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부산진갑은 부암동·당감동·양정동·초읍동·연지동·부전1동 등을 아우르는 선거구다. 오래 전부터 부산의 골간을 이뤄온 동네다. 그런 만큼 김영춘 전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 부산시당위원장이라는 직함으로 뛰기에는 쉽지 않다는 선입견이 먼저 들 수밖에 없다. 대구·경북(TK)만큼은 아니어도 영남은 대체로 여당 강세라는 상식이 널리 퍼져 있기 때문.
하지만 한때 박정희정부에 맞서는 정치인 김영삼의 '40대 기수론'의 든든한 지원군이 돼 주었을 정도로, 과거 부산은 야당세가 강한 도시였다. 민주투사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라는 자부심이 여전히 남아있는 곳이 구도심 지역이라고 가정한다면 김 전 의원의 선택은 사실 전혀 승산이 없거나 나쁜 것만은 아니다.
실제로 그는 서울에서의 정치적 자산을 모두 정리하고 부산행을 결행한 바 있다. 19대 총선 당시 부산진갑을 놓고 새누리 깃발을 든 나성린 당시 후보(당시 비례대표 국회의원, 현 지역구 국회의원)와 싸우는 길을 택했는데, 이는 18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잠시 주춤했던 정치 여정을 중간결산하는 반환점으로 '센 곳'에서 출사표를 던질 필요를 느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또 그 자신이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동고를 나온 '부산의 아들'이라는 자부심에서도 이런 결정을 한 것으로도 풀이된다.
19대 총선에서 지기는 했으나, 불과 3000여표 차라는 점에서 부산민심 동향 파악에 큰 도움이 됐다. 정치적 파워를 스스로 테스트해 본 의미도 있다. 그래서 6대 지방선거에서 부산시장 후보로도 나섰다.
서울 지역구(광진갑에서 16,17대 당선)에서 국회 등원을 했던 그는 16대에는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17대에는 열린우리당으로 활동한 전력을 갖고 있다. 바로 '독수리 5형제(김부겸·김영춘·안영근·이부영·이우재씨를 말함. 이들은 현역의원으로서 한나라당을 개혁하려 했으나 이후 당적을 바꿈)'의 일원이었기 때문이다. 당적을 옮긴 뒤에도 금배지를 가슴에 달아줬던 서울 지역구민들에게 김 전 의원은 여전히 마음의 빚이 있다.
이런 고마움과 미안함을 뒤로 하고 부산으로 정치적 거처를 옮긴 후 부산에서의 정치개혁을 고민하고 있는 그에게는 사실 탄탄한 하드웨어는 없는 상황이다. 여당인 새누리당의 막강한 후보와 경쟁을 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고, 친정인 새정치연합은 현재 '안철수 파동'과 '천정배 신당론' 등으로 지리멸렬한 상황이다.
그러나 김 전 의원에겐 의리있는 성격과 결단력, 전문성 등이 남아 있다. 이를 밑거름으로 김 전 의원은 부산 지역구민들에게 내년 총선에서의 지지를 호소하며 당선이 된다면 십분 자기 역량을 발휘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있다.
김 전 의원은 1987년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비서로 정치에 입문했다. 김 전 대통령이 생전에 그를 '셋째 아들'이라 부른 것으로 알려질 정도로 아낌없는 지원 속에 한나라당 소속으로 첫 국회 등원을 했다. 이후 정치개혁을 명분 삼아 당적을 옮긴 뒤에도 김 전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을 따랐다고 전해진다.
2001년에는 이른바 감청 문제를 놓고 당시 정보통신부를 질타했다. 감청 대장(장부, 즉 기록물) 공개를 놓고 각을 세운 것. 사실 감청은 수사 진행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이나 개인 자유 침해가 크고 수사기관으로서는 오남용의 유혹도 많이 받기 때문에, 이를 감시 및 규율할 필요가 높다. 통신비밀보호법을 근거로 한국통신과 SK텔레콤에 대한 대장 열람을 거부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김 전 의원은 당시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은 다른 법률 규정에 불구하고 (출석·감정에) 응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통신 감청 감시 문제에 대해 날을 세웠다.
이후 2003년에는 통신설비제조업체와 기간통신사업자 간, 즉 통신시장의 수직적 기업결합도 규제하도록 전기통신사업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견해를 공공연하게 드러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아울러 그는 기간통신사업자의 국적 보장을 적극 주장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기간통신사업자 주식을 보유한 법인 중 외국인 지분이 15%가 넘어서면 해당법인을 외국인으로 간주하던 2003년경, 김 전 의원은 아예 외국인이 실제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다면 지분 비율에 관계없이 해당법인을 외국인으로 즉각 분류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김 전 의원은 17대 대선을 앞두고 문국현씨 지지로 선회한 뒤 18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기도 했다. 이후 계속된 선거에서 고배를 마셨다. 잇단 낙선 뒤에는 자전거·도보여행에 나서기도 했다.
김 전 의원의 아들은 현재 그의 모교인 부산동고에 재학 중이다. 부산 부암동 골목 상인이었던 부친을 이어 3대가 부산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