당시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는 이후 서울고법 부장으로 영전하는데, 그가 바로 CJ 파기환송심에서 강한 처벌 판단을 했다. 사실 집행을 유예하는 정도에서 마무리됐다면 경제계 일반에서도 굳이 대법원에 맞서는 양상으로 이번에 배임죄 해석 전반에 대한 무죄 주장으로 흐르지 않았을 텐데, 무리한 판결 하나로 '재상고 전쟁'이 촉발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서울고법 부장은 2015년 10월에도 군사기밀보호법 사건에서 잠수함 기밀 해외 유출범을 집행유예로 처리해 주기도 해 언론 관심을 모았었다. 이 부장판사의 법조 인생 전반을 산업 스파이들에게는 집행유예로 관대, 재벌에게는 실형 엄단이라는 한줄로 요약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산업 스파이의 범죄 행각만도 못한 게 기업 수뇌부의 경영상 판단이라는 식으로 이상한 경제 관련 법리 해석주의를 우리 중견 법관들이 한다는 오해가 일반인들로부터 제기되는 것은 분명 건강한 상황은 아니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우리 입법자들이 기업을 소유하고 경영하는 이들에게는 가혹하고, 이들의 노고를 보호해 주는 기업체 지적재산의 방어 방패는 지나치게 약하게 짜는 식으로 우리 경제-기업 관련 법리들을 해석할 자유는 누구에게도 없다는 소박한 요청에 뿌리박은 불만이 경제계 일반에서 나온다는 뜻이다.

아울러 또다른 표현으로는 이런 전체적 맥락에서 상식에서 어긋난 경제경영 관련 판결들이 나오지 않도록 개별적 법률을 손질하고 법원의 과도한 자의적 해석 여지를 줄여야 한다는 주문도 된다.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도 않으면서, 일방적으로 기업과 경영자들에게 경제 난국을 헤쳐 나가면서 국민 전반에 이익을 갖다 달라는 주문만 하는 몰염치를 행할 권한은 사법부는 물론 입법부에도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