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우리나라 '행정절차법'은 그 구조나 역할 면에서 세계 행정법학계에 내놔도 부끄러움 없는 법률로 꼽힌다. 과거 일본제국시대의 권위주의 행정법을 계수받아 조금씩 고치는 정도로 답습하는 데 만족했던 패턴에서 벗어나기 위해 추진한 가장 큰 작업이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아울러 일선행정의 탄력성을 뒷받침한다는 이유로 파트별로 각 개별법들이 그때그때 마련되고 개정되는 상황 속에서 행정의 기본 맥락을 잡아주는 사실상의 '행정기본법'역을 맡는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새롭다.
이런 점에서 행정청에 대응하는 민간인들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져 왔다. 행정업무를 추진할 때 여론 수렴을 하고 이해당사자 의견을 듣도록 하는 여러 방법론을 뒷받침하는 것도 바로 이 시스템이다. 하지만 청문 등은 당사자의 권리 구제이자 소송과 유사한 다툼 조정이라는 면에서 필수성이 있지만, 주민 여론을 알아본다는 공청회는 행정절차법 마련 후에도 사실상 요식 절차나 건너뛰어도 되는 정도에 머물러 있다.
부산광역시 기장군을 달구고 있는 '해수 담수화 공급 계획' 역시 이 공청회 문제와 연관이 깊다.
주지하다시피 현재 부산 일부 지역에 바닷물에서 초고도 필터링으로 민물을 뽑아내 수돗물로 쓰자는 정책 추진이 지역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7일 통수(물을 공급함) 예정을 발표했던 당국은 일단 등교 거부 추진 등 다양한 불만 표출되자 주춤한 상황이나 결국 이를 추진할 것이 예상돼 폭풍 전야 같은 상황이다.
불만의 골자는 안전성 검사 등 당국이 언급하는 여러 객관적 지표에 대해 주민들이 심리적 안정감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 시가 2008년 건립계획 수립 당시에는 식수 공급 목적이 아니라며 주민 공청회나 설명회를 열지 않아 주민 불신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식수 공급이 알려진 뒤에도 통수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지난 11월 말에야 시가 조직한 수질검증연합회 주최로 첫 주민공청회가 열렸다. 그 당시 주민공청회에서도 반대 주민의 발언권이 보장되지 못했다는 증언이 나온다.
한편, 주민들 일부는 지난 11월 초, 주민투표를 요청했지만 당국이 이를 거부했다는 데 서운함이 증폭됐다고 지적한다. 일명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게 난색의 표면적 이유였다. 하지만 사실상 '광역시의회마저 깔아뭉개려는 군사작전 같은 태도'에 주민 투표 요청은 아예 고려 대상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실제로 부산광역시의회가 이런 당국 태도에 불만을 표출한 것도 감지된다. 지난 4일 상임위에서 부산시가 책정한 내년도 해수담수정수구입 예산 80억원 가운데 절반만 승인한 부분통과 처리한 게 그 증거다.
정명희 시의원은 "시에서 (이날) 오전만 하더라도 당장 급수 계획이 없다고 했는데, 정수구입비 등 계수조정을 하던 가운데 급작스럽게 통보받았다"고 지적했다. "주민 반대가 여전한데 기장은 공급하고 송정은 미룬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 시의원은 통수 전 시의회 보고와 기장·송정 동시 통수를 요구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기장군의 불만은 세계 최고의 해수 필터링 기술, 안전성을 공신력 있는 국제적 기관에서 확인 등 여러 배경에도 불구하고 삭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