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유해를 실은 운구행렬이 국가장 영결식을 마치고 26일 오후 상도동 자택 등을 들르는 현충원행 '마지막 여행길'에 올랐다.
체감온도 영하 5도 안팎의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민주투사 출신 첫 대통령을 기리는 우리 헌정 사상 처음의 국가장 영결식장을 지켰다. 이들의 배웅과 헌화를 받은 고인은 이제 40년 넘게 고단했던 정치적 행보 속에서 손명순 여사와 함께 했던 상도동 자택을 잠시 들르고, 현충원으로 이동 뒤 안장식 진행 과정을 밟게 된다.
그의 상도동 자택은 단순한 물리적 장소나 보금자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통상적으로 장례 절차에서 고인이 마지막으로 살았던 곳을 운구행렬이 들르는 풍습이 있으나 이번 행렬의 상도동 방문은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풀이다.
고인은 박정희 대통령 집권기부터 신군부 득세 기간 등 내내 이곳에서 정치인으로 활약했다. 손발이 묶인 정치적 활동 금지기에도 상도동을 기반으로 늘 민주주의를 갈망했다.
승용차 초산 테러 사건과 가택연금 등도 이 지역에서 그가 치렀던 고난이었고, 상도동을 감시하는 당국의 눈길을 피하기 위해 '민주산악회' 활동을 하는 등 끊임없이 저항을 시도하기도 했다.
'상도동'은 긴 군사정권기에 민주화의 상징적 단어 즉 대명사처럼 통용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과 함께 상도동은 동네 이름과 인명을 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것처럼 이야기됐다. 정치적 거물의 상징으로 동네 이름이나 이니셜을 붙이는 언론계 풍속 역시 고인에게서 비롯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도동은 현재 보수정당 당 대표를 하고 있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등 많은 후배 정치인들이 고인을 만나고 정치적 영감을 얻었던 공간이기도 했다.
지금은 지자체장으로 변신한 홍준표 경남도지사 역시 국회의원이 된 배경으로 고인의 발탁을 꼽는다. 내부 수사로 검찰에서 고립되고 결국 쫓겨나다시피 변호사 개업을 한 그를 불러 국회의원으로 만들어 준 게 바로 고인이었다. 이미 세상을 떠난 노무현 전 대통령도 대통령 후보가 되자 상도동을 방문해 '시계' 선물 인연을 강조했을 정도로 상도동과 인연을 맺은 정치인은 한둘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