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기자수첩] '혼용무도' 그 자체 '표지갈이' 교수 단상

김수경 기자 기자  2015.12.21 22:26:45

기사프린트

[프라임경제] 교수신문이 지난 8일부터 14일까지 교수 88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59.2%인 524명이 올해 상징 사자성어로 '혼용무도(昏庸無道)'를 택했다고 밝혔다. '세상이 어지러워 도리가 제대로 행해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지도자에게 그 책임을 묻는 말이다.

이승환 고려대학교 교수는 사자성어 선정 이유에 대해 "연초 메르스 사태로 나라 민심이 흉흉했으나 정부가 이를 통제하지 못했다"며 "중반에는 여당 원내대표에 대한 청와대의 사퇴압력으로 삼권분립과 의회주의 원칙이 크게 훼손됐고, 후반기에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으로 국력 낭비가 초래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사자성어는 올해 정부가 보여줬던 무능함을 잘 꼬집었다며 SNS에 많은 공감 글이 올라오는 등 엄청난 화제가 됐다. 

그러나 한 해 상징 사자성어 선정을 위해 전국 교수들에게 설문하는 과정에서 올해 대학 큰 쟁점이었던 전공 서적 '표지갈이' 관련 자성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아 아쉽기만 하다.

지난 15일 남의 서적 표지만 바꾸는 '표지갈이'를 통해 자신 이름으로 책을 출간한 교수 179명이 검찰에 적발되면서 서울 유명 대학부터 국공립대학까지 전국 50여개 대학 소속 교수들이 사상 초유 무더기 퇴출당할 처지에 놓였다.  

표지갈이는 예전부터 교수와 출판계의 이해관계 안에서 성행한 수법으로 그동안 수사망에 걸려들지 않았을 뿐이다. 원저자는 추가 인세 수입을 위해, 허위 저자는 연구실적을 올리기 위해 출판사와 손잡고 표지갈이를 해온 것. 출판사는 비인기 전공서적 재고처리를 할 수 있었으니 서로 일조한 셈이다. 

이렇다 보니 올해 선정된 사자성어 '혼용무도'가 지도자임에도 재물에 눈이 멀어 학생을 돈벌이로 보는 교수들에게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도자의 그릇된 마음 때문에 뒤숭숭한 대학 사회가 연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표지갈이 교수 외에도 학생들을 상대로 한 몫 단단히 챙기려는 교수들도 대학에서 흔치 않게 볼 수 있다. 필자는 대학 학보사에 있던 시절 전공 책 관련 기사를 위해 각종 설문조사 및 인터뷰를 진행한 바 있다. 당시 학생들은 "수업을 듣기 위해 교수님이 쓴 전공책을 반강제로 샀지만, 좋은 책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며 "나중에 중고로 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 같은 불만은 대학, 전공을 가리지 않고 마찬가지였다.

실제 어떤 책은 오타가 난무해 수업시간마다 학생들의 지적이 끊이지 않았음에도 수정 하나 거치지 않은 채 다음 해 그대로 출고돼 신입생 품에 안기기도 했다. 그 이익은 출판사와 저자인 교수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부끄러운 우리 대학들의 현주소다.

표지갈이 교수들은 300만원 이상 벌금을 선고받으면 재임용될 수 없어 강단에 두 번 다시 못 서게 된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통해 표지갈이를 하거나 책팔이를 시도하는 수백, 아니 어쩌면 수천명이 될지 모르는 교수들을 완전히 뿌리 뽑을 수 있을까.

이제는 교수들 스스로 나서 근절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아무리 본질이 흐려졌다 한들, 학문과 진리를 탐구하는 '상아탑' 속 지도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이번 사태로 실망한 학생들이 다시 그들을 따르고 존경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