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고대광실에서 자란 거제도 청년은 반평생을 박정희 정부와 전두환 정권과의 싸움으로 보냈다. 재벌이 됐을 수도 있었던 부친은 10여척의 배를 부려 얻은 소득을 모두 서울로 올려보냈다. 멸치가 민주화 운동을 돕던 시절, 최연소 국회의원이자 최다선 의원이라는 명예는 금자탑이기 보다는 국민들에게 민주화를 가져다 줘야 한다는 부담을 안기는 짐이었다.
같은 하나회 출신이라는 점에서는 6공화국 출범(노태우 정부) 역시 달갑지 않았다. 그런 시절을 거치면서 3당합당을 했고 군부와 타협했다며 변절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이 즐기던 노래가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국가장 영결식장에 울려 퍼졌다.
헌정 사상 첫 국가장 영결식이 엄수된 26일 고인은 "길고 나의 마음 푸르러 청산에 살으리라…길고 긴 세월 동안 온갖 세상 변하였어도 청산은 의구하니 청산에 살으리라"를 들으며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많은 이들의 송별을 받았다.
이날 이 노래와 함께 그를 배웅하러 국회를 찾은 이는 황교안 국무총리와 김수한 전 국회의장, 아들 현철씨 외 각계 시민 등 1만여명. 노랫말처럼 '청산에 살리라'는 길고 길었던 투쟁 와중에도 푸르른 마음, 의구한 청산을 지향했던 '거산' 김 전 대통령의 생전 행보를 회상시키기에 적당한 선곡이었다.
김 전 대통령이 생전 좋아한 노래 가운데 유족이 선택한 것으로 알려진 이 곡은 성악가이자 작곡가, 언론인이던 김연준 전 한양대 총장이 작사, 작곡했다. 김 전 총장은 1973년 일명 윤필용 사건 여파로 구치소에 갇혔을 때 이 곡을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윤필용 사건은 윤 장군을 차기 대통령으로 추대하자는 움직임이 포착돼 당시 정부가 이를 선제적으로 제압, 처벌한 사건이다. 김 전 총장으로서는 억울한 처벌에 대한 불만은 물론,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이 사건을 통해 간접적으로 표출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전 대통령은 이 노래를 생전에 상당히 좋아했다. 2010년 83세 생일 때도 이 노래를 축가로 요청할 만큼 고인은 이 노래를 아꼈다.
이날 영결식에서 이 노래를 부르게 된 바리톤 고성현 한양대 교수와 고인의 인연도 이 곡이 쓰인 배경만큼이나 각별하다. 고 교수는 1985년 이탈리아 유학 시절 손명순 여사와 함께 로마를 방문한 고인을 환영하고 만찬에도 참석했다.
자칫 현지 공관 주재원들 눈밖에 나서 좋을 게 없었던 당시 정치적 상황에서 실로 용감하게 야당 정치인을 만나러 나선 그의 행보에 고인은 깊은 인상을 받았다.
염원한 푸른 세상, 소나무 같은 세상을 생각하게 하는 노래가, 생전 고인이 가장 어렵던 시기 변함없는 신뢰를 보여 준 한 음악인을 통해 추모객들에게 전달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