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혜현 기자 기자 2015.12.27 13:27:27
[프라임경제] 안철수 의원이 독자적 정치세력화의 출발선에 서면서 공정성장, 더 촘촘한 복지를 키워드로 내세웠다. 이를 위해서 증세가 필요하다면 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꺼냈다. 이 같은 27일 안철수식 담론에 대해 기성 정치권에 대한 강렬한 비판과 대안 제시라는 의견이 대두된다. 또 이러한 의견은 증세와 복지 등 여러 함수 구성 요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가운데(혹은 의도된 거짓말로) 정권을 잡았다는 식으로 현재 청와대를 향하고 있는 비판 여론을 우군으로 삼는 효과를 당분간 거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안 의원은 창조경제에 대한 비판을 극명하고 신랄하게 내놨다. 회견 내용 내내 '박근혜 정치' 및 그의 요체인 창조경제론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식 창조경제는 전혀 창조적이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식 처방은 안 통한다. 새누리당식 낙수이론, 관치경제로는 21세기 경제의 활력과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없다. 시작이 잘못되었으니 결과도 뻔하고, 국민은 더 이상 경제의 활력을 기대하지 않는다"고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대기업 주도 신자유주의 시장경제론, 관치 경제를 구사해 위기를 극복하자는 제3공화국 스타일의 경제담론(변형된 케인지안 시각) 모두를 지양하자고 외치며 나선 그의 수중엔 중소기업 육성과 사회적경제 활성화 구상 정도 외엔 눈에 띄는 카드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확실히 손에 잡힐 듯한 구체적 아이템들이 사실상 없는 게 아니냐는 걱정은 특히나 목전에 다가온 2016년에도 글로벌 경제가 불확실성 상승 등 어려운 국면을 통과할 것이라는 예상 앞에 더 증폭된다.
공정성이라는 방패만으로 거센 파고를 감당하기에는 신생 정당에게는 노련함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유권자들이 받는 순간, 4월 총선을 계기로 다시 기성 정치인, 기존 정당들에게 표심이 이동할 것이라는 얘기다.
안철수 신당의 운명이 일엽편주가 될지 여부는 순전히 그가 정당 본격 출범 늦게는 총선 직전까지라도 빠른 콘텐츠 확충을 통해 이런 일말의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는 주문에 성적을 얼마나 따내느냐로 바꿔 부를 수도 있다.
이런 가운데 창조경제는 허구라는 비판을 받은 청와대 혹은 여당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안철수 바람이 강하든,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나든 청와대로서는 나쁠 게 별반 없다는 해석은 일명 정치적 올바름 논쟁과는 별개로 유효할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안 의원의 외침이 메아리 없는 광야의 독백이 되는 것보다 이쪽이 더 유익할 여지도 없지 않다.
우선 안 의원의 바람몰이가 강할 수록, 청와대는 친박 키우기 의욕을 더 강하게 느낄 수 있다. 김무성 체제라는 현재 새누리당 시스템은 결국 친박 정치인들과 같이 갈 수 없다는 풀이가 꾸준히 대두되고 있는데, 안 의원식 기성 정치권 때리기가 계속될 수록 일명 2여, 2야 구도로 총선을 치르고 싶다는 유혹을 강하게 받을 수 있다는 것.
현재 안 의원의 새정치민주연합 탈당으로 새누리당 지지층 중 중도파 일부 이탈 현상이 있다고는 하나, 이는 자신의 공천 문제 또 지역구 수성에 목을 맨 개별 의원들에겐 큰 문제겠으나 새누리당의 전체적 구도를 뒤흔들고 모든 걸 새로 쓸 정도의 힘으로 단기간에 결집되기는 쉽지 않다. 결국 콘크리트 지지층을 가진 친박과는 별개의 문제이자 극복할 수 있는 일시적 현상으로 일각에서는 본다.
그렇잖아도 경제 활성화 관련 법안 처리에 지리멸렬한 국회에 청와대는 여러 번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여기에는 정적인 새정연 등은 물론이고, 이전투구를 마다하지 않고 뛰어야 할 하지만 그렇지 않은 여당에 대한 불만도 잠재돼 있다.
결국 (거대한) 2야 체제로 총선을 치르게 된 상황에서 이미 일찍부터 대두돼 온 친박 감별론이 여당분당 촉매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 이는 청와대가 총선 승리를 통한 집권 후반기 안정 운영으로 가닥을 잡을지, 혹은 다음 대선 이후까지 친박 정치적 DNA의 득세 혹은 적어도 정치적 보복이 없는 확실한 기반 구성으로 마음이 기울지에 좌우될 전망이다.
결국 청와대 의중에 따른 것이지 친박 대 비박간 협상력과 타협 여부에 좌우될 것은 이미 아닌 것으로 보인다. 안 의원 돌풍이 강할 수록 '진실한 사람들'과 따로 총선을 치러내고 싶은 유혹은 더 강해질 수 있다.
안 의원의 목소리가 커질 수록, 남은 새정연은 진보적 색채 강조로 방향을 잡을 공산이 커진다. 토니 블레어가 '제3의 길'로 일명 '신노동당'을 만들며 득세했으나 이라크전 피로감과 측근 대출 의혹 등으로 사임한 이후 노동당에서 계속 좌클릭을 한 것과 흡사한 구도가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보수당이 다시 집권한 가운데 좌클릭을 한 노동당이 총선에서 이기지 못했다는 데 있다. 2015년 6월 영국 총선에서는 노동당이 대참패로 표현될 정도로 짠 성적표를 받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9월 노동당은 더 급진적인 새 당수(제러미 코빈)을 선출하는 좌클릭 지속으로 방향을 이어갔다.
새정연도 안철수와의 차별화를 위해 이런 길을 간다면 결국 총선은 경제 문제에 대한 충돌 더 나아가서는 창조경제에 대한 전쟁으로 치러질 공산이 그만큼 커진다.
이런 상황은 결국 근래 이어져 온 교과서 전쟁 등 정치적 도덕 논란 결과를 함께 겹쳐 보면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 가능성이 있다. 청와대의 교과서 논쟁은 서로간에 많은 상처를 입혔다. 이런 가운데 다시 경제 문제로 전선이 넓어지면 청와대로서는 크게 불만스럽지 않은 상황이 전개되는 셈이다.
경제의 위기 문제는 이미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 이후 반복돼 온 수렁 같은 문제다. 무한정한 발권력을 갖춘 기축통화국(미국 같은)이 아니고서야 이런 위기에서 좀처럼 많은 카드를 사용하고 구사하기 어렵다.
창조경제가 실체 없는 레토릭에 불과하다는 비판에 직면한 것도 사실이지만, 이렇게 경제 전쟁으로 총선이 치러지는 와중에 무능한 진보 논란이 불거질 여지를 다름아닌 안 의원이 만든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그의 이번 회견 상황으로도 불명확하다는 비판을 받아온 안철수식 정치 어젠다가 명쾌해지는 효과는 당장은 발생하지 못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오직 창조경제를 비판하기 위한 비판론이라는 지적은 청와대가 그간 내내 각을 세워온 문재인 체제에게도 똑같이 가해질 비판이다.
이 와중에 경제 관련 법안들을 제대로 밀어주지 않는 국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득세한다면, 더 나아가 장기적으로는 이번 개각으로 등장할 새 내각이 경제 난국을 헤쳐갈 의미있는 징검다리 디딤돌을 놓는 모습이 국민들의 눈에 비쳐진다면 짧게는 총선, 더 길게는 다음 수권 경쟁에서 범야권이 입을 내상은 더 커진다.
안철수 신당이 자칫 도덕적 정당성 전쟁과 경제 운영 양측면에서 강한 자기 확신을 갖고 임하고 있는 청와대에 맞수가 되기는 커녕, 어느 모로 보나 완벽하고 도덕적이고 유능하기까지한 이미지를 덧입혀 주는 X맨 같은 존재가 될 가능성은 이 지점에서 불거진다.
콘텐츠를 풍부하고 구체적이면서도 차별화되게 빨리 내놓는 각론 교재 집필의 의무가 안 의원에게는 그래서 급한 숙제로 해석된다. 이것이 빠진 상황에서는 이번 기자회견은 의미없는 총론 교과서로 조만간 절판 운명으로 치달을 것이라는 예상마저도 해 볼 수 있다는 것인데 4월 총선까지의 시간표는 지나치게 빠듯하다는 것이다.
안 의원의 정치적 실험이 자칫 '일모도원'하지는 않으려면 '안철수식 새정치'에 기대를 거는 유권자층의 팬심을 결속하고 확장시켜 나갈 묘수 등장이 그래서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