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기자님, 창문 닫으세요~. 이제 공장 많아서 공기가 나쁩니다."
부산 근처 바다를 탐문하러 내려가는 차 안, 공기를 좀 바꾸려 창문을 내리자 지역 주민이 이런 주의를 준다. 온산공단 앞의 일이다.
운전자는 울산 인근에서 살았지만 아직 30대에 불과하다. 당연히 1983년 12월 주민들의 손해배상 소송으로 피해 보상금 지급 판결을 받았던 온산병 사태를 잘 몰라야 정상이다. 이제는 법조계나 법학계에서도 온산병 판결의 논리에 대해 '리딩 케이스'처럼 열심히 들여다 보지 않는다.
현대적 환경소송의 핵심 이론 가운데 하나가 '개연성 이론'이다. 인과관계 입증 책임은 원래 원고(피해자임을 주장하는 이)가 모두 입증해 내 법원을 설득해야 한다. 하지만 환경소송, 의료소송 등에서는 원고가 이를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고, 이에 따라 일부 논리 구조를 굽혀 주는 게 바로 개연성까지만 입증하면 된다는 논리다.
이제는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그래서 크게 언급되지 않고 몇줄로 정리하고 넘어가는 그 논리를 우리가 갖게 된 것, 선진국인 프랑스의 의료소송 체계보다 더 피해자에게 유리한 시스템을 선물받게 된 것은 이제는 잊혀졌지만 바로 그 온산병 때문이다. 권위주의 정부가 집권하던 시절, '수출기업'이라는 훈장 하나면 모든 게 면책되는 분위기던 그때, 온산사태를 돕던 이들은 많지 않았다.
연세대 환경공해연구소 등 일부가 묘한 입장으로 조금씩 도운 끝에 저런 값진 결과를 얻은 것은 기적에 가깝다. 다만, 사람들은 우리가 프랑스제보다 더 좋은 아이템을 갖고 있는 거의 유일한 이 사안과 그 배경을 그런 기적을 너무도 쉽고 당연하게 생각하고 또 잊는다.
하지만 법학계에서도 잊은 온산병을 인근 주민들은 절대로 까먹지 않고 대를 물려가며 이야기하는가 보다 싶었다. 이런 점은 울산 지역민들만이 아니다.
부산광역시 기장 주민들은 현재 해수 담수 프로젝트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주민들이 불안해 하는 것은 근처 바닷가에 원전 시설이 여럿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실 바닷물을 초고도 필터를 사용해 민물을 추출해 먹자는 것은 무리가 없는 구상이다. 이 영역에서 우리나라 기술력은 이제 가히 세계 선진국의 그것에 견줘도 밀리지 않는 수준이다. 또 여러 공신력 있는 기구에서 방사능 물질에 대한 안전성 확보를 확인해 줬다.
그럼에도 기장 사람들은 몸서리치며 이에 반발하고 있다. 이는 기술력에 대한 긍정과 확신만으로 얻을 수 없는 정서적 안정감을 도외시한 결과물이다. 몇년 전부터 공청회 등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인데 수돗물 공급용이 아니라면서 당시엔 외면하다 금년 11월 하순에야 마지못해 공청회 자리를 만들었다. 11월 초 주민 투표 요구 주민 의견이 대두됐으나 당국은 사실상 이를 묵살했다.
이런 행정처리를 보면서, 사람들은 일본보다 좋다는 행정절차법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 행정법 시스템에 안도감을 느끼는 게 아니라, 1980년대 초반의 온산병을 떠올린다.
당시 사람들이 아들에게, 딸에게 어떤 말을 했기에 당시에 철모를 아이였을 이들이 지금 30대가 되어서도 온산 주변에서 창문도 안 열까? 이 문제를 한번 생각해 보면, 기장 사람들이 왜 저러는지, 부산 시내에 앉아서 일하는 책상머리 고위 공직자들이라도 해답을 분명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왜 21세기에 '창조경제'를 추구한다는 유능한 공직자들이, '다이내믹 부산' 캐치프레이즈를 건 오늘날의 시청이 전두환 전 대통령 시대의 군림과 불신의 존재처럼 취급받는지, 억울함을 느낄 것만이 아니라 자문해 봐야 한다. 그런 점에서 온산병은 아직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