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혜현 기자 기자 2015.12.31 12:32:40
[프라임경제] 지금과 달리 오래 전 4·3사건 이후만 해도 제주도 중산간마을은 가난의 상징이었다. 제주도는 화산암반석 토질이라 비가 많이 와도 물이 빨리 스며들어 해안지역을 제외한 중산간마을은 물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해안에서 한라산쪽으로 들어갈수록 거친 땅에 고단한 생활 환경으로 형편이 어려워지는데, 이연봉 변호사는 제주도 조천에서도 바닷가쪽이 아닌 와흘이라는 중산간마을에서 태어났다.
이 변호사 이같이 척박한 중산간마을의 발전을 이루겠다며 고향 제주을 지역구에 출마를 선언하고 예비후보 활동을 시작했다.
1975년 제주제일고를 졸업한 이 변호사는 대학 진학을 위해 상경, 고려대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부친이 일찍 세상을 떠나 홀어머니가 어렵사리 뒷바라지를 했다. 어려운 형편 때문에 그는 잠시 무상으로 의식주를 제공하는 군대를 도피처(?)로 삼기도 했다. 포항에서 병장 만기제대로 군복무를 마친 인연으로 지금도 해병대전우회 제주특별자치도연합회장을 맡고 있다.
수도권에서 변호사 개업을 했지만 일찌감치 귀향을 결심했다. 이후 10년 넘게 제주 변호사로 살아오면서 무료법률상담과 각종 지역사회 활동을 꾸준히 해온 터라 기반도 탄탄하다.
뉴제주라이온스클럽 제3부회장 등 봉사에도 열심인 그의 이력 중 특이한 부분은 장애인 문제 등 복지에 오랜 기간 적잖은 관심을 갖고 활동을 했온 점이다. 1984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후 변호사 생활이 몸에 익을 무렵부터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이사(1990~1997년)로 활동했다.
보통 사회적 인지도에 관심있는 변호사들이 고문이나 이사 등 자리에 이름만 올려놓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지인의 소개로 이 단체 활동을 하게 된 이 변호사는 낙향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장애인 등 복지 문제에 관심을 갖고 활동했다. 사단법인 제주특별자치도장애인총연합회 법률자문위원과 사회복지법인 춘강 이사 등으로도 선임돼 활동하고 있다.
2008년 제18대 총선 무렵부터 정치에 뜻을 두고 출마를 하고자 했으나 당내 공천 과정에서 탈락, 이에 승복해 불출마했다. 이에 19대 총선에는 반드시 나설 것으로 점쳐졌으나, 이 변호사는 가정사로 고심 끝에 선거 운동을 할 시기가 아니라고 판단해 뜻을 접었다.
후에 세상을 떠난 부인은 교사 출신으로, 고시 공부를 하던 때 만나 어려운 와중에도 그를 믿고 뒷바라지를 해 준 조력자였다. 19대 총선 즈음 투병 중이었던 부인을 위해 정치와 거리를 뒀던 것. 1년여의 항암 치료 기간 내내 부인의 병수발과 몸조리를 도운 로맨티스트라는 점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지난 여름 새누리당 제주도당위원장에 선출된 그는 청년표 흡수에 새누리당 제주도당의 미래가 걸려 있다고 믿는다. 위원장 임기 시작 제일성으로 '진정한 보수는 약자보호와 남녀평등, 인권 신장과 환경보호 등 시대의 보편적인 이념을 지닌 자'라고 규정했다. 그의 모토 역시 '클린정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