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우리보다 오랜 근대적 기업 역사를 가진 해외 기업들은 노하우를 통해 잘못된 기업 역사를 빨리 단절해야 한다는 점을 확실히 인식하고 있다.
1972년 10월 스탠다드오일은 뉴욕에서 주주총회를 열고 엑손으로 사명 변경을 의결했다. 록펠러는 석유업을 쥐락펴락해 악명이 높았는데, 그의 회사가 바로 스탠다드오일이었다. 이에 미국 내 여론이 들끓었고 결국 반독과점법 논리로 1911년 스탠다드오일을 34개의 경합기업에 분할하도록 미 연방대법원 결정이 내려졌다. 사실상 전성기 당시보다는 위세가 줄었으나, 최고의 명칭을 포기하는 데 미련이 남아 오래도록 이를 사용했던 것.
새삼 이런 기업명 사용의 역사를 포기하고 새로운 이름 엑손으로 바꾸기로 한 것은 1911년 분할 처리 이후 각 지역에서 단일상품명 판매 구축 등에 애로 사항이 생겼기 때문이라는 '현실적 이유'가 우선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미 상표 변경 전에 이뤄진 테스트에서 나타난 미국인들의 저변 심리는 시사점이 크다. 스탠다드에서 쓰던 기존 상표명 대신, 엑손 이름을 붙인 기름을 팔아본 결과 소비자들이 크게 호응, 판매고 급성장이 일어났다는 것. 위에서 언급한 여러 반독점기업 처리 역사의 흔적 때문에 주에 따라 다른 상표로 기름을 파는 것에 대해, 기업체는 단순히 통합 브랜드 관리에서도 마이너스라고 봤지만, 소비자들은 여기서 스탠다드오일의 부정적 역사를 계속 연상했다는 것이다. 즉 '쓰긴 쓰지만 좋지 않은 문제를 같이 떠올리게 하는 브랜드'라는 소비자 반응이 이때 비로소 스탠다드오일 수뇌부에 파악된 것. 이에 과거를 털고 새 상표, 더 나아가 새 기업명을 택하자는 전격적 조치를 밀어붙이자는 결단이 이뤄질 수 있었다.
오욕의 역사를 털고 개명한 사례는 한국에도 존재한다. 과거 조선맥주는 동양맥주에 밀려 만년 찬밥 기업 신세였다. 어디서나 동양의 OB맥주를 찾는 수요만 많았던 것. 다른 시장 참여자의 등장을 방지하기 위해 동양 측에서 의도적으로 내 주는 작은 점유율만으로 연명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크라운맥주만으로는 안 된다는 절박함으로 '천연암반수' 이미지를 내세운 하이트를 출시했고, 이로써 부동의 1위를 밀어내는 기염을 토했다. 이에 아예 사명까지 효자 상품명을 따 하이트맥주로 개칭했다. 물론 이후 하이트의 천연암반수 광고는 과장된 것으로 당국의 시정 조치 대상이 됐다. 천연암반수가 광고 이미지처럼 지층을 뚫고 솟구치지는 않는다는 것. 하지만 이미 이미지 굳히기는 끝난 상황이었고, 하이트맥주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몸집으로 이후 경쟁 메이커와 호각지세의 샅바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갑질논란으로 여론의 지탄을 받고 있는 몽고식품의 이름 뿌리가 새삼 관심을 모으고 있다. 몽고식품은 동생 기업인 몽고장유와 상표권 분쟁으로 법원에 드나는 경험에 이어 이번에는 불매 운동 조짐까지 일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이들은 옛 마산시 소재 몽고정 근처에 위치해 '몽고'라는 이름을 사용했지만, 1988년 당시 창원시에 대규모 공장을 마련, 이후 여기서 지하수를 이용해 간장을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몽고정과의 인연을 굳이 따지겠다는 것은 이미지 전략 외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지적이다. 마치 하이트맥주가 의도적으로 돌 틈 사이로 용솟음치는 이미지를 사용한 것과 다를 바 없는 상징 조작이라는 것.
갑질논란에 몽고정이라는 이름 자체도 일제시대에 일본인이 몽고 침략의 흔적을 강조하기 위해 붙인 이름이라는 사실이 부각되고 있다. 이 때문에 몽고정은 광복 후 종종 개칭 필요성이 제기돼온 것으로 전해진다.
과거 몽고식품은 일제시대 일본인이 세운 기업이며 일본 패망으로 떠날 때 남기고 간 것(적산기업)을 한국인이 불하받은 것이다. 몽고식품은 당시 일본 사장의 이름을 딴 사명을 회사 인근 몽고정을 따 바꿨다는 것인데, 이는 식민 잔재를 또다른 식민 잔재로 덮은 꼴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오너 일가의 갑질논란으로 재조명된 몽고간장의 역사와 뿌리가 사명 교체를 요구하는 여론에 맞닥뜨린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