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혜현·이보배 기자 기자 2015.12.16 16:45:08
[프라임경제] 재벌의 행태에 견제 필요성이 높고 이에 따라 일명 경제 민주화 논의에 입각한 입법론이 대두되고 있다. 순환출자 금지론이 다시금 득세한 것이 그 징표라 하겠다. 그런 한편, 재벌이 한국적 필요의 산물이며 그 부작용이 심각하기는 하나 특정 가문에 의한 기업 지배의 형식은 우리나라에만 특이하게 발견되는 것은 아니고, 수장(오너 일가)의 기민한 결단에 의해 그룹 선단이 유기적으로 빠르게 움직여야 할 필요 역시 글로벌 경제침체 국면에서 요구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배임은 분명 대기업집단 한국식으로는 재벌의 부패를 막기 위한 소금이다. 하지만 배임죄(형법상 배임을 기본으로 상법상 특별배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등을 총칭)를 재벌 비리를 엄단하기 위한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데엔 부작용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음식의 부패를 막는 데 요긴한 소금도 과도하게 섭취하면 염독이 오를 수 있고, 지렁이에게 바로 소금을 뿌리면 몸부림치며 죽듯 적재적소에 적당량을 쓰지 않으면 오히려 재앙이 된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에 대한 파기환송심 판결이 나온 15일 오후, 해당 기업집단은 물론 재계 전반은 상당한 충격에 휩싸였다. CJ측 변호인단이 재상고 방침에 대해 사실상 당일 결정지은 것은 우선 CJ측이 느끼는 불안감에 따른 것으로 평가된다. 문화콘텐츠 전문 그룹으로 재도약해야 하는 시기에 오너 경영 부재로 사실상 족쇄를 차게 됐다는 절박함이 우선 가장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재상고라는 극약 처방을 택할 수밖에 없다는 변호사들의 고뇌에 찬 결단 원인이 있다. 원래 상고심에서 파기 환송을 하는 경우, 대체로 파기 환송심의 형량에 불만이 있어도 재상고를 통해 대법원에 다시 올라가지 않는 경우가 일반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상고심에서 당초 파기환송심으로 사건을 내려 보낼 때 바란 내심의 법리적 문제를 제대로 짚지 못했고 이로 인한 불이익이 너무 크다고 생각할 때엔 이런 카드를 쓸 수 있다. 사실상 대법원에서 애초 왜 이렇게 명확하게 자판(스스로 판결을 하고 3심에서 매듭짓는 것)하지 않았는지 따지는 모양이 되기 때문에 여간 리스크가 큰 게 아니다. 하지만 그런 부담을 안고라도 다시금 받을 만큼 막중한 논리 싸움이 있다는 자신이 있을 때 재상고를 하게 된다. 17년을 끈 중곡동 땅 사건이 그런 예다.
CJ 일본 계열사가 회장 개인 기업의 보증을 선 것이 배임인지 자체에 대해 '원점부터' 따져 달라고 사실상 '원포인트 결전'을 치르려 하는 데에는 배임죄가 추상적 위험범이기 때문에, 변제 능력이 충분한 경우엔 애초 배임 사안 성립이 안 된다는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물론 조세포탈 등은 성립하니 다른 신체구속적 처벌과 금전적 징벌은 받는 게 당연하지만 배임과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
이렇게 CJ측 변호인단이 강하게 나오는 것은 또한 더 이상 배임죄 오남용에 대한 법리 분쟁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를 등에 업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미 한화그룹 같은 경우에도 계열사 하나를 살리고자 다른 계열사들을 동원해 수혈을 한 사안에 대해 엄단을 하고, 특별사면 등 모든 혜택에서 배제해 오너의 손발을 여전히 묶어 놓고 있다. 배임으로 라테르가 붙으면 재벌을 백안시하는 여론 때문에 모든 게 제약을 받고 청와대마저도 어떻게 해 주기에 부담스러운 상황이 되는 마치 보호감호과도 같은 상태가 빚어지고 있다.
따라서 재계 그리고 법학계 일각에서는 배임을 아예 없애거나 무력화해 달라는 미국식 경영판단이론까지는 현실적으로 수용되기 어렵더라도, 상당한 정도로 배임죄 오남용을 막는 경제장치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배임죄 논쟁은 이번에 CJ 재상고 문제로 촉발됐지만 결국 한화 문제의 검토로 끝날 수밖에 없는 '종합선물세트'다. 첫째, 배임죄의 실체적 위험범 성격을 명확하게 하는 대법원 입장이 재차 천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근래 은행 지점장 배임죄 사건, 부동산 이중매매 배임죄 판례 변경 등 일부에서 목격되고 있는 대법원측 기류가, 재벌 징벌론과 이로 인한 배임죄 오남용에도 미쳐야 한다는 지적인 셈이다. 재벌이라 배려를 받아야 하고, 경제에 기여하는 바가 많으니 특혜라도 달라는 것은 바라지도 않으니, 다만 다른 배임죄 적용 기준이 바뀌는 이때 공평하게 함께 처리해 달라는 게 CJ 재상고론의 기틀이다.
둘째, 배임죄로 대기업집단의 특정 계열사 돕기와 그로 인한 다른 기업의 손실 발생 가능성 같은 사안에 너무 인색하게 판단하는 전통적 형사법 및 상사법 논리는 우리 기업 현실에 맞게 어느 정도 수정할 필요가 대두된다. 이를 위해서 여러 다른 여러 감시 시스템을 마련하면 된다는 것은 일본의 구 상법을 새 회사법 시스템이 대체한 것에서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나오는 것이 이른바 '기업 집단이익'의 주장이다. 프랑스에서는 로젠블룸 판례라고 해서 파기원(우리의 대법원)이 미국의 경영판단이론과 흡사한 결론을 짓기 위해 이 같은 대기업집단의 면책론을 세운 바 있다.
독일의 경우 이런 집단이익과 관련, 기본적으로 기업간 결합이나 여러 기업간 공동의 이익 추구라는 경제적 실체를 인정해 주면서도, 개별 기업(특히 종속 기업)이 공동이해관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기업들을 위해 일방적 손실을 강요당하지 않는 균형의 황금비를 찾고 있다.
계약상 콘체른이 아닌 사실상 콘체른(법적으로나 계약상 콘체른 공동체를 결성하지 않음에도 우리 나라처럼 정서적으로 이해관계 공동을 형성하는 경우가 독일에서도 없지 않으므로)의 경우도 만약 직면한 위험과 공동의 이익을 위해 일부 종속 회사가 희생적 조치를 단행하는 경우, 이 종속 기업의 경우 향후에 주주들에게 손실을 보상하겠다는 평가 계획 약속을 해야 한다. 이 경우 우리 같은 배임 비난 등을 면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일본의 경우 우리와 유사한 상법 체계로 회사 시스템을 규율해 왔으나, 회사법 부분을 따로 떼어내 새로 제정함으로써 회사 이사의 의무 위반과 배상 책임에 변화를 주었다.
즉 옛 상법 제266조 제1항상 법령위반행위를 이사의 배상 책임으로 정했지만, 이후에 회사법 시스템으로 이것이 배제되었다. 일본에서는 아직 이를 놓고 해석이 엇갈리지만 일원설에 따르면 회사는 법령 위반과 주의의무 위반을 모두 입증해야 하므로, 이사가 경영상 자유롭고 창의적인 판단을 할 때에는 무한정 추상적 책임을 지는 게 아니고, 구체적으로 법령을 위배하겠다는 식으로 고의가 없다면 면책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배임 논란 행위를 '어떤 경우든 반드시' 형사적으로 처단한다는 데 집착하지만 않는다면, 오히려 탄력적으로 경영상 판단을 하는 과정에 대해서 다양한 면죄부를 줄 수 있고, 다만 악질적인 행위 즉 손해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을 충분히 할 수 있고 자금을 동원해 이를 막을 여력도 없이 벌이는 문제는 배임 처벌과 손해배상 청구를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재벌 그룹에서 일부 계열사 이익을 희생시키는 고의적 행동은 필요에 따라서는 할 수 있게 하되, 나중에는 이에 대해 개별사 주주들에게 보상이 이뤄진다는 신뢰를 심어주게 하는 게 낫다는 쪽으로 선진국은 나아가고 있다. 이와 비교해 볼 때, 우리도 무조건 경영판단에 배임 잣대를 수시로 대는 시스템은 이제 지양할 필요가 요청된다는 것을 근래 일어난 많은 재벌 판례들은 반면교사로 알려준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