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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심이 빚은 터파기 참사…관계자 실형·법인 벌금 양벌이 답?

'공사장 안전 불감증 어떡하나' 녹번동 다세대 붕괴 우려에 불구속 관행 도마에

임혜현 기자 기자  2015.12.26 13:5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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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서울 녹번동에 있는 다세대 주택 8채에서 균열이 발생하고 이중 1채는 붕괴 직전에 이른 상황 속에 새삼 공사 현장 안전 불감증이 눈길을 끌고 있다.

26일 오전 4시40분경 녹번동에서는 주택 균열로 16가구 30여주민이 급히 대피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소방당국과 은평구청은 인근 신축 공사장에서 가스 냄새가 났다는 주민의 신고와 공사장 터파기 공사로 파인 곳이 깊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터파기 공사로 인해 지반이 약해져 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원인을 조사 중이다. 이에 공사 당시 안전 조치가 제대로 진행됐는지 여부에 관심이 모아진다.

공사 관련 안전 침해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7월에는 경기도 수원의 하수도 정비공사 현장에서 통신선을 정비하던 50대 근로자가 토사에 매몰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피해자는 구조 후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졌다. 평소보다 더 깊게 파면서도 토사가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갖춰야 하는 '흙막이'를 설치하지 않아 발생한 안전사고였다. 때문에 당시 안전 불감증이 불러온 사고라는 비판이 일었다.

업무상 과실치사상 적용, 불구속 입건이 관례?

지난 8월에도 충청북도 청주에서 광역상수도관 매립 공사 중 3m 깊이의 터파기 공사 과정에서 안전 관리를 소홀히 해 흙더미가 무너져 내리면서 인명 사상 사고가 발생했다. 경찰조사 결과 흙이 무너질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음에도 별도의 안전관련 조치를 취하지 않은 데다 사고 당시 현장 감독까지 이뤄지지 않아 참사가 빚어진 것이다.

지난해 여름에도 부산 해운대 오피스텔 공사장에서 철골 구조물이 내려앉는 붕괴 사고가 일어났다. 당시 터파기 과정에서 지반이 약해진 것을 제대로 수습하지 않고 골조 올리기에 나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앞서 청주 사고의 경우 관련자들(공사업체 부장 K씨 등 3명)이 업무상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되는 등 사망 사건에도 불구속 상태로 처리 수순을 밟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굵직한 사건만 되돌아 보더라도 2010년 부산광역시 북구 롯데캐슬카이저 신축 공사장 매몰 문제의 원인도 안전 불감증이었으나, 경찰 수사와 검찰 송치 단계부터 솜방망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당시 부산 북부경찰서는 롯데건설 현장소장 C씨와 하청업체 관계자 등 6명을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구속된 상태로 재판을 시작하는 경우도 없지 않으나 불구속으로 일단 경찰 수사가 이뤄지고 검찰에서도 법리 검토를 하면서 수사가 종결, 재판에 회부되는 것이 일종의 관행처럼 굳어졌다. 때문에 이 같은 불구속이 가뜩이나 공기 맞추기 압박으로 '시간=돈'인 현장에서의 안전 불감증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건설업체 대표 실형·법인 벌금 엄벌 판결에 주목

하지만 굴착 현장에서 근로자가 토사에 매몰돼 숨진 사고에 법원이 엄벌에 나서는 예도 없지 않다. 

지난 5월 울산지방법원에서는 터파기 평탄작업 중 토사에 인부가 매몰돼 사망한 사건(산업안전보건법위반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에 대해 건설업체 대표에게 징역 6월, 해당 회사법인에 벌금 500만원을 각각 선고한 사례가 있다.

당시 재판부는 "굴착 현장은 지반 붕괴나 토석 낙하로 근로자가 매몰될 위험이 있다"면서 대표에게 안전보건책임자로서 흙막이와 방호망을 설치하는 등 위험방지 조치를 할 의무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안전조치 위반 정도, 피해자 유족과 합의되지 않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해 양형을 정했다"고 밝혔다.

이는 수사기관에서부터 확실히 주의 소홀이 입증된다면 법 적용을 엄벌 위주로 하고 법인(건설사)에도 벌금을 부과하는 양벌 처리를 할 수 있음을 시사한 판결이다. 

이 같은 공감대가 업계에도 형성됐다면 흙막이 설치 등 기초적인 안전 방호책을 무시해 인재를 일으키는 상황만큼은 미리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