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기자수첩] 최태원의 결자해지 "불륜이냐, 로맨스냐"

이보배 기자 기자  2015.12.29 16:29:09

기사프린트

[프라임경제] 네이트판 고민 상담글을 읽는 줄 알았다. 난데없이 혼외자와 내연녀의 존재를 고백한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편지를 두고 하는 말이다.

최 회장은 한 언론사에 보낸 편지를 통해 부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의 별거와 이혼, 6년을 만난 40대 내연녀 김모씨와 혼외자의 존재까지 밝혔다.

"노 관장과 부부로 연을 이어갈 수는 없어도, 좋은 동료로 남아 응원해 주고 싶었습니다. 과거 결혼생활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는 점에 서로 공감하고 이혼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이어가던 중에 우연히 마음의 위로가 되는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분과 함께하는 삶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 가정상황이 어떠했건, 그러한 제 꿈은 절차상으로도, 도의적으로도 옳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가정을 꾸리기 전에 먼저 혼인관계를 분명하게 마무리하는 것이 순서임은 어떤 말로도 변명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구구절절 문장도 유려하다. 그래도 불륜은 불륜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차분한 톤으로 쓴 편지에 네티즌 역시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대기업 회장의 내연녀와 혼외자 소식은 그 자체만으로 사회적 해악이고, 최 회장 스스로 선택한 결자해지에 SK에 대한 신뢰가 사라졌다는 의견과 함께 가정의 위기 극복도 못하면서 회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라는 지적도 눈에 띈다.

심지어 간통죄 폐지로 인한 불륜 로맨스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최 회장은 편지를 통해 노 관장과 오래 전부터 별거를 해왔고, 서로 이혼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하던 중 '마음의 위로가 되는 한 사람'을 만났다고 고백했다.

마치 노 관장과의 이혼은 오래 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고, 서로 마음의 정리가 됐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은 불륜이 아니라 새로운 사랑의 시작이라고 인정받고 싶은 듯 하다.

새로운 가정을 지키기 위해 본처와 이혼하고 사실상 자식을 져버리는 일이 '더 어린 자식'을 책임지는 것으로 포장되고 있는 형국이다.

일각에서는 "기업인이 아닌 자연인 최태원으로서"라는 표현과 "진실을 덮으면 저 자신은 안전할지도 모르지만, 한쪽은 숨어 지내야 하고, 다른 한쪽은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살아야 합니다"라는 구절에 감정 이입을 한 나머지 대기업 총수가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공개하고 용서를 구한 점에 대해 용기 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런데 바꿔 생각해보자. 최 회장이 대기업 총수가 아니라 '자연인 = 일반인'이었다면 자신의 내연녀와 혼외자 소식을 언론사에 장문의 편지를 써가며 공개할 필요가 없다. 누가 일반인의 시시콜콜 불륜 스토리를 궁금해 하겠나.

또 한쪽은 숨어 지내야 하고, 다른 한쪽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살아야 하는 상황을 만든 것도 최 회장이다. 개인적인 사정이 어쨌든 최소한 국민적 동의를 구하려면 '선이혼 후재혼'이 최선이다. 

이미 그룹 내에서는 노소영 관장은 '노 관장님'으로, 김씨는 '한남동 사모님'으로 불렀다고 하니 최 회장의 심장이 어느 쪽을 향했든 제3자의 눈에는 '두집 살림'일 뿐이다.  

게다가 최 회장의 편지가 공개된 날 노 관장은 다른 매체를 통해 "이혼하지 않겠다"는 심경을 밝힌 것은 물론 혼외자식을 직접 키울 생각까지 하고 있다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오래 전에 깨진 결혼생활"이라고 말했던 최 회장과 "모두 내 잘못"이라는 노 관장 두 사람의 실제 부부생활이 어쨌든 개인사는 개인사일때 보호받을 수 있다.

최 회장의 갑작스런 '셀프폭로'가 SK그룹의 이미지 실추와 30년을 함께 산 부인과의 소송전으로 번지지 않을까 우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