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혜현 기자 기자 2015.12.27 13:17:50
[프라임경제] 새정치민주연합을 떠나 새로운 정치 실험을 모색 중인 안철수 의원이 새정치 기조에 대한 27일 기자회견을 열어 향후 정치 방향에 대한 윤곽을 제시했다. 이에 따르면 안철수식 새정치는 공정성장 등 기존의 정치권이 추진하지 못했던 과제를 지향하는 새 모델이다. 하지만 이런 좋은 그림에도 불구하고 콘텐츠를 채워야 진정한 도약이 가능할 것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총론은 좋은데, 여전히 각론에 약한 안 의원 특유의 정치색에서 벗어나는 데에는 완전한 성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매번 상황에 직면해 좌고우면 뜸을 들이는 일명 '간철수 정치'의 혼선을 극복하려는 의식을 분명히 한 만큼, 이제 다가올 총선에 대비해 의미있는 한걸음을 내디딘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어느 쪽에서 보든, 4월로 바짝 다가온 20대 국회의원 선거에 대비하려면 이번 뼈대에 빠른 근육 붙이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삭줍기 포기하거나 참신한 인재 영입 보여줘야 '양치기 소년' 논란 피할 듯
27일 그는 회견에서 "어제도 참았고, 오늘도 참고 있지만, 내일도 참을 수는 없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더 좋은 나라를 물려줘야 한다. 그래야 희망이 생긴다"면서 "부서지고, 깨지더라도 반드시 새로운 정치, 다른 정치, 바른 정치로 보답할 것"이라고 비장한 출사표를 내놨다.
안 의원은 새로운 정당의 기조와 관련 "낡은 진보와 수구 보수 대신 '합리적 개혁노선'을 정치의 중심으로 세울 것"이라면서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답을 찾아야 한다. 문제를 만드는 정치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가 새로운 정치"라고 주장했다.
이어 "낡은 정치를 끝내고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기득권 정치세력 그들만의 독점적 정치공간이 아니라 국민이 참여하고 국민이 주인 되는 새로운 정치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구상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 같은 그의 구상은 앞으로 상당한 진통과 의문을 낳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안 의원은 "새정치는 새로운 사람들이 시작할 수 있다. 정치가 바뀌려면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고 전제하고 "대한민국 최고의 인재들이 정치와 국정의 새로운 중심이 되어야 한다. 30, 40대 우리 사회의 허리가 정치의 소비자만이 아니라 생산자가 되어야 하고, 주체가 되고,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런 분들이 국회에 들어가서 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간 경과를 보면 그의 주요 정치적 자산은 새정연 탈당파가 주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문재인 체제'와 '친노 패권'에 반발하는 이른바 비노파 탈당 러시가 일어나 그에게 향할 것으로 관측되며 일각에서는 이미 호남에서 상당한 지지층을 얻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와중에서 검증과 재신임 없이 당적만 갈아타는 정치인이나 우리 정치의 병폐 중 하나인 '호남 지역정치'의 '안철수 신당'으로의 유입이 이뤄질 수 있다.
자칫 이런 '수혈 사고'가 나는 것을 거르지 못하거나 애써 눈을 감는다면 새로운 정치 후보군을 끌어들이는 발굴 작업이 불가능해지고, 이는 유권자의 냉소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공정성장 논의? 반신반의 그러나 멋진 디자인
한편 공감과 합의의 정치를 내세운 그가 당분간 총선 준비 국면에서 새누리당은 물론 새정연과 각을 세워야 한다는 점도 관전 요소다. 우선은 일정 지분을 확보한 다음에야 실현이 가능한 공감, 합의 등을 이번에 발표 키워드로 내세웠는데 힘 없는 가운데 거대담론을 일찍 꺼내면 철저한 외면을 받거나 과대망상 환자로까지 비난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으로 보인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외교 구상으로 동북아 균형자론을 제시했으나 그 이론적인 정당성과는 별개로, 실상 국내외적으로 큰 의미있는 족적을 남기거나 이를 실현하지는 못했다는 지적을 받는 것과 유사한 구도다.
안 의원은 "공감과 소통, 참여와 개방, 연대와 협치가 이 시대 정치의 중심 가치가 되어야 한다. 여야 간의 이념적, 정략적 대결을 끝내고 국민의 삶의 문제를 가장 우선으로 대화하고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회견에서 바로 그는 여러 정치적 동반자들에 대해 "여당은 졸속으로 안을 내놓고 밀어붙이려고 하고, 야당은 반대하는 대립" 등의 인식을 드러냈다. 이런 정치만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그의 발언은 기성 정치인들에 대한 시원한 질타일 수는 있을 망정, 그 자신 국회에 등원해 여태 뭐를 했으며 새정연에서 비중있는 무언가를 왜 그간 내놓지 못했는지 반문을 살 수도 있다.
아울러 이는 이런 문제적 정치권과 어떤 협력을 해 나갈지에 대해 빨리 무언가를 보여줘야 하는 숙제를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자충수를 둔 셈이기도 하다. 책임있는 새 답안이나 풀이 과정을 내놓지 못하면 새로운 정치를 외치며 정치 시장에 뛰어들어 매번 명멸해 온 많은 선량들과 다를 바 없다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결국 그의 이번 제스처는 화합을 강조하기 보다는 신상품을 들고 나온 측의 마켓셰어 확보 전략 즉 노이즈 마케팅으로 시장에 들어가기로 볼 여지도 없지 않다.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과 실망표 결속에는 일단 유효할 것으로 볼 수도 있으나, 그런 '안철수 효과'를 보기에는 이미 약효가 다 했다는 냉소적 의견도 대두될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경제다.
그는 이번 회견에서 "정부 주도의 산업 정책에 목을 매는 경제는 이제 넘어서야 한다"면서 "'공정성장'을 경제정책의 제일 기조로 삼아야 한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그런데 "몇몇 재벌에 의존해서는 재벌만 행복하고 국민 다수는 불행한 구조를 바꿀 수 없다"는 그의 인식은 약육강식의 수직적 경제 질서에서 벗어나자는 상당히 멋진 구상으로 들리지만 이행 대책이 쉽지 않아 보인다는 맹점이 우려된다.
중소기업 살리기 등 쉽지 않은 과제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대기업 주도 경제관, 정부 견인 경제 모델 등 기존에 사용되거나 신봉자들을 많이 거느려 온 시각들은 정책 방향에서 배제할 것임을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는데, 든든한 우군 없는 경제 논리가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적합할지 논란이 일 여지가 있다. 2016년 경제 전망이 암울한 만큼, '그래서 안철수식 경제관의 내용이 뭔가?'라는 반발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안 의원은 "사회적경제의 육성도 매우 중요하다. 자유시장경제만으로는 충분한 일자리를 제공할 수 없다. 외국에는 이미 성공적인 모델을 보여주는 많은 사례들이 있다.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등 사회적경제와 자원봉사 등이 연계된 비영리조직을 활성화시키고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지속적으로 늘려가야 한다"고 말했다.
의도는 좋으나 근래 사회적경제 기본법이 논의되다 공회전으로 들어간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의미있는 총선 승리 성적표를 받아들여야 이 구상의 추진이 가능해 보인다.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공정성장의 질서를 만드는 것은 격차해소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라는 안 의원의 구상은 5포세대, 수저론 등으로 지친 젊은이들에게 어필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복지체계도 더 촘촘해져야 한다고 그는 설파했다. 한미동맹의 기반을 튼튼히 하면서, 남북관계를 주도적으로 풀어가야 한다는 이야기는 결국 과격한 남북관계 변동을 지양하고 속도조절을 통한 전개를 모색하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결국 새로운 비전 제시보다는 현재 구도 답습으로 이어질 여지가 있다. 한편, 한미동맹의 기반 위에 글로벌 외교를 펼친다는 계획 역시 새누리당의 현재 기조에서 크게 차별화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결국 박근혜식 창조경제 등 청와대 등 집권 여당 현재 성적표에 대한 비판은 많으나, 총론 자체에 이미 차별화 여지가 충분하지 않다는 비판을 막기 어려운 감이 있다는 것이다. 여의도 정치에 대한 불만이 높은 와중에서 신선한 대안을 바라는 표심이 일시에 몰릴 만한 구심력은 갖췄다는 점이 이번 회견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신당 창당까지 필요한 베이스 캠프 격인 셈이다. 필요한 시점에 이뤄졌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총선 대비 또 모든 정당이 바라는 수권을 위해서는 이번에 다소 미흡하다는 비판을 외면하지 말고 '안철수 철학'의 보완과 손질을 해 나가야 할 필요 또한 극명히 드러낸 것도 사실이다. 결국 빠른 시간 내 다시 모습을 드러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주문이 빗발칠 것으로 보인다. 막상 각론에서 어떤 차별점을 보일지가 총선 성적표의 관건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