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부산 기장군에는 '좌천'이라는 동네가 있습니다. 부산 인근 지리를 좀 아는 이 지역 출신이라면 자연스레 작은 차부에서 표를 끊어 부산 혹은 울산시내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는 소박한 동네를 떠올릴 텐데요.
최근 이 지역에 출장을 다녀온 필자가 동료 직원들에게 정식 터미널이 아닌 작은 시골 차부에서 표를 끊은 이색적인 경험을 사진을 찍어 보냈는데요. 동료들은 표를 파는 공간이나 얇은 색종이표가 아닌 '좌천'이라고 찍힌 도장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직장인들에겐 '좌천'이라는 게 무서운 표현입니다. 때문에 '좌천이라는 동네에 있다' '좌천이라는 곳에 간다'는 것보다 '좌천당했다'가 연상된 거죠.
좌천은 당나라 학자였던 공영달이 "오른쪽은 편리하나 왼쪽은 불편하기 때문에 도움이 되는 것을 오른쪽에 둬야 한다"고 주장한 데서 비롯됐다고 합니다. 이에 왕을 알현할 때도 신하 중에서 상급자는 오른쪽에, 하급자는 왼쪽에 서야만 했습니다.
이렇듯 하급자가 불편한 왼쪽으로 자리를 이동하는 모양새를 따 '좌천(左遷)'이라는 말이 등장했던 겁니다. 이 좌우존비론은 현대에도 이어져 낮은 지위로 강등되거나 외직으로 발령된 사람을 두고 '좌천됐다'고 표현합니다. 반대로 제일 뛰어난 부하를 '오른팔'이라 칭하는 것도 그 이유에서겠죠.
좌천 버스표를 바라보니, 현대차 계열의 인사 스타일이 떠오릅니다. 정몽구 회장이 수시로 인사를 하는 데다, 순식간에 좌천을 당한 이가 권토중래하는 등 변동폭이 크다고 하죠. 불만 요소일 수도 있지만, 일시적으로 밀려나도 능력만 있으면 패자부활전 기회가 열려 있어 최악의 '오너 횡포'라는 평은 없다고 합니다.
이 정도는 사실 약과죠. 진정한 오너 일가의 횡포는 북한에서 볼 수 있습니다. 최근 평양에서 저 멀리 지방의 한 농장으로 추방된 최룡해 노동당 비서가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김정은 체제가 출범한 이래 고위층 인사들을 마음대로 숙청 내지 좌천시키는 현상이 심각해져 북한 내부 사정이 관심 대상으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최룡해가 쫒겨난 이유로 이달 초 백두산 발전소 토사 붕괴사고를 꼽고 있는데요. 최룡해 산하의 청년동맹이 이 공사를 책임지고 있었는데 그 불똥이 최룡해에 튄 거죠. 이는 구실이고 일부러 크게 문책을 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최룡해는 지난 1998년에도, 2004년에도 비리 혐의로 혁명화교육을 받은 전적이 있는데 이전처럼 무난히 복권을 하지 못할 것이란 분석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북한은 체제 정통성이 없이 핏줄에 의한 승계를 하고 있죠. 정권 유지를 위해 좌천 혹은 숙청을 통해 끊임없이 공포를 주입하기도 하고요.
아무튼 언제 순식간에 '좌천행 버스'를 타게 될지 몰라 불안해 하는 모습이 오늘을 살아가는 직장인들의 단상이 아닐까 합니다.