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혜현 기자 기자 2015.12.06 09:51:49
[프라임경제] 주사기 재사용에 의한 다나의원 C형간염 집단감염사태 처리를 놓고 의료보건 당국은 물론 의료법 영역에서도 한동안 고심이 깊을 것으로 전망된다. 행정, 형사상 처분 규정의 구멍으로 솜방망이 처벌 내지 사실상 면죄부로 끝날 가능성이 높은 데다, 민사상 피해 배상 역시 병원장 개인 재산의 부족 등으로 난망할 가능성이 있다. 대불제도 등을 통해 실질적인 금전 지급 가능성이 있기는 하나 이조차 인과관계 구축의 허들을 넘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일 여지도 없지 않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 민사법 판례 동향이 근래 의료소송이나 환경소송 등 특수한 부문에서는 인과관계 입증의 엄격성을 소송을 제기하는 일반인측에 다소 유리하게 완화해 주는 경향이 있다는 점은 다행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그런 완화된 여건조차도 쉽지 않은 싸움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특히나 지금까지 확인된 78명 외에 추가로 향후 피해자로 규명될 피해자 등이 이런 다툼을 진행해 나가는 데에는 적잖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 감염 피해자로 거론되는 이들 그리고 장기간 뒤에 새삼 다나의원 사태의 피해자가 나타나는 경우, 사회적 관심이 식은 사건에서 외롭게 이들이 다퉈 나가야 할 소송의 길은 상당히 고단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 마치 우리나라 C형간염 사고의 데자뷰처럼 프랑스에서도 의료소송으로 C형간염 발병에 의료인 과실을 둘러싸고 싸운 케이스가 있는 것으로 확인돼 눈길을 끈다. 특히나 프랑스 사법부는 의료소송에 대한 인과관계 입증 문제에 있어 엄격한 태도를 여전히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진 터라, 이 같은 상황의 전개 과정을 들여다 보는 것이 이번 우리 분쟁을 해결하는 논리 선택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민법 제1315조에서는 주장자에게 입증 부담이 있다는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따라서 손해배상 청구권이 있다고 주장하는 자가 '손해와 의료과오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음'을 증명하여야 한다.
그런데 프랑스 법원은 병원 내 감염이 문제가 된 사안에서도 환자의 감염이 병원 내 감염의 성격을 띤다는 것을 입증하여야 한다고 하는 등 아주 엄격하게 논리상 인과관계 규명을 원고(피해를 입어 소송을 낸 일반인)측에 요구한다. 적어도 환자는 '(의료인의) 의무위반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는 입증하여야 한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것. 이런 논리는 프랑스 사법부가 전문직 종사자 판단에 대한 보호를 하려는 것으로도 읽힌다.
어쨌든 프랑스 판례상 과책 있는 의료행위와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한 평가는 사실의 문제에 해당하므로, 환자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인과관계의 존부에 대해 입증할 수 있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행위로부터의 추정도 입증의 방법으로 인정될 수 있다. 즉 의료행위 자체의 우연성으로 인해 법원의 확신을 이끄는 것은 의료소송에 있어서는 사람의 행위로부터 추정도 빈번이 활용되는 수단이라고 한다.
결국 프랑스 민법 제 1353조의 규정에서 유래하는 '중대하고 구체적이며, 정합적인 사실을 제출하여야' 하는 의무를 원고는 질 수밖에 없다. 상당히 까다로운 시험인데, 구체적인 판단을 위한 사실의 추정을 재판부에 제출할 경우 이것을 받아들여주는 것이 유일한 위안인 셈이다.
가혹할 정도로 의료소송 문제의 입증에서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프랑스 법원에서 인정되는 인과관계의 추정 사례로는 예방접종과 최초의 병증의 발병 시까지 기간이 단기이고, 그 이전에 환자에게 그와 같은 병증에 감연되었다는 것을 의심할 어떤 요인이 없으며, 병증의 개시에 대한 다른 원인이 없는 경우로 국한돼 왔다.
그런데, 프랑스 최고법원에서 2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사안에 최종적으로 책임 인정 결론을 내준 케이스가 있어 눈길을 끈다. 또 이것이 다름아닌 다나의원 케이스와 흡사한 C형간염 관련 사건이었음은 시사점이 크다.
2001년 7월 17일 파기원 판결을 보면, 1984년 낭트 지방혈액원에서 제공한 혈액제제를 투여받았던 원고(C형간염 감염 피해자)는 그 이전에는 완벽한 건강상태를 유지하였으며, 혈액제제 투여 이후에 비로소 C형간염 바이러스 감염 증상이 나타나게 됐다는 점에서 파기원의 수긍을 이끌어 냈다.
파기원은 이런 사안이라면, 혈액제제에 어떠한 하자가 없었음을 의료인측이 입증하지 못하는 한,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즉 낭트 지방혈액원의 책임을 인정한 항소심에 불복해 제기한 상고는 이유가 없다면서 상고 기각 즉 배상 결론을 내렸다.
다시 다나의원 사건으로 돌아가면, 이번 감염 피해자 중 절대 다수가 1a형에 감염됐다는 점이 특기할 만 하다. 실제로 질병관리본부는 브리핑에서 "보통 우리나라 같은 경우 유전자 타입에 주로 많은 게 1b형이고, 그 다음에 2형이다. 1형 중에서도 오늘 말한 1a형은 거의 1% 미만 정도로 굉장히 퍼센티지가 낮은 유전자 타입으로 알려져 있다. 치료제는 1a형의 경우 아직 출시는 안 됐고, 조만간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이런 특이 감염 사안에 대해서는 결국 다나의원서 얻은 병이라고 사실의 문제와 추정으로 쉽게 첫 관문을 돌파할 수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그 이후 인과관계는 프랑스의 낭트 지방혈액원 사건처럼 구성하는 게 어렵지 않다. 우리나라 의료법 관계자들이나 실무자들이 이 다나의원 문제를 접할 때 특히 대불제도 신청을 심사하는 등의 상황에서, 긍정적으로 사안을 검토해야 할 사실상의 의무가 여기서 발생한다. 우리보다 오히려 엄격하다면 엄격할 프랑스식 의료소송 논리에서도 20년전 C형간염 감염 사안에 대해 인과관계 인정을 해 준 것을 고려하면 향후 소송 구조를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당위성 방향을 시사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