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아하!] "여전히 불리한 직장인 휴가권"

이윤형 기자 기자  2015.12.07 13:17:45

기사프린트

[프라임경제] 우리나라 직장인들이 1년 동안 쓰는 유급휴가 사용일수는 얼마나 될까요.

최근 온라인 여행사 익스피디아가 한국을 포함한 26개국 직장인 927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겨우 6일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조사 대상 국가 평균 20.2일의 3분의 1도 안 되는 최하위 수준인데요.

우리나라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법적으로 보장된 유급휴가를 기본적으로 15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조사결과만 봐도 보장된 휴가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마음 편히 사용할 수 있는 직장인은 드물어 보입니다.

익스피디아 조사 중 '휴가 사용에 대해 당신의 상사가 호의적인가'라는 질문에 한국 직장인의 답변은 '아니다'에 절반이 넘는 59.2%나 응답했습니다. 또한 '휴가 사용에 죄책감을 느낀다'고 답한 비율은 무려 66.8%였습니다.

눈여겨 볼 것은, 두 가지 질문 모두 '사실이 그렇다'가 아닌 '내 생각에는…'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인데요. 결국 휴가를 사용할 때 회사 또는 상사의 눈치를 본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죠.

이 같은 현상은 한국의 직장인 문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요. 초과근무를 해도 불평도 못하고 오히려 눈치를 보느라 스스로 늦은 시간까지 퇴근하지 않는다거나, 휴가임에도 출근해서 자리를 지키는 것이 한 예입니다.

이런 의식은 뿌리 깊은 유교문화에서 그 이유를 찾기도 합니다. 어른이 아직 퇴근을 하지 않았는데 아랫사람이 먼저 퇴근을 하면 버릇이 없다는 과도한 '경로효친' 사상이라든가, 근로자가 회사를 충성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해 스스로 더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어긋난 충성심, 회사 역시 이를 당연시 여기는 분위기가 그것입니다.

이유야 어찌됐든 초과근무, 추가적인 근로에는 합당한 대가가 충분히 주어진다면 전혀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주어진 휴가권은 물론 그에 대한 보상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는 회사에 일방적으로 유리하도록 돼 있는, 근로기준법에 숨겨진 꼼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통념상 사용하지 못한 연차에 대해서는 직원에게 회사가 보상하게 돼 있습니다. 그러나 보상을 해주는 회사도 있고, 그렇지 않은 회사도 있죠. 물론 그렇지 않은 곳이 대부분입니다.

왜 그럴까요. 근로기준법 제61조에 따라 '연차휴가사용촉진'을 시행하고 있다면 연차휴가 미사용수당을 지급할 의무가 없기 때문인데요. 연차휴가사용촉진은 근로자의 휴가 소멸이 되기 6개월 전 기준으로 사용하지 않은 휴가 일수를 알려주고 사용 시기를 정할 것을 서면으로 촉구하는 행위입니다.

근로자가 휴가를 자발적으로 사용하지 않을 경우, 회사가 연차 사용시기를 지정한다는 말인데요. 여기서 근로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휴가를 지정했음에도 사용하지 않았다면 미사용 연차수당은 소멸됩니다.

만일 회사가 연차휴가사용촉진을 하지 않았다면 사용하지 않은 연차에 대해 다음해부터 미사용연차수당 청구권이 발생합니다. 수당을 받을 권리가 생긴다는 뜻인데요. 청구권의 소멸시효는 3년이고, 회사에 요구하거나 소송 등을 통해 받을 수 있죠.

문제는 요구는 할 수 있겠지만, 회사가 모르쇠를 일관하며 지급하지 않을 경우 받아야 할 연차수당은 대부분 공중분해 되기 마련입니다. 소송을 통해 받을 순 있겠지만 재직 중인 근로자가 회사를 상대로 소송한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일부 회사에서는 해외출장 시 일부 날짜에 대해 연차를 사용하라고 강요하는 일도 더러 존재합니다. 하지만 원칙적으로 연차휴가는 근로자가 지정하는 시기에 사용해야 되기 때문에 이는 불법이죠. 또 해외출장 시 연차휴가를 사용하게 하는 것은 물론 경조사 휴가 등 약정휴가를 연차휴가에서 차감하는 것도 위법입니다.

그런데 이 또한 회사가 빠져나갈 구멍이 있습니다. 근로기준법에 단서조항이 있기 때문인데요. 이에 따르면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는 경우에는 회사가 연차 사용 시기를 변경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직장인들의 휴가권을 지키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습니다. 박홍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 6월 근로기준법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것인데요. 개정안은 연차 유급휴가의 사용을 촉진했음에도 근로자가 휴가를 사용하지 못한 경우 사용자가 이에 대해 보상하는 내용입니다.

물론 휴가권을 지키기 위한 법적·제도적 보완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에 앞서 인식변화를 통한 '자발적 휴가 사용'이 이뤄진다면 적어도 미사용 휴가에 대해 속을 썩이거나 회사를 상대로 한 소송을 상상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